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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재팔난 ː 번아웃_2장 ]

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by Soden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단순히 태어났기 때문에 살았다.

그것조차 내가 원하고 의도한 삶이 아니라 여겼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살아지게 된 이 삶에 최선을 다했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 먼지투성이가 된 신발만 벗어두곤 굳이 좁디좁은 베란다의 틈을 찾아 비집고 앉았다.


열린 창문너머로 넌지시 보이는 달이

오늘따라 유난히도 둥근 모양새를 지녀 보름달인가 하며 잠깐을 중얼거리다,

이내 빛이 다다르는 곳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하얀 살갗 너덜거리는 그 모양새가 몇 날 며칠을 꼴 보기 싫어 꽉 쥐고 있던 나의 주먹 위로 밤의 달이 안착했다.


물에 오랜 시간 닿아 퉁퉁 불어버린 탓에 지문마저 흐릿해진 두 손바닥은 마치 내 아버지의 굳은살 가득 박힌 큰 손처럼 우락부락해 보였고,

연신 메마르길 반복하던 손등은 누군가 사포질을 해놓은 듯이 손끝가까이 살갗들이 모두 하얗게 떠 나풀렸다.


손끝의 살갗 따라 마음도 붕 뜬다.

사포처리 된 것 같은 하얀 손처럼 뇌에서 백지상태를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은 일제히 일어나 요동치기 바빴다.



함께 지녔어야만 했던 것들이 제각기 따로 놀아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비어버린 머릿속과 요동치는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누구라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어떤 이라도 상관없으니 잠시 기댈 곳이 간절히 필요했다.

마음 가득히 올라오는 모든 말들을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기에.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기를 꺼내어 이미 닳을 대로 닳아 지문은 그 어디에도 없는 손으로 화면너머 연락처버튼을 연신 눌러대었다.


' 하 - '

연락처 속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작은 탄식과 후회속에 이내 다시금 휴대전화를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두어야만 했다.


화면 너머 저장된 수많은 연락처들 중 발신할 이가 하나도 없었던,

그래서 더욱이 고요함은 짙어져만 가던 그날 밤.


정말 혼자가 되었을지도, 어쩌면 되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는,

손바닥보다 움켜쥔 주먹이 편해지기 시작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쌓아왔던 내 모든 마음은 수억의 억장이 되어 무너져 내리는 밤이었다.


그래, 어쩌면 알고 있었기에 정말 알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의 과정인가 결말인가, 그 어디쯤에서 나타난 권태로움에서

이 외로움은 내가 부단히 걸어온 모든 시간을 부정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에.


그날 밤,

좁디좁은 베란다틈을 찾아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창문너머 달이 비집고 들어와 주먹 쥔 내 손을 비추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내가 요동치는 마음에도 모른 척 주머니 속 그대로 휴대전화를 넣어두었더라면.


아니다.
그날 달이 유난히도 둥글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둥근 모양새로 모가난 내 마음을 자꾸만 눌러댄 탓이었다.



그랬더라면 나는 이 최선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그랬더라면 나는 내가 외롭고 쓸쓸한 사람이었다는 걸 영영 모르고 살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빈번히 그리고 살아가야만 했다.

그랬음에도 여전히 평범이 간절하다는 이유로, 그들처럼 아등바등 살아간다.


겨울이랍시고 뱉어보는 뜨거운 입김과, 지면을 타고 올라와 일렁이는 아지랑이 속에 덩그러니 서서

그 계절을 피워가고 모든 시간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매 순간 증명하며 살아간다.


간혹 그날의 좁디좁았던 베란다로 다시금 떠나야 할 때면 밤이 더욱 길다 느끼기도 하지만.




긴 긴 밤 나는 나를 다독여야만 했다.

익숙해져만 하는 외로움은 내 삶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그러니 부디,

오랜 시간 혼자 넘어져있었던 그날처럼 살아가지는 않기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몇 번이라도 좋으니 내가 조금은 빠르게 털고 일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자주 넘어진 만큼 잘 넘어지는 방법을 깨우치는 삶을 살아가자.

그 후엔 조금은 더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고르고 평평한 좋은 길을 볼 수 있는 시선과 안목까지 갖출 수 있기를.

그땐 나의 두 손 활짝 펴 맞잡을 이들과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 삼재팔난 ː 번아웃_2장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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