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모임 2/2

허투루 지은 뭐 그냥 단편소설

by 지음 허투루


영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타노스 핑거스냅 이후 어느 도시의 배경 이야기

2부


진은 결혼했다. 사라지지 않은 도서관 동료 사서였다.


그녀는 진보다 네 살 더 많았지만, 진의 후임이었다. 사람이 사삼사건이 일어나던 날 그녀는 휴가 중이었다. 오래간만에 남편과 드라이브 데이트 중이었다. 그녀는 남편 옆에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려 애썼다. 남편은 한숨 자라며 흘러내리는 무릎담요를 추켜올려주었다. 도착하면 깨워준다는 말이 귀가를, 눈꺼풀을 내렸다. 그녀가 깼을 때, 어느 한적한 시골 도로 신호등 앞이었다. 남편은 없었고 남편의 옷가지가 운전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속옷까지 모조리 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 소음도 없는 적막한 도로. 멀리 차량 한 대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대로 그녀의 차를 들이받았다. 그녀는 깜짝 놀라 주저앉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찾았다. 차에 두고 내렸는지 주머니엔 작은 동전지갑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차와 충돌한 차로 다가갔다. 차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기묘한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려 휴대폰 수색에 나섰다.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운전석에 남편의 옷가지가 놓여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옷에서 남편의 휴대폰을 찾았다. 곧바로 119에 전화 걸었다. 수십 번 통화버튼을 눌렀지만 받지 않았다. 짜증과 두통이 밀려들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사방은 적막했다. 그녀는 남편의 이름을 소리쳤지먼, 아무런 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인적도 차도 다니지 않은 도로에 꼼짝없이 발이, 그리고 말이 묶였다.
그녀는 도시를 향해 한 참을 걸었다! 빌딩의 군락은 신기루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택시가 그녀 앞에 섰다. 운전기사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고 있었다. 오히려 택시기사가 그녀에게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물었고, 그녀는 무슨 일? 도대체 무슨 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시내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뛰어다니며 저마다 자신들이 아는 이름을 불렀다. 부모를 찾는 이, 자식을 찾는 이, 친구를 애인을 찾는 이들은 울며불며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녀도 사람들을 따라 뛰며 허공에 내뱉은 이름의 뒤를 바짝 쫓았다. 바람 앞 촛불처럼 꺼질 말 듯 한 그녀의 울음을 커튼처럼 걷히며 진이 나타났다. 진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털썩 주저앉았다.

BTS MIC DROP 뮤직비디오 스틸 컷 (이거 사용해도 될라나...?)

도서관은 사삼사건 전이나 후나 조용했지만, 온도는 달랐다. 사람들 발길이 끊긴 도서관은 괴물처럼 큰 고래에 통째로 삼켜진 느낌이었다. 진은 눈치 볼 사람도 자신의 행동을 제지할 사람도 없다는 걸 즐겼다. 아주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기 시작했다. 잠깐이지만, 사서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먹고살려고 치열하게 걸어오던 생의 보상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은 왜 사라지 않은 걸까? 궁금했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생각을 해봐도 딱히 알 길이 없었지만, 어딘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뉴스는 연일 남겨진 사람들의 애틋한 추억과 사연을 보도했으며, 여러 국제기구의 행보를 보도했다. 특히 UN 연설에 파란색 군복과 큰 별이 그려진 철모를 쓴 군인이 나와 사라진 사람들의 애도와 남겨진 사람들을 독려하는 연설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저 파란색 요독 멋져 보였다.
길 잃고 헤매던 분노는 외계인과 싸운 군인들을 향해 잠시 발을 떼었으나, 몇 발 나아가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군인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렸고, 이따금 UN 연설을 통해 간헐적으로 모습을 보였으나, 지구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영웅들을 기리며 돌아갔다.
진의 일과는 뉴스를 보고 스크랩하여 모아두는 일부터 시작한다. 도서관 청소와 그녀가 싸 온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곧 있을 생존자 모임의 운영지침과 지방정부 여러 부서별 회의록 모니터링으로 하루를 보낸다. 도서관 관장이 된 이후 전보다 더 바쁜 생활이 이어졌다. 그녀의 휴가는 끝이 났다. 진은 그녀와 함께 도서관을 찾는 생존자 모임의 회원들을 맞이하며, 비아냥거리거나 방관하며 겉도는 그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를 투영시켰다. 그녀도 남편을 잃고 부모도 잃은 후부터 대담해졌다. 그녀는 모임 회원들 모습에서 무엇을 발견한 걸까. 업무태도만 보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던 그녀가 묵묵하게 진을 따르며 진의 행동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 눈에 담았다. 노골적으로 진의 일상을 파고들며 붙어 있으려고 했다.
진으로썬 처음 마주한 관심이었다. 진의 시선에 그녀가 매번 걸리기 시작하고,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 있으려고 애쓰는 게 위태로워 보였다. 자신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사삼사건 전, 동료 사이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눈빛이 아니었다. 항상 자신과 눈을 맞추려 했고, 자신을 봐달라는 강렬한 열망이 내비쳤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면, 민망함에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마치 아이를 대하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어느새 손은 진의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을 스치곤 했다. 진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싫지 않았지만 묘한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
울고 불며 까무러친 그날 밤만 생각하면, 그녀의 관심을 냉정히 뿌리칠 수 없었다. 사실 외면에 가까운 무관심이었지만 늘 그녀는 진의 시선 주위에 머물며 자신과 자신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툭툭 내뱉었다. 남편을 그리워하는 방식이라 생각했지, 자신의 곁을 내주고, 그녀의 곁에 스며들 거라곤 생각 못했다. 그렇게라도 일상을 찾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진은 그녀를 생존자 모임에 이름을 올리고 자신에게 한 이야기를 모임에서 해주길 독려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이따금 진을 힐끗거렸다. 마치 자신을 이곳에 버려둔 것처럼. 의심과 불신의 눈빛을 생존자 모임 인원 아무도 모르게 진에게만 보내곤 했다.
진은 그녀의 시선이 난감했으나, 피하지 않았다. 이 모임을 통해 우리는 이전 세상과 다른 세상이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새로운 세상의 개척자 같은 태도를 지니지 않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무슨 만화영화의 주인공 대사처럼 약속처럼 그녀를 설득했다.
“진 씨가 영화 <상실의 시대> 본 적 있느냐고 묻던 게 기억나요. ‘나오코’란 여자가 나오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하고 혼자된데요. 그 후 몇 번의 사랑의 기회가 찾아오지만, 나오코도 그가 사랑했던 사람처럼 자살을 한데요. 그리고 나오코를 사랑했던 남자가 있는데 그도 많이 슬퍼하고 죄책감에 살아간데요.”
“......”
회원들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봤다. 아직 그녀의 말이 더 남아있다고 느낀 듯 회원들은 기다렸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입을 떼지 않았다. 회원들은 그녀를 응시하며 침묵을 깨어줄 그녀의 말을 기다렸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들지 않았다.
“끝난 겁니까?”
대답이 없자 회원들은 고개를 돌려 진을 보았다.
“시작이 반이죠. 용기를 내어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나중에 영화는......”
회원들은 그녀의 말을 모두 한 마디씩 거들고 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부분 영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 생존자모임 첫날이 생각났다. 운영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필욘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는 사람이 없어 결국 첫 스타트를 끊어야 했다. 회원들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를 나누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 생각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떠안은 책임에 마음이 무거웠다.

진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더 불행하게 편집해야 했다. 전부를 잃은 사람들에게 잃은 게 딱히 없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건 불편했다. ‘나는 괜찮다고 나만 괜찮은 것 같다’고 하는 말들이 마치 조롱하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겼다. 차라리 어릴 적 가정폭력의 기억이 사람들로 하여금 연민과 동정으로 ‘우리’란 울타리를 만들었다. 정작 회원들은 진의 불행에 관심 없었다. 다들 자신의 불행과 저울질하며 섣불리 자신의 트라우마에 타인의 불행이 끼어들지 못하게 경계했다.
“우리 다음 주도 다시 만나는 거 맞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생존자모임지원금이 끊기지 않는다면 또 만나게 될 걸세”
“…….”
p는 j를 보았다.
“몇 푼이나 된다고, 손녀에게 안 갑니까? “
“안 그래도 가려고 했네. 혹시 가끔 빠져도 출석 체크는 해줄 수 없나?”
“당연히 안되죠.”
“고지식하기는. 뭐가 그리 딱딱한가?”

"저도 시키는 데로 하는 사람인데요. 이거라도 잘해야 분유 값을 벌죠."
모두 돌아가자 진은 수첩을 꺼내 그들이 나눈 대화를 적었다. 대부분 쓸데없는 말뿐이지만, 진에겐 중요한 일과였다. 사실 진은 아무래도 좋았다. 회원들이 어떤 마음과 슬픔을 지니고 살아가는지, 자신의 삶과 상관없다고 되뇌었다. 또한 소속감 따위가 없어도, 모임에 참석하는 이유가 지원금 때문일지라도, 진에게 중요한 건 그들이 느끼는 소외감. 그 소외감과 마주할 때마다 진은 애정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세상이 바뀌고서야 비로소 세상에 애착이 생겼다.
회원들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변화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에 그들은 고통스러워했다. 변화를 인정하기 시작한 그녀는 새 가정을 꾸렸고, 전 남편과 생기지 않았던 아이가 생겼다. 변화는 놀랐고 아주 가끔 무서웠다. 그녀는 사삼사건 이전의 세상을 소원하고 그리워했지만, 막상 또다시 변화된 세상과 조우한다는 두려움에 그리 편한 나날을 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희뿌연 벽 앞에서 고여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노골적 시선은 애정이 되었다. 영화 <상실의 시대>를 함께 본 그날, 그녀와 밤을 나누었고 첫사랑이 시작했다. 그녀에게 꼭 나오코를 보여주고 싶었다. <상실의 시대> 살면서 유일하게 본 영화였다. 먹고사는데 충실하느라 극장 같은 곳엔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연애란 건 해야 했으니, 으레, 데이트 코스로 한 번쯤은 경험해야 하는 필수과목 같은 것이 극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개봉하는 영화는 없었다. 비디오 대여점과 DVD방은 의외로 사람들 발길을 불러 모았다.

세상은 또 변한 것이다. 끝이란 마무리도 없이, 마침표도 없이 순식간에 세상이 변했다. 사람들이 사라졌지만, 또 사람이 태어났다. 인구조사는 매년 시행되었다. 매년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죽음의 형태는 자살이 자연사보다 두 배 높았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세상을 빠져나가는 방법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과연 그토록 바라던 곳으로 잘 돌아갔는지 모르겠다.
p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들려주지 않았다. 무엇을 잃고 어떤 분노가 그를 세상과 단절시켰는지, 회원들도 경찰에게 알려줄 만한 정보 같은 건 없었다. 경찰은 단순 자살이라고 결론 날 거라며 계속 모임을 유지해 달라고 당부했다. J는 자살이 단순할 수 있는가? 물음을 던졌지만 누구도 받지 않았다. 매년 증가하는 자살과 죽음, 인구는 더 줄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도서관으로 팩스가 왔다. 다시 충원되는 인원의 프로필이었다. 진은 p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른 회원들의 얼굴을 한 명씩 바라보았다. 그들도 진을 바라보았다. 진은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생긴 걸 축하한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이때만큼은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Z도 진에게 축하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배가 볼록 솟아있었다.
K는 조만간 전시회를 열거라며 모임의 첫 번 째 말을 시작했다. 거리 전시회를 설명하며 회원들이 도와줘야 한다며 한 명 한 명 눈을 맞췄다. 진은 그러겠다며 다음 장소는 도서관이 아니라 K의 전시회에서 보겠다며 회원들의 무거운 엉덩이를 독려했다. 생존자 모임 생존자 나들이로 정해졌다. 첫 외출이었지만 누구도 들뜨지 않았다. 다시 평상시로 돌아와 침묵으로 생존자 모임은 반복할 것이다.


끝-


“허투루 지음”의 허투루 지은 계간(?) 단편 소설

적당한 날에 다시 봅시다!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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