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을 많이 봐도 소용없는 이유

by 도냥이

친구 A와 카톡을 하다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A : 너 프로필 보면 한 달에 다섯 번은 바뀌는 것 같은데 무슨 달에 8권을 이상을 읽냐

도냥이 : 시간이 많아서 그럼


A가 내 카톡 프로필을 보고서 말한 내용이다. 나는 현재 읽고 있는 책들을 찍어서 카톡 프로필에 올리고 있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 것은 아니고 배우자인 HJ가 먼저 읽은 책들을 카톡 프로필에 올렸다. 이렇게 올려두면 사람들 반응도 좋고 기록용으로 보관하기에도 용이하다는 그녀의 권유에 나도 따라서 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런 행동이 남들에게 책 많이 읽는다고 자랑하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들었었다. 또 읽고 있는 책들을 남들이 안다는 게 썩 기분 좋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뭐 어때?”하며 올린다. 그녀 말대로 단점보단 장점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장점들에 대해서 쓰려는 건 아니고 이어지는 A의 마지막 멘트를 보고 느낀 점을 적으려고 한다.


A : 너 프로필 보면 한 달에 다섯 번은 바뀌는 것 같은데 무슨 달에 8권을 이상을 읽냐

도냥이 : 시간이 많아서 그럼

A : 그 정도 집어넣고 쓸게 없다는 게 신기함.


처음 프로필이 자주 바뀐다는 친구 A 말에 어깨가 으쓱했다. 독서량이 많다는 이야기가 듣기 좋았다. 이런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면서 부끄럽기도 해서 시간이 많아서라고 겸양을 떨었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친구 A말에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 맞은 기분이었다.


이 말을 보고서 내가 헛독서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디스 하려고 그가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란 걸 알았다. 벌써 십 년 이상 봤왔고 독서모임을 같이하고 있는 A가 이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아마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거다. 내가 평소에도 A에게 글감이 없다며 자주 하소연하곤 하는데 이런 내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거다.


정작 내가 기분이 나빴던 이유는 이 말이 내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나는 독서를 허투루 하고 있었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책을 많이 읽고 있다는 만족감에만 취해있었다. 책을 사서 형광펜을 긋고 빈칸에 내 생각을 적으며 적극적인 독서를 하고 있다며 나 스스로를 속이며 위안했다.


일 년에 백 권은 본다는 것에 취해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 것처럼 아무리 많은 책을 보더라도 이것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인생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안일함이 쌓여 책에서 본 것들을 나만의 서사로 만들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러니 내 뇌에서 이런 정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휘발시켜 버린 것이다. 단순히 이 책을 봐야지와 이 책을 보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로 만들어야지의 차이는 똑같은 읽기더라도 집중도가 달라진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이번 기회에 또 느꼈다. 그동안 아웃풋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책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봤던가. 나도 모르게 아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고 착각에 빠져있었다. 물도 고여있으면 썩듯이 지식도 마찬가지다. 아웃풋 하지 않는 지식은 금세 휘발되고 썩어버린다.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것이고 취미면 눈만 나빠진다고 최재천 교수님 말이 떠오른다.


Image by Hermann Traub from Pixabay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가짜 노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