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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den Dec 21. 2024

[ 삼재팔난 ː 통증의 차이_2장 ]

우린 그것을 삼재라 부르기로 했다

『 삼재 : 인간이 9년 주기로 맞이하는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시기를 일컫는 단어. 9년이 지나가는 시점부터 3년간 별의별 재난을 겪게 된다고 하며 이를 삼재팔난이라고 별도로 부른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척도가 존재했던 것일까?

열손가락 모두 깨물어 아프지 않던 손가락은 없었다.

물론 가락지마다 제 각기 다른 강도의 통증을 나타내었다. 

부모의 열손가락중 나는 어떤 통증을 주던 손가락이었을까.






물기 가득 머금은 옷을 입은 채 깊은 바다의 수면 아래로 점점 꺼뜨려져 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할 수없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믿지 못할 것 같은 공포에 질린 채 내가 만든 칠흑같이 어두운 해저 속을 떠다녀야만 했다.


나의 불행아 나만의 재난아.

큰 병에 걸리거나 누군가를 떠나보내거나 사업에 실패한다는 그런 큰일들만이 인생의 재난이 아니었다.

일어서서 걸어가고, 작은 돌부리 마다마다 다 걸려 넘어지는 삶.

누군가가 거슬린다며 냅다 차버린 자갈들은 우연이란 탈을 쓴 채 매번 나를 향해 적중했다.

작고 사소한 불행이 누적되어 가는 시간을 살아가던 나에게는 이 모든 날들이 재난이었다.


단지 나는 물어보고 싶다 나의 아버지에게.

사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이었냐고,

다들 이렇게 이유 없는 넘어짐 속에 매일매일을 버티듯 사는 것을 삶이라 부를 수 있느냐고.


아버지 당신이 걸어오셨던 길도 이리 고단하고 외로웠을까.

혹여 걱정스러운 마음에 내게 강한 사람이 되어라 모질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는지 생각했다.


살이 연한 부분일수록 통증이 심하다.

아버지의 두 손은 굳은살로 빽빽해 손의 연한 부분을 제 아무리 두 눈 크게 뜨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삶의 모든 통증에 아버지는 이전보단 무던한 인생을 살고 계시는 걸까.


굳은살 가득 베긴 저 열손가락이 아버지의 인생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손을 볼 때마다 말로도 마음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미워하고자 다짐한 마음한켠 비 오는 날엔  빗길을 걱정하고, 눈 오는 날엔 눈길을 걱정하였으며,

끼니를 챙겨줄 이가 없는 적막 가득한 저녁엔 라면으로 식사를 때운다는 소리에 한숨을 푹 쉬며. 

나는 나의 아버지를 미워한다 말했다.

그러하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였다.


삶이 버겁고 힘들어서 미워할 대상을 찾고 있던 사람은 어쩌면 나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리했던 어둡고 고요한 해저 속을 나오는 일은 스스로 해야만 하는 일이었음을 직시하는 순간이었다.


유년시절 아버지는 차를 태워주지 않으면 잠에 들지 않고, 늘 잠투정을 늘어놓는 나를 조수석에 앉히곤 어두운 밤하늘 짙게 깔리어 별이 까마득 수놓은 그 새벽밤 길을 매일같이 달리셨다.

 밤 아버지가 버릇처럼 내게 들려주던 노란 공룡이 그려진 카세트테이프는 나의 잊지 못할 자장가였었다.

노란 공룡 카세트테이프와 세월은 함께 흘렀는지 오디오 속 공룡의 음성은 아버지의 음성이 되었고 이제는 나를 잠재우던 자장가가 아닌 세상을 이겨낼 강인한 사람이 될 쓴소리들로 어두운 밤하늘을 꽉 채워갔다.


있지. 어쩌면 저 넓은 밤하늘을 꽉 채울 만큼 쓴소리를 내뱉어야만 했던 아버지 당신의 마음은 내 마음보다 더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문드러져있지 않을까.


사랑하기에 인내해야 하는 고통이 있다는 사실도, 사랑하기 때문에 지켜 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심정도,

미워하고 원망하며 한참을 방황하고나서야 깨달았다.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는 사실들이 존재하기에 살아가는 동안 약간의 불행과 스스로 만들어낸 재난에 최대한 의연해지기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굳은살 가득 박힌 내 부모에게 얼마큼의 통증을 주는 자식이냐고?

이왕이면 굳은살 조차도 아프게 할 만큼 통증을 주는 자식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전히 나의 부모를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는다 말하고 있기 때문에.




[ 삼재팔난 ː 통증의 차이_2장 ]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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