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책이 상대방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진행됐던 독서모임의 선정 도서는 <데미안>이었다. 이 책은 친구 A가 선정한 도서였는데, 번개로 모인 자리에서 A는 갑작스럽게 이 책을 추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이 책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독서 모임에 J와 P는 철학이나 문학보다는 경제 쪽으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고전티가 풀풀 나는 이 책을 맘에 들어할까 싶었다. 그런데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웬걸 둘 다 좋은 반응을 보여 일사천리로 이 책은 다음 모임 도서로 선정됐다.
그런데 모임 일주일 전부터 이 책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렸다. 나와 이 책을 추천한 A는 내용 빼고 글빨만 봐도 즐겁다는 극찬 파였다. 반면 P와 J는 불호 파였다. 그들은 당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이 책을 발제한 A는 이러한 반응에 당황스러워했다. 본인이 보기엔 너무 좋은데 상대방에게 별로라는 평을 받으니 그랬을 거다.
한참을 단톡방에서 두들겨 맞은 그는 내게 풀 죽은 목소리로 이 책이 정말 별로냐고 물어봤다. 난 이에 대해 매우 즐겁게 읽고 있고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은 책이라면 이미 가치를 증명한 거 아니겠느냐며 답했다. 실망감에 축 쳐져 있는 그의 모습이 남 같지 않았다.
나도 이런 경험이 꽤 됐기 때문이다. 다른 독서모임에서도 내가 발제한 <보통사람들의 전쟁>에 대해 별로였다는 평을 받았을 때 의기소침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근태 작가님이 본인의 책에서 추천하기도 했고 읽어본 나도 좋았기에 추천한 건데 의외에 반응에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겉으론 티 내지 않았지만 이때 느꼈던 안 좋은 감정은 꽤나 오래갔다.
거기에 배우자인 HJ에게 제임스 클리커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을 추천했다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흘겨봄을 당하기도 했다. 무슨 이런 책을 추천하냐는 핀잔 어린 눈빛이었다. 내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는 독서모임에서 그 해의 읽었던 책들 중 이 책이 1위에 꼽혔기 때문이었다. 나도 이 책을 통해서 습관을 만드는데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런 여러 경험들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할 땐 좋게 말하면 신중해졌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해졌다. 내게 맞는 책이 상대방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몸으로 체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여러 가지들이 이유들이 있다. 세 가지로 말해보자면, 첫 번째는 사람마다 각자 살아온 경험이 다르다. 집에서 장녀나 막내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소설에서 어떤 주인공에 몰입하느냐가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문장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에겐 굉장히 감명 깊은 문장이 다른 사람에겐 일상적인 풍경처럼 넘어가기도 한다.
두 번째는 현재 고민거리가 다르다는 점도 있다. 만약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은 데미안 같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책에 대해선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기피할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해 안다는 건 돈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읽을 당시 컨디션이다. 책의 모든 부분을 동일한 집중력으로 읽긴 어렵다. 장소와 시간 그리고 어제 수면상태에 따라서도 가독성이 달라진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좋았을 때 본 부분에서 좀 더 몰입이 되기가 쉬울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들로 책에 대한 평가는 다 달라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의 부족한 일천한 경험이나 부족한 안목을 탓하기보단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다양성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다양성을 경험해 볼 기회는 많지 않다. 특히나 집단에 순응하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그래서 이런 독서모임이 좋다. 책을 매개로 한 발짝 멀리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혼자라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문장을 다른 사람을 통해 재발견하는 것도 또 다른 묘미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 집중도도 달라진다. 책을 읽을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읽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할 질문 거리를 찾기 위해 적극적 독서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내게 맞는 독서가 상대방에게도 맞지 않는다는 건 이런 의미에서 썩 유쾌하진 않아도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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