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 (동생 편)

꽁트 & 단편소설

by 지음 허투루


화해


형은 대기업 대리다. 돈도 많이 벌고, 번만큼 자신의 삶에 충실했다. ‘충실’이란 것이 때론 무서웠다. 특히 명절이나 제사 같은 가족행사로 온 가족들이 모일 때, 보란 듯이 양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타났다. 그건 형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때론 허영과 교만을 예쁜 선물 포장지에 감싸고 나타났다. 어지간히도 스스로 자랑스러웠는지 항상 목소리가 컸다. 걱정이나, 관심이란 그럴듯한 말로 시작한 지적과 잔소리로 나와 친척들을 곤란하게 했다. 엄마 친척들 중 누구라도 ‘빨리 장가가라’는 말로 오지랖을 차단하지만, 정작 형은 "알아서 해." "너나 잘해." 같은 말로 불씨를 지피며, 형은 사사건건 딴지를 걸고 다녔다. 형이 그 어떤 누구의 삶보다 가장 우월하다는 증명의 수단으로 자신이 번 돈과 오지랖을 사용했다.

"이거 보태 써라."

"뭔 돈이여. 됐어. 나도 돈 있어!"

"너 말고 엄마 인마. 필요한 거 있으면 보태라고 엄마는 줘도. 안 쓰잖아!"

"그냥 엄마 줘. 필요한 거 있음 갖고 있다가. 말하겠지."

"그냥 받으라고 인마!"


지적과 잔소리. 정확히 다른 친척이 아니라 내게 향한 말이었다.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쏟아내면서, 간섭과 관심의 경계 서서 언제든 한쪽으로 완전히 발을 디딜 수 있는, 유리한 명분을 취할 영악한 갈굼의 방식이었다.

나는 미대를 졸업했으나, 화가니... 작가니... 하는 명함 하나 얻지 못하고, 뒤늦게 생계 전선으로 뛰어들어 겨우 도립미술관에 취업하게 되었다. 덕분에 태마 미술전시회에 참여하여, 다른 젊은 미술가와 전시를 경험했고, 요즘은 지방신문사 문화면에 칼럼을 기고한다. 미술관에선 그저 계약직 직원일 뿐이다. 벌이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웃돌고, 원고료는 한 달 커피값 밖에 되지 않았다. 스타벅스나 다른 체인점 커피는 그림에 떡일 뿐이고, 미술관 커피숍에서 직원 할인을 해야만 겨우 하루 1잔 정도다. 칼럼 원고는 오히려 주변에 부러움을 샀지만 원고료는 한 달 담뱃값 정도랄까.

친척들은 대기업 연구단지라고 해봐야 어디에 처박혀 뭐하는지 모르는 형보단 인터넷 신문이나 페이퍼 신문에 쪼그만 사진과 글이 더 피부에 와닿았겠지, 형보단 오히려 나를 떠받들기 일쑤였다. 형으로썬 꼭지가 도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내 삶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늘 못마땅하겠지. 그걸 대놓고 선상에 올려놓고 비교질 하기엔 유치하다는 건 알고 있으니, 내려보는 듯한 시선과 어딘가 명령에 가까운 태도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꼰대가 되어있었다.

결국 형과의 다툼은 이런 한 바탕이 깔려있다고 봐야 했다. 형은 바쁘지만 형이 어머니 아버지에게 써야 하는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고, 그 시간과 함께 들인 돈이 진짜 가치를 발할 거라고 나는 형의 잔소리를 되받아치며, 형의 오지랖을 부정했고 사사건건 대립하고 맞섰다.

"형이 해. 형이 물어보고, 안 물어봐도 필요한 게 보이면 구해서 오면 되잖아."

"내가 그런 것까지 해야 되나?"

"뭘 그런 것 까지야! 그건 사소한 것부터 하는 거지."

"사소? 나도 내가 쓸 거 아껴가면서 모아서 주는 거야. 남아도는 줄 아나!"

"돈 얘기가 아니잖아."


나중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형이 회사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떻게 입사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했는지 알지 못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처절해야 하는지, 때론 비겁하고 뻔뻔해야 하는 순간에 얼마나 더 냉철하게 비겁하고 뻔뻔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할지라도 별 관심조차도 없었다. 누구나 다 각자의 자리에서 처절하다고만 여기며 서로의 이해를 외면했다.

뒤늦게 입사 초기 힘들다고 했던 말과 고민을 털어놓았던 일들이 떠올랐다. 사촌들을 불러 모아 단합이니 어쩌니 하면서 술도 못하는 주제에 꼰대 같은 건배사 서너 번 하더니, 금방 꽐라 되어 주정을 부리는 모습이 겹쳐졌다. 미대에 입학과 동시에 잘난 동기와 선배들 사이에 치이고, 알바로 용돈을 벌며, 그림을 그려 먹고살만한 게 없는 현실과 마주하며, 재능의 한계에 부딪혀 극도로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당시에 형의 넋두리는 그저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다. 취업하고 형에 비해 턱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 방금 전까지도 그리 여겨왔다.

형이 건넨 봉투를 다시 들어 형 앞에 툭 던졌다. 자존심 같은 건 아니다. 그냥 형이 뭇내 나에게 엄마와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떠넘기는 일 따위를 거절하고 형이 직접 했으면 하는 의사 였ㅈ지만, 형은 내 의도를 철저히 왜곡하고 무시했다.

"뭐 하냐?"

형은 내가 다시 돌려준 봉투는 보지도 않고 눈을 치켜뜨며 노려봤다. 뭔가 뜨끔한 기분이 사로잡혔지만, 정확히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오히려 갑자기 분위기를 차갑고 무겁게 내리누르는 듯한 말과 눈빛에 별다른 추리를 하지 못하고 형이 던진 질문을 따라 하듯 다시 질문으로 되받았다.

"뭘 뭐 해?"

"안 주워?"

"뭐 떨어졌어? 줍긴 뭘 주워?"

우린 정확하게 소파 앞에 TV를 향해 발을 뻗고 앉아 있었고 형은 소파에 기대고 양팔 팔꿈치를 소파 위에 올려놓고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단지 내 허벅지 옆에 있던 봉투를 형 양반다리 앞에 놓은 것뿐이었다. 집어던진 것도 아니고 부메랑처럼 날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툭 놓았을 뿐이다. 떨어지거나 떨어뜨린 것도 아니니 주우라는 형의 말에는 큰 어폐가 있었고, 나는 그런 어폐나 오류 혹은 오해를 바로잡을 여력 없이 형의 욕설 섞인 경고를 부당하고 부적절함을 먼저 피력했다.

"왜 저래?"

"형이 엄마한테 물어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같이 갔다가 올라고."

"그거 말고 새끼야."

"왜 또 시비여?"

"뭐 시비?"

"그럼 뭔데 왜 그러냐고."

"뒈질래? 요즘 안 맞았지! 네가?"

"환장하겠네. 뭔 개소리냐고?"

형이 자꾸 한 번 꼬인 질문인지 경고에 나는 이해나 납득을 할 수 없었고,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우린 이때 서른을 코앞에 둔, 서른을 갓 넘긴, 학문과 인격이 성숙해져 정신적·사회적으로 자기 삶을 책임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립의 단계를 무색하게 할 만큼 어리석고 유치했다.

결국 자꾸 왜 뭐 때문에 그러냐고 하고 내 언서 뒤에 욕이 매달을 수밖에 없었고, 그게 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명분이 되고 말았다. 나도 따라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으나, 형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으면, 도저히 형의 공격적이고 삐뚤어진 말을 바로잡지 못할 거란 판단 미스를 범하고 말았으니, 누가 잘못을 했건 안 했건, 상황은 매우 날카롭게 번지고 말았다. 단순이 다툼이나 갈등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 형과 나의 육체는 이미 성장기 시절 뼈와 근육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좀 더 무겁고 피해도 컸다



나는 형에게 대들다 중학생 이후 처음으로 형에게 맞았다. 네가 형편에 미대를 어떻게 다닐 수 있었는지 아냐고 소리친 형의 외침에 나는 또다시 형에게 덤벼들려고 했던 걸음을 멈췄다. 알고 있었다. 미대의 높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건 형뿐이었다는 걸. 누가 시켰냐고 되묻고 퍼붓고 싶었지만, 나는 형의 돈인 걸 알면서 모르는 척, 나중에 엄마한테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나중"은 오지 않았다. 치욕과 수치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형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형도 똑같이 무언가를 억누르듯 입술을 악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한마디 더 하면 무언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폭발 그 후엔 회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이 형과 나 사이에서 침묵으로 떠돌았다. 우린 경우 숨을 쉬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겨눈 시선을 조금씩 누구려뜨렸다.


한동안 우린 말없이 지냈다. 생각해 보면, 억울한 건 나였다. 형은 고피나 조금 났을 뿐 얼굴에 어떠한 생채기도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눈탱이는 밤탱이가 되었고, 광대는 푸르스름하게 부풀어 올랐다. 볼 안 쪽도 터져 뭐 하나 씹어 삼킬 때마다 입 속이 아렸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패배감과 무력함이었으나, 생생히 기억나는 감촉 하나 있다. 그렇게 신나게 얻어터지는 상황에도 나는 돌연 팔을 휘둘려 형의 얼굴에 스트레이트 펀치를 꽂아 넣은 것이다. 형은 그 한방에 코피 주르륵 흘렸다. 생각보다 주먹이 아프지 않았다. 순식간에 자신감이 차올랐으나 꺼져버린 것도 한순간이었다. 형은 더 흥분하기 시작했고 나는 형의 손을 피해 요리저리 도망갔다. 이러다 죽는 거 아냐 필사의 도망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만큼 결렬에 잠깐의 적막이 이 찾아왔다. 다툼의 끝을 알리는 종료 휘슬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몸을 돌려 자리를 피했고, 주위에 아무도 없음에 안도의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그 후로 우린 1년 남짓 보지 못했다. 명절에는 당직이어서 형은 고향에 오지 못했고 나는 그런 형을 기다리지 않았다. 형이 없는 시간은 형이 있었던 시간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어느 날 문득, 9월이었다. 문득, 9월 달력을 보다가 곧 추석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딱히 용건이나 궁금한 건 없었으나, 그냥 저절로 손이 움직였던 것 같다. 메시지 창을 열었다. 오랫동안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아 텅 비어 있었다. 잠깐 머뭇거렸으나, 용건은 완성했다. 오타는 없는지, 문장 보후를 까먹고 빼먹진 않았는지, 시시콜콜한 검열을 마치고, 메시지 보내기 버튼을 눌렀다. 휴대폰을 던지다시피 침대에 두고 자 버렸다. 잠은 잘 왔다.

다음 날 보낸 문자에 답장 알림이 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번에 내려와?”

“당직! 휴가 때나.”

나는 “엄마에게 전화나 한 통 드려”라는 문자를 썼다가 다시 지웠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 괜한 오지랖 같았다. 나는 출근을 서둘렀다. 휴대폰을 다시 열었을 때 내가 보낸 메시지 그대로였다. 서둘러 메시지를 닫고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플레이리스트를 열고 이어폰을 귀에 꽃았다. 애초에 뭐 때문에 대들었고 왜 치고받고 싸웠는지 모를 만큼 형과의 연락은 평범했다. 일상 또한 마찬가지다. 버스 노선은 어제도 그제도 그대로이며, 아마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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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는 하고 싶지 않아... 화해하려면 이단 싸워야 하잖아!

평화주의자 & 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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