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혼자 주절주절 !@#$%?
주절주절!@#$%?
늦은 장마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농수로는 넘치고 곳곳에 침수 피해 뉴스를 접하는 하루. 아직 큰 피해가 없는 이곳! 심야 폭우가 예상된다는 일기예보를 상기하며, 창문 너머 내리는 비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불멍”(불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처럼 헐겁고 느슨하게 의식의 흐름을 저 내리는 빗방울에 맡깁니다.
피해 입은 사람들은 마치 먼 세계의 일인 것처럼 안타까움, 유감스러운 마음을 쓸 틈도 없이 고온다습한 집안 기온 속에서 나! 곰팡이처럼 슬고 있습니다.
멍을 때리는 순간에도 몇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시간에 붙박여 있고 싶지만, 의식이라는 게 의식하지 않고 싶다고 해서 의식이 안 되는 것이 아니 때문에 기습 같은 잡념으로 비멍의 시간을 버터야 했습니다.
잡념 중에도 오랜 시간을 붙들고 있었던 건, 우울증 관한 것이었습니다. 정신과 상담이라던가 의료보험이 적용되던가? 같은 시시콜콜한 것이었습니다. 병원을 찾아 진료 예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집념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고민이라고 하기엔 좀 변칙적이지만, 때때로, 종종, 우울에 관한 생각을 떠올렸다가 접은 게 적어도 한 두 번은 아니죠. 검색을 해본 적도 있다. 한 번의 상담뿐일까? 아니면, 지속적인 상담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것인가? 할지 말지 나는 결정할 수 있는가? 원론적인 검색 내용에 흥미는 떨어지고, 원하는 답도 찾지 못한 상념만 이어졌습니다.
가장 께름칙한 것은 비멍하는 내내, 혹은 일상 생활 내내 나 이렇게 외롭고 우울한데 병원에선 우울하지 않다는 진단을 내놓을까 봐. 괜한 헛수고와 민망과 우울에 관한 의심이 불거질까 염려됩니다. 나의 우울을 병리적인 것이 아닐 거란 불길함이 멍때리는 와중 몇 번을 미간을 왔다갔다 합니다. 쓴웃음 사이에 찐득찐득 말라가는 침이 입 안 가득 고약한 냄새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우울이어야 한다.’ 이렇게 우울한데, 우울이 아니면, 나의 멘탈은 치사율 높은 바이러스의 발원지가 될 것 같습니다. 나 왜 이리 우울을 반기는 건가? 비멍의 원인이 비라면 우울의 원인은 무엇인가? 외로움인가? 그럼 외로움의 원인은? 자격지심, 열등감 아니면 오체불만족적 욕구와 불충족적 욕망과 장애 때문인가?
뇌병변장애가 있는 A란 친구가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지방의 어느 소도시의 임대주택에 독립하여 살고 있습니다. 삶의 주체가 자신이란 것을 증명하듯 가족들의 도움 없이 혼자 아주 잘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원래 용건이 없으면 먼저 안부를 물어올 녀석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에 본론을 재촉했습니다. 녀석의 부탁은 개인통관번호를 빌려달라는 것! A가 해외직구로 무언가 구매하려고 하는구나. 뭐 사냐고 물어도 녀석은 ‘그런 게 있다.’면서 답을 자꾸 회피했습니다. 나는 개인통관번호를 알려 주었지만, 본인이 아니라는 절차에 막혀 녀석은 구매하지 못했다는 걸 좀 지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문득 그가 해외에서 구매하려고 한 것인지 무엇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다키마쿠라(抱き枕)는 일본어 동사 '안다(抱く=다쿠) 와 명사 '베개(枕=마쿠라)' 가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합성 명사다. 한국어로 '안는 베개'라는 뜻이지만, 죽부인 같은 건 아닙니다. 실제로 품에 안을 수 있는 정도의 크기인 베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 키만한 것도 있습니다.
녀석이 구매한 것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새겨진 베개라는 것입니다. 팽수나, 테디베어, 포켓몬스터 따위의 캐릭터 굿즈와 사뭇 다른 온도의 오타쿠 물건이란 점에서 매우 놀라고 흥미로웠습니다. 친구의 비밀 취향을 엿본 것 같은 관음적 쾌락과 약간의 조롱적 실소가 새어 나왔습니다. (ㅋㅋㅋ)
당장에 전화를 걸었고 갖고 있는 게 있으면 보여 달라고 졸랐습니다. 끈질긴 구애 끝에 마지못해 보여준 다키마쿠라는 녀석의 키와 견줄 만큼 커다랬습니다. 그 커다란 베개에 프린팅된 약간의 야리꾸리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안고 베고 자는 A의 모습을 생각하니, 어딘가 모르게 존경심과 경계심이 드는 건 왜일까?
다른 건 몰라도 A는 자신의 취향과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덮치는 고독과 외로움이 넘치지 못하게 막는 방파제를 만든 것. 오타쿠가 뭐 별건가? 자신이 흠뻑 빠질 만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쓰는 존재겠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는 감정을 다른 무엇에 동일시하며 격조를 높이는 절박한 행동을 하는 존재.
현실을 부정하는 거 아니냐? 묻는 물음에 친구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것도 현실이다. 내 세계의 현실. 비자도 없이 네놈 따위가 함부로 발 디딜 수 없는, 그러니 하나 사줄 거 아님. 그 입 닫아요~
다키마쿠라(?)하나 사다 주면 입을 열어도 된다는 뜻일까? 나는 왜 더 우울해지고 묘한 열등감에 휩싸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정말 이 감정이 우울인지 열등감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런 얕잡아보는 감정으로 A의 세계를 부정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본니다. 쏟아지는 장맛비를 멍하니 쳐다보며…….
멍~ ~ 멍~ ~ 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