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환 May 30. 2021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글쓰기의 두려움과 즐거움>

 얼렁뚱땅 일주일이 흘러간다. 지난주엔 나름 일다운 일을 했다. 하지만 회식자리에서 썩 괜찮은 줄 알았던 사장이 던진 무례한 말들에 결국 다음날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통보했다. 도망친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글을 쓰는 것은 나에겐 좋은 도피처다. 흰색 배경이 집이고, 마음이다. 우리는 거울로 우리를 보지만, 아무리 들여보아도, 욱신거리는 심장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검은 글자들은 상처고, 이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본다고 적절한 처방전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곳을 찾아 전시할 수 있다. 어린 마음이다. 아픈 곳을 떡하니 내놓고 이만큼 다쳤다고, 엄마라도 찾아와서 한숨과 함께 따뜻한 말들을 뱉어주었으면 좋겠거니 생각하고 글을 쓴다.


 어리숙하게 한 주를 보내고, 미뤄뒀던 복학 신청이나 해야겠다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들어가 보는지라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아주 우연히 글쓰기 특강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과 프로그램인데 2시간 남짓한 강의를 듣고, 소감문을 작성하면 기프티콘을 준단다. 옳거니 하고 바로 강의를 신청해 들어갔더니 강의 제목이 글쓰기의 두려움과 즐거움이다.




 글쓰기가 자칭 취미인 나에게 두려움이라니, 시작 버튼을 누르지도 못한 채 머뭇거렸다. 사실 조금만 뒤돌아보아도 시작하기 조차 두려웠던 경우들이 다분했다. 대입 준비하며 자소서(소설)를 썼을 때, 첫 과제 리포트를 제출할 때, 훈련소에서 부모님에게 감사한 것을 100개 쓰라고 시켰을 때가 떠올랐다. 쥐어짜 내야 했던 글들은 나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저 그럴듯하게 쓰느라 밤을 새우고, 화장실에서 뒤집어진 피부를 거울로 마주하며 한숨만 푹 내쉬어야 했다.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

 

(1890) 까마귀가 나는 밀밭 - 빈센트 반 고흐

 강의에 들어가자 배경에 이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그림 보는 법을 모르지만, 노란 밀밭에 까마귀가 날다니 퍽 이상하다 생각했다.

 강의의 가장 큰 핵심은 작가에 있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의 풍경화 연작 중 하나이며,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작품 중 단 하나밖에 팔지 못했고, 동생만이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했다고 한다.



 강사는 그가 정말 밀밭 위에서 까마귀를 보았을까 질문하였다. 그렇다고 했다. 사실 까마귀가 실제로 날고 있었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눈에는 까마귀가 보였다는 것이다. 그 해 그는 방아쇠를 당겨 자살했다. 어쩌면 우리가 글에서 우리의 마음을 보듯, 고흐는 밀밭 위에서 까마귀를 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가 두려운 이유는 밀밭 위의 까마귀를 마주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세상엔 재미없는 글쓰기를 해야 할 순간이 있고, 그런 글들에서조차 우리를 마주해야 하는 것은 큰 곤욕이라고 말이다.




결국 즐기는 방법

 


 한창 사춘기 시절 얼굴에 뒤덮인 여드름 때문에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세수를 하면서도, 화장실 조명 아래 거울을 보는 것은 정말 치욕스러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쩌나, 어느 거울이든 보지 않으면 약을 정확하게 바를 수도, 오늘은 피부가 좀 깔끔해진 것 같다고 착각 아닌 착각을 할 수도 없었다.


 딱 그렇다. 글쓰기는 여드름 투성이인 얼굴을 보는 것과 같다. 좀 안 났으면 좋겠는데, 급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리저리 치이며 생기는 생채기에, 밤을 새우느라 생기는 우울함에 많이 아픈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강의에서 글쓰기를 즐기는 방법은, 계속 써보라고 했다. 익숙하지 않고, 억지로 써야 하는 글에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을 수 있기에 두려운 것이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만약 나처럼 글쓰기가 좋은 취미이고, 집중하면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릴 수 있지만, 고리타분한 것들을 써내려기에 상당히 곤욕을 치르는 당신이라면, 우리 잠시 멈추자고 얘기하고 싶다. 혹여나 계속 부딪히고 써 내려가다 권태기라도 오면 어떡하나, 우리는 도망칠 곳을 잃어버릴 것이다. 잠시 다른 곳에 눈을 돌린 다음에 돌아와도 좋지 않을까.


 당신의 글에서 화약 냄새가 찐하게 진동하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주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