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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월 Jan 03. 2018

나도 사회화가 필요해

사회와와 소속감에 굶주렸던 지난 날

사회화라는 단어는 정규교육과정을 거칠때 듣기 시작했다. 요즘은 강아지를 키우면서 가장 큰 숙제처럼 다가오는 단어이기도 하다. 처음에 2개월짜리 작은 강아지를 집에 데려왔을때 난 배변훈련 다음으로 사회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우리 가족과, 이 동네사람들과, 이 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어 비오는날 빼고는 하루에 산책을 2번씩 꼬박꼬박 했다. 간단한 화장품을 사러 들어갈때도, 세탁소를 갈 때도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다. 강아지들이 많은 애견카페도 데려가보고 강아지공원에서 뛰놀게도 해보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강아지는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강아지들을 싫어해서 요즘은 굳이 싫어하는 환경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  굴러다니는 비닐봉지에도 놀라는 모습을 보고는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포기하고 말았다.

 


나는 강아지의 사회화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데 정작 나의 사회화는 돌보지 못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로 업을 바꾼 나는 자연히 집에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엔 이 여유가 좋았다. 집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볼 수 있어 좋았고 못봤던 드라마도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매일 일주일에 5~6번씩 보던 회사사람들을 보지 않으니 스트레스는 줄었지만 소속감 또한 집에 머무는시간에 비례하여 줄어들기 시작했다. 자존감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집에서 말 없이 집안일을 하거나 집에서 하고있는 일의 간단한 업무전화 이외에는 입을 벌리지 않았다. 점점 주눅이 들기 시작하고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쉬운일이 아니었지만 가치있는 일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보람이 없었다고 해야될까. 주로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니 그 일을 하는 내 자신조차 가치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애증이 가득했던 광고팀..



그런 시기가 근 3개월이상 이어지고 있던 때에 우연히 남편과 함께 테니스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동네 코트에서 1:1로 레슨을 받으며 사람들을 보고 운동했다. 일주일에 3회이상 가는 운동의 규칙성이 나의 신체리듬을 바꾸어놓았고 땀흘리고 운동하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코치님도 좋았고 같이 난타치자며 먼저 다가와주시는 아저씨들도 재밌었다. 이런 과정에서 미약하게나마 소속감이라는것도 생겨났다. 서로 사는곳도 핸드폰번호도 잘 모르면서 공을 주고 받는 사이라니 신기했다. 그러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동네코트에서 1년정도 레슨을 받고 다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밖의 이유로 그 곳에서 나왔다. 나의 사회화와 소속감에 대한 기준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에 대한 결과였다. 그 이후 더 큰 테니스코트를 사용하는 테니스클럽에 가입하여 1년이 넘게 다니고 있는 지금은 아주 만족한다. 나는 운동자체를 좋아하기보다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안부도 주고받고 농담도 주고받는게 더 좋아서 가는 사람인가 테니스인으로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현재가 좋다. 



나도 사회화가 필요해,
이 감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지.


테니스라는 운동은 내게 활력을 준다.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면 테니스는 나를 살게 하는 운동이다. 테니스를 접하기 전 요가, 헬스같은 운동도 해보았으나 금방 지치곤 했다. 둘다 개인이 혼자 묵언수행하듯 하는 운동이어서 그런걸까. 전쟁같은 회사에서 쉴틈없이 전화와 회의에 시달리는 매일을 보냈더라면 아마 나는 요가와 헬스를 너무 좋은 운동이라며 꾸준히 했을 것이다. 우연히 테니스라는 운동을 시작하게 된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팔꿈치가 너무 아파 쭉 필수 없어 미간이 찌푸려지는 날에, 또 남편이 왜 아령운동 안하고 아프다고만 징징대냐고 뭐라고 하는 날만 빼면 그렇다. 보통 동호인들은 단식보다는 복식게임을 주로하는데 같은 팀 사람과 게임중에 하이파이브하는게 그렇게 좋다. 파이팅을 외치며 이기자고 으쌰으쌰하는것도 좋다. 남편말고, 우리집 강아지말고 사회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필요했던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 안에 속해있다는, 멤버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뚜벅뚜벅 운동하러 가던 날


강아지의 사회화는 평생이라고한다. 보통 사회화시기는 2개월~6개월 사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평생이라고 하니 아직 우리 강아지의 사회화훈련을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화과정이 존재하겠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인 나같은 전업주부에게는 운동, 간간히 하는 취미생활로 사회공기를 마시며 세상과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 아닐까.


이걸 하지 못하면 난 못산다며 울며겨자먹기로 코트에 나가는 날도 있었다. 테니스 따위가 뭐길래 내가 이운동에 이렇게 목을 메는건지, 왜 이런 상황이 되고야 말았는지 생각해보면 서러웠다. 과연 결혼때문인지 의심하는 날도 있었다. 다니던 직장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오게 되었고, 아이없는 기혼자라며 외면하는 사회덕에 재취업은 어려웠다. 집에서 남편오기만을 기다리는 내 모습이 바보같았다. 시댁이라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그 사실만으로 괜히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집안일은 거의 대부분 집에 있는 내가 처리했다. 이렇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려면 무언가라도 해야했다. 온몸으로 이 환경을 받아들여야 하는 나를 위해.   


테니스로 시작한 나의 발버둥은 성공적이었다. 아직 아이가 없으니까 언젠가 생길 아이를 위해서도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기로, 지겨운 자기연민을 그만두기로 했다. 내 이름이 대표로 떡하니 붙어있는 사업자등록증을 보며 올해도 열심히해서 많이 벌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사람이니까 언젠가는 또 다른 감정의 부족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부디, 그때에도 좌절하지 말고 어떤 사소한것이라도 나를 일으켜줄 것이라 생각하며 놓치지 말고 붙잡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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