쁠리에(Plié)

꽁트 & 단편소설

by 지음 허투루
Plié



1번 자세, 발뒤꿈치를 모으고 무릎을 밖으로 향하게 선다. 다리를 꼭 붙여 발 모양이 180도가 되도록 만든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고개는 들고 시선을 정면을 향한다. "2번 자세" 외치는 원장님 말을 귀보단 다리가 먼저 듣는다.

1번부터 5번까지 준비자세만 두 달 가까이 하고 있다. 발동작이 바뀔 때마다 손동작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고 마음이 바뀐다. 처음엔 1번 자세도 제대로 되지 않아 레슨 1시간 동안 스트레칭만 했다. 얼어붙은 것 같은 관절이 조금씩 녹아내리듯이 그를 향해 칼날처럼 곤두선 분노도 무뎌지는 것 같다.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슨을 받는 동안에는 생각 자체를 오래 유지할 수가 없다. 잡념이 한 발 물러서면 감정도 한 발 물러난다.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던 분노는 밤새 다 타고 남은 장작처럼 고요로 온도를 바꾸기 시작한다. 남편이 탄로 난 외도를 뻔뻔하게 사랑이라고, 자신의 운명을 이혼으로 결행한 밤도 지금의 고요와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실을 자각했을 땐 진실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널브러져 있었다. 진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열린 결말 따위로 유기되었고, 탁트인 허공에 오도가도 못한 채 고립되어 버렸다.



발레는 눈이 동작을 따라간다. 고개는 늘 빳빳이 세우고 앞을 바라본다. 시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손끝이다. 손끝에 시선을 둘 때 고개를 숙이더라도 목의 빳빳함을 유지한다. 목에서 등으로 힘이 이어져 엉덩이까지 내려온다. 엉덩이는 발끝에 힘을 전달하고 다시 돌아와 온몸에 힘을 퍼트린다. 엉덩이가 솟아오르고 목이 길어지는 기분이 든다. 한 차례 준비운동을 마치고 나면 오랜 동면에 든 근육들을 깨우는 것 같아 상쾌하다. 원장님이 두 달도 안 된 수강생에게 언제까지 백수를 할 거냐 묻는 것도 천천히 일어선 근육들이 한몫 했다.

아마추어 콩쿠르 출전 제안은 뜻밖이었다. 내가 그 정돈가 으쓱했지만,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나 동기 같은 건 일지 않았다. 원장은 스트레칭 하는 내내 콩쿠르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었다. 나는 스트레칭 하다말고 벌러덩 누워버렸다. 내 사정 따위는 지나치게 아랑곳하지 않은 원장은 밉상이긴 했으나, 배신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 같은 생에서 나를 건져낸 사람이기도 했다.

원장도 오래전 이혼하고 지금은 사진 동호회에서 만난 연하 사진작가와 사귀고 있다. 나보단 두 살 언니였으나, 꾸준한 관리 덕분인지, 전체적으로 나보다 어려 보였다. 지금은 전남편이 되어버린 그의 여자도 나보단 예쁘고 어리겠지! 실제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아직 채 사라지 않았는지, 원장의 칭찬에도 거울 속 나는 전혀 기쁜 기색 따위는 없어 보였다.

“말이 콩쿠르지. 체조처럼 음악에 맞춰 자세만 잡는 거야. 어때, 쉽지? 우리 나이에 뭐 ‘백조의 호수’ 같은 걸 하라고 하겠니! 발레리나! 한 번 쯤 꿈 꿔 본 워너비잖아!”

원장의 설득은 다소 어휘는 부족하더라도, 자신이 애써 외면하고 있던 두려움이나 속내를 들여다본 듯 간파하는 힘이 실려 있다. 허지만 원장은 속내의 색채는 알지언정 온도는 몰랐다. 스스로 적당히 분노했다 여기지만 아직도 분노가 사라지 않았고, 더뎌 식어가는 분노 때문에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지 못했다. 변기에 앉아 속을 다 비워내면 급격히 팽창하는 허기는 혼란마저 삼켜버렸다. 원장은 내 허기를 발레리나로 단정하고 자신의 자긍을 매운 치즈떡볶기와 함께 쑤셔 넣었다.

어릴 때 발레리나의 동경을 품지 않은 여자아이는 없을 거라고, 평범한 2~30대 여성은 자신들이 품었던 동경에 눈길 줄 시간조차 없었겠지만, 지금은……. 정확히 마흔의, 어리진 않지만 그렇다고 늙었다 단정 지을 수 없는, 자신의 관절과 뼈마디의 밀도를 온전히 느끼기 시작한 관조의 미를 아는 적기 말이다. 조금만 연습하면 숨은 골격과 자세교정을 통해 몸의 비율을 발굴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곤두박질치는 자존감을 크게 ‘벌크 업’시켜 줄 것이고, 지지리 궁상 떠는 지금과 다른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손해 볼 것도 없이 한 번 믿어보라는 원장의 확신에 나도 모르게 의존해버렸다.

원장의 눈에는 내가 그렇게 우울증 환자처럼 보였을까? 원장을 알고지낸지 얼추 십년이 되어간다. 몇 년 째 교사임용에 낙방하며 생활이 궁핍해졌을 때 나는 경기도 외곽 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를 하던 중 원장은 방과 후 교사로 채용되었다. 우린 그때 처음 만났다. 원장과 나는 계약직이라는 공통의 처지를 서로 위로와 의기투합을 목적으로 퇴근 후 매번 붙어 다녔다.

처지라고 스스로 연민했으나, 당시엔 정규직 같은 정착에 대한 절실함은 없었다. 단지 친해지기 위한 적당한 공감이 필요했을 뿐이다. 굳이 이혼 경력까지 닮을 필요는 없었지만, 어쨌든 오랜 기간 알고지내며, 지금의 내 모습이 전과는 얼마나 다른지 비춰줄 가장 신뢰할만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발레 레슨 두 달 만에 바(bar)가 앞에서 옆으로 옮겨왔다. 여태 바(bar)를 앞에다 두고 양팔로 균형을 잡았는데, 이제 옆에다 두고 한 팔로 균형을 잡는다. 말이 두 달이지 빼먹고 나가지 않은 날도 있었다. 습득이 빠른 줄 알고 의기양양하다가 이러다 정말 콩쿠르에 나가는 거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원장은 1번부터 4번까지 자세를 바꿀 때마다 ‘쁠리에 쁠리에’ 소리쳤다. 양 발 뒤꿈치를 붙인 자세에서 바(bar)를 잡고 무릎을 벌리듯 구부렸다 필 때마다, 원장의 목소리가 내 몸 관절마다 울리는 것 같았다. 원장이 시범을 보일 땐 무척 쉬워보였는데, 균형 잡기 매우 어려웠다. 양손을 바(bar)에서 떼고 자세를 잡아보려다 넘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엉덩이에 힘 빡 주라고 소리치는데, 힘을 줄 때마다 뒷걸음은 치더니 엉덩방아를 찍곤 했다. 원장은 엉덩이가 무거워 보인다며 레슨 전에는 화장실 꼭 다녀오라고 충고했다.

너무 진지한 표정 때문에 웃어야 할지 사실인지 헷갈렸다. 그러고 보니 항상 레슨이 끝나면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끔은 숙취에 시달리는 날이면 해장보다 쁠리에가 생각났다. 화장실을 가기 전 기본자세 1번부터 4번까지 약 삼분정도 해야 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발레는 다림질처럼 구부정한 척추를 폈다. 걸음걸이 교정해주었고, 목과 어깨를 서로 당기게 하여 숨어있던 쇄골을 발굴했지만, 가장 큰 효과는 변비가 사라진 것이었다.



생활 전반적 패턴이 레슨에 맞춰지고 있었다. 일주일 내내 레슨을 받고 있다. 레슨비 더 안 받을 테니 와서 신나게 땀이라도 빼고 가라며, 문단속만 잘 하고 돌아가라고 카드키를 손에 쥐어 주었다.

하지만 혼자 남아 연습할 일 따윈 없었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벌러덩 누워 지난 며칠을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했다. 이혼 없었던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평온을 찾아가는 내 삶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졌다. 전 남편 따위는 이미 서류에 도장 찍은 후 어디론가 떠내려가든지 상관없었다. 단지, 돌씽이 된 내 일상을 지배했던 무기력증이 발레레슨을 통해 활력으로 발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원장이나 부모님의 눈에는 몸부림처럼 비춰진다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그들의 눈에서 동정과 연민이 필터 없이 내 몸에 와 닿곤 했다. 예고 없는 시어머니의 방문처럼 난처하기 짝 없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쫓을 수 없는 관심 때문에 덜컥 콩쿠르 출전이 결정 되어버렸다.

위자료는 당분간 백수의 삶의 연장할 정도로 넉넉하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갰다는 조급함이 함께 일어났다. 나는 그 조급을 흔쾌히 반겼다. 뭔가 교사로서 소명이 있는 건 아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함부로 외면할 수 없다고 느꼈다. 그럴 때면 세포 하나하나가 이제 막 발화한 불씨 앞으로 모여 들며, 연쇄적으로 불길이 일어난다. 그제야 욕망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선명과 마주할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게 억울함이든 난처함이든 적어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그게 행동이란 걸 알 것 같다. 첫 용기가 콩쿠르다고 결심을 다잡는다.



턱을 들어 올리고 거울 속 너머로 시선을 둔다. 천천히 팔을 넓게 펼쳐 들어올린다. 양 발뒤꿈치를 붙이고 발끝이 90도가 되도록 벌린다. 손끝에 힘을 준다. 어깨를 낮추고 배에 힘을 주어 가슴을 연다. 첫 번째 자세다. 거울 앞에서 첫 번째 자세부터 다섯 번 자세까지 차례로 동작을 취한다. 발을 뻗으며 땅뒤(tendu), 붙이며 바뜨망(battement). 연속동작으로 바뜨망 땅뒤 드방(devant). 조금씩 아랫배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간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따라하듯 천천히 동작을 따르는 시선.

콩쿠르 대회를 결정하기 전까지 레슨 하는 동안 거울은 거의 보지 않았다. 발레는 시선이 곧 자세이기 때문에 거울에만 머물 수 없지만, 의식적으로 거울속 나와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자신의 전신 모습을 실컷 볼 수 있는 자세는 거울 정면과 마주할 수 있는 ‘쁠리에(Plié)’ 뿐이었다. 바(bar)를 잡고 거울을 마주 보며 다리를 벌리는 것만 해오다가 연결동작을 반복하다보니, 제법 발레를 하는 것 같은 티가 났다. 원장이 옆에 서서 매번 “시선 시선.” 외치는 탓에 발레를 하는지, 눈싸움하는지, 모든 피로가 손 발 관절 눈 신경의 끝으로 몰려오지만 나는 제법 거울 속 내 모습과 잘 마주한다.

나는 다시 동작을 멈추고, 들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날숨을 길게 내뱉는다. 그리고 턱을 치켜들고 눈을 내리깔고 뱉어낸 숨을 쫓듯 바라본다. 거울 속 나와 마주 서서 가볍게 목례한다. 마치 작별을 고하듯, 나는 나에게 그리고 나는 또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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