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

꽁트&단편소설

by 지음 허투루
술래



물렸다. 세진이 이가 내 팔뚝 살갗을 파고든다. 앗! 짧게 비명을 내뱉는다. 아프기보단 깜짝 놀랐다. 그제야 내 팔을 놓고 더는 볼일이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간다. 어딘가 모르게 의기양양하다. 아이스크림 사준 날부터 인 것 같다. 내 팔을 찾아 물려고 하던 게 말이다. 대답 말곤 말을 잘 하지 않는 세진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의사표현이다.

세진이는 특수학교 초등부 1학년이다. 반 친구들 모든 한 가지 이상 장애를 앓고 있다. 언제쯤 장애를 털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보다 좋아질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재활과 학업을 병행한다. 세진이의 장애는 자폐증이다. 자신만의 세계 있다. 그 세계는 독특하고 폐쇄적이고 어딘가 모르게 아득하다. 세진이 자신조차 그 세계의 일부이지 그 자체가 아닌 것처럼 타인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드나들지만, 허락이나 동의는 구하지 않는다.

세진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는 아마 세진이의 이가 아닐까. 뱀파이어에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는 것처럼 세진이의 세계가 물린 사람으로 하여금 확장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준비된 사람들 한에서 확장이지, 세진이의 자폐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겐 침략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갈등과 문제일 뿐일 것이다. 세진이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빈틈이 보이면 기습처럼 물려한다. 옆에 있는 친구. 담임 선생님. 교실로 찾아오는 자원봉사나 학습봉사도우미 등등. 같은 시간과 공간의 사람들에게 무언가 확인하려는 듯 입을 벌리고 이를 드러낸다. 그리곤 몇몇은 수시로 세진이 이에게 신체 일부를 내주기도 한다. 나는 그게 가장 우려스러운데, 세진이를 둘러싼 세계는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진 않다.

세진이는 쌍꺼풀이 짙고 눈이 매우 크다. 입과 코는 매우 작고, 이마는 타깃을 향해 돌격 준비가 되어 있듯 툭 튀어나와 있고, 턱은 흔히 V라인이라 불릴 만큼 뾰족해서 꼭 딸기 같다. 아역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출중한 외모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나 학습봉사를 나온 봉사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 물론 나도 시진이의 귀엽고 엉뚱한 천진난만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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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수학교는 중등과 고등 교육이 나눠져 있고, 초등교육을 담당할 초등학교는 생기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1학년부터 3년 학까지 밖에 없었고, 학급은 학년에 두 개뿐이다. 한 반엔 학생이 5명에서 6명 정도뿐이지만, 운동선수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활동성과 체력, 성악가 뺨치는 발성과 제아무리 소리 질러도 쉬지 않는 성대 등등. 엄청난 텐션을 자랑한다. 내가 자원봉사로 배정받은 학급은 세진이를 포함 전부 6명으로 이루어진 일당백의 능력을 갖춘 스페셜한 팀이다.

사실 자원봉사는 대학생활 내내 ‘한 번 해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가 겨우 4학년이 돼서야 학점을 위해 반 강제적으로 하게 되었다. 4학년이면 취업 준비 혹은 졸업 시험, 자신의 스펙에 다른 결점이 없는지 확인하고, 부족하다 느끼면 쌓아 올리기 바쁜데, 자원봉사 나간다고 하니, 다들 '한가한가 보다' 하며 인색한 평을 늘어놓았지만, 내겐 도서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절실한 학생들의 학업 열기에 벗어나, 잠깐 숨을 좀 돌리는 기회라 생각했다. 임용고시, 국가고시, 공무원 시험 등등 졸업과 동시에 취업 따위를 해결하려는 그들은 도서관을 사우나로 만들었다.

나는 세진이와 다른 아이 두 명과 한 조다. 남자아이와 여자 아이였는데, 남자아이는 이름이 제이, 여자아이는 수현이다. 서로 성별이 바뀐 듯한 이름이었지만, 이름을 부를수록 어색함은 사라졌다. 제이는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를 타고 있다. 수현이는 발을 절긴 했으나 매우 잘 뛰어다녔고 가만히 있지 못하고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밖으로 뒤쳐 나갔다. 세진이와 자주 어울려 다니며 숨바꼭질 하듯 학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숨곤 했다. 나는 주로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그 두 아이를 찾아 다시 교실 의자에 앉히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늘 술래가 되어 그 두 아이를 찾아다닌다. 그들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숨는다.

제이와 수현이도 세진이에게 물린 적이 있다. 수현이는 물린 뒤로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지만, 제이는 버럭 화를 내었고, 그 후로 세진이를 향해 구박을 일삼았다. 세진이도 질 수 없다는 듯 반드시 너를 내 세계에 납득시키겠다는 것처럼 깨물기 시도를 거듭했다. 제이가 유독 세진이를 경계하는 것 같아, '혹시 괴롭힘 당하는 게 아닐까?' 제이에게 ‘괜찮냐’ 물어본 적이 있다. 제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괜찮다고 했다.

"이건 게임이에요. 저는 수비수고 걔는 공격수지만 곧 바뀔 거예요. 곧 전동휠체어가 생길 거거든요. 걱정 마세요. 들이받진 않을 거니까요. 저도 그 정돈 알아요. 단지, 내가 너보다 빠르다는 걸 보여줄 거예요."

마치 스포츠 게임을 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적잖은 긴장감을 유지하며 학업 분위기를 유쾌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제이가 있다. 그는 이 학교에서 세진이의 세계를 가장 잘 이해는 사람인 것 같다. 나이는 어리지만 고통을 참는데 익숙하고, 화를 내면 그게 먹히는 타이밍도 아는 듯 영특했다. 제이의 팔에는 세진이의 이빨 자국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타투처럼 늘 남아있었다. 자국을 보면 꽤 아파 보였으나, 제이는 한사코 괜찮다고 한다.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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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까지 세진이에게 물려본 적이 없다. 같은 조도 같은 반도 아닌 이웃인 옆 반 아이들은 물론이고 함께 자원봉사 나온 친구들도 한 번씩 물려 본 적이 있는데, 나만 없다는 게 왠지 서운하다. 같이 봉사하는 친구들이 세진이에게 물렸다며 호들갑 떨며 물린 곳을 보여준다. 팔뚝에 세진이의 이 자국이 선명하다. 아프지 않은 지 웃고 떠들며 자국을 자랑하기 바쁘다. 나는 일부러 세진이에게 슬쩍 팔을 내보인 적이 있다. 세진이의 눈이 물음표처럼 보인 건 내 착각일까. 초점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듯한 눈이었는데, 내 눈과 마주쳤을 땐 ‘뭐 어쩌라고” 같은 민망한 기분이 든다.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술래를 발견한 듯 깜짝 놀라며 도망가듯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나는 내민 팔을 거두며 필사적으로 세진이를 뒤쫓는다. 민망함을 견디지 못한 몸부림이고 괘씸함이 차오르는 단호한 추격. 봐주는 것 따위 없이 덥석 세진이를 붙잡아 교실로 끌고 들어간다.




병원 진료 때문에 세진이가 오전에 학교에 오지 못한 날이 있었는데, 부작용이 일어난다. 세진이에게 한 번쯤 물린 아이들이 흡혈귀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듯 봄햇살을 이기지 못하고 무기력하다. 특히 수현이가 책상에서 꼼짝 하지 않는다. 엎드려 잠만 자다 선생님에게 야단을 맞는다. 5월 따뜻한 햇볕은 송곳니처럼 학교 선생님과 자원봉사자 모두 졸음에 감염시켰다.

백신은 금방 개발되었다. 학교에서 1,2, 3학년 모두 현장학습을 나가기로 한 것이다. 세진이도 병원 진료를 끝내고 현장학습 장소로 합류한다는 것. 내게 특명이 떨어진다. 술래의 본질은 추격이 아니다. 그건 단지 과정이다. 반드시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고 잡는 것. 잡지 못하면 놀이는 끝나지 않는다. 영원히 술래에 갇히게 될 것이다. 누구도 잔혹동화를 바라지 않는다. 술래가 역할을 하지 못하며 동화는 끝나고 잔혹한 현실만 남을 게 분명하다. 세진이와 수현이를 눈에서 떼지 않는 것. 빌어먹을! 현장실습의 장소는 동물원이다.

한참 전에 공지한 현장 실습이지만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아득하다. 그 넓고 엄폐물이 곳곳에 즐비한 곳에서 술래잡기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지만 교사들은 모른다. 내가 술래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인지. 수업 시작 전 세진이와 수현이가 이탈하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있는, 그 험난한 배경을 말이다. 아무리 설명해도 그저 '파이팅!' 말 한마디로 이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교사들의 안일한 대처에 화가 난다. 애들이 사라져 봐야 정신 차리지... 덜컥 무서운 상상이 스쳐 지나며 입방정이 현실이 되기 전에 서둘러 입을 막는다. “만약”따위에도 오르면 안 되는, 결코 벌어져선 안 되는 상상을 했단 마음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마음을 다잡고 현장학습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동물원은 학교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활동적인 아이들은 자원봉사자와 선생님과 짝이 되어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한다. 수현이는 잔뜩 볼이 부풀어 있다. 담임 선생님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 수현의 저 심술을 예의 주시한다. 그럴수록 꼭 잡은 세진이 손을 수시로 확인한다. 선생도 사람인지라 방심하고 만다. 담임은 담임이기에 수현이만 인솔할 수 없다. 그 틈이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한다. 수현이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동물원 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 불길한 예감은 어떤 식으로든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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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은 아이들과 남아 혹시 돌아올지 모르는 수현이를 기다린다. 애가 탄다. 곧 하교시간이 되어간다. 수현이를 찾으러 나갔던 교사와 자원봉사자와 경찰이 돌아왔지만, 수현이는 없다. 남은 아이들을 학교로 돌려보내고, 담임과 현장실습 인솔교사 자원봉사자 몇몇은 다시 한번 수현이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나는 술래 경험이 많았기에 자처해 남았다. 그러자 세진이도 남겠다는 듯 버스에 오르지 않고 버텼다. 수현이가 걱정이 되는 걸까? 아니면, 지금 이 술래잡기가 재밌어 보인 탓일까? 세진이가 동물원 쪽으로 뛰쳐나간다.

나는 뒤늦게 세진이의 뒤를 쫓는다. 세진이가 멈춰 선 곳은 낙타가 있는 곳이었다. 낙타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땐 세진이는 수현이와 같이 있었다. 나란히 서서 낙타를 보고 있었다. 세진이와 수현이가 같이 있다 소식을 전한다. 그들을 나를 발견하고 다시 술래잡기를 하려는 듯 달려 나간다. 나는 재빨리 그 두 아이의 팔을 붙잡는다. 이번에 빠져나갈 수 없도록 꽉!

세진이가 갑자기 내 손등을 물었다. 깜짝 놀라 손을 놓고 만다. 세진이가 다시 달아나려다 뚝 멈춰 선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멈춰 서서 아이스크림을 가리켜 낙타라 중얼거리고 있다. 분명 수현이 사라지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보고 낙타라 중얼거린 모습이 떠오르긴 했지만.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원숭이도 공작새도 하마도 모두 낙타라 했으니, 아이스크림을 원하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사달라 조르는 건 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도망은커녕 자리 깔고 풀썩 주저앉을 것처럼 고집스러움을 풀풀 풍겼다.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학교 선생님들을 기다린다. 차라리 그게 났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스크림을 쥔 내 손등에 세진이 이빨 자국이 선명하다. 아이스크림과 맞바꾼 귀중한 흔적. 또다시 벌일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까짓 만원 짜리 한장 전혀 아깝지 않다.

세진이가 누군가를 물때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이 다르니까. 간식을 바랄 때도 있고, 밥을 먹기 싫으니 치워달라고 할 때도 있다. 생각해보면 세진이가 물기도 전에 늘 먼저 쫓았던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도망치기 전부터 뒤를 쫓았던 건 아닐까? 늘 쫓기만 해서 그런가 술래를 그만두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학교로 돌아가면 나는 또 졸업을 취업을 쫓아 뛰어다니게 될 텐데.

제이에게서 애들은 찾았냐는 문자가 도착해 있다. 찾았다 걱정말라는 답장을 보내려는 찰나, 세진이가 아이스크림 묻은 입으로 내 손등을 앙 문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나는 소매를 늘어뜨리며 세진이와 수현이의 입을 닦는다. 귀여워 죽겠으나, 너무 얄밉다.

앞으로 남은 추격의 날을 세어본다. 자원봉사 2주 남았다. 금방이겠지만 아득하다. 세진의 세계처럼 내 세계도 어느새 감염되어 있었다. 동의나 허락 따윈 필요 없는 아득한 세계. 그곳에서 가장 선명한 건 이빨 자국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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