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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Oct 30. 2023

드디어 막내 탈출이다!

나만 아니면 돼!

회사에 부서 이동이 예정됐다. 사람들은 모이면 인사에 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웠다. “A가 팀장이 된다더라, BC와 싸워서 다른 팀으로 간다더라”등 진실을 알 수 없는 여러 이야기들이 분분했다.


난 팔짱 끼며 이런 이야기들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무한도전에서 나왔던 다음 유명한 문구처럼.


나만 아니면 돼!


광기 어린 노홍철 표정이 떠오른다. 그렇다 이 당시  인사이동 대상자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 파트에는 나보다 먼저 이곳으로 온 동기가 있어다. 가도 그가 가지 내가 가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당사자가 아닌 인사이동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주식과 부동산 이야기같이 어떤 직장인이든 공감할 수 있는 주제다.


어쩌면 이건 가십거리를 제공해 직원들은 멍청하게 만들려는 회사의 음모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사는 나와봐야 안다는 말을 나는 기억했어야 했다.


이런 안일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한줄기 충격적인 소식에 전해졌다. 인사 명단에 내가 있다는 동기 단톡방이었다. 확인해 보니 진짜로 내 이름이 있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신나게 불구경하던 곳이 우리 집이었던 거다. 생각지도 못한 근무지 변경에 당황스러웠지만 곧 괜찮아졌고 이내 설렘이 찾아왔다.  


지금 있는 곳이 우리 회사에서 험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했고 아래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막내 생활을 무려 삼 년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바로 위 선임과 나는 십 년 이상 차이가 났다. 그가 여기서 처음 일했을 때 난 초등학교 급식을 먹고 있었다.


바로 위 선임이 과장이다.


이런 이유들 팀에서 막내 역할 및 행정적인 일들을 도맡아 해오고 있던 참이었다.      


지나니깐 금방이라고 느끼지만 삼 년 동안 막내라는 건 고역이었다. 동기들은 대부분은 진작에 막내를 벗어나서 본격적인 업무를 해나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나는 아직도 맨 밑에서 서무업무를 하는 처지였다. 이런 스트레스가 한창 심했을 땐 후배가 내 위로 먼저 올라가서 이것도 모르냐며 무시를 당하는 꿈도 꾸곤 했다.


이렇게 간절히 옮기고 싶을 땐 기별도 없더니 반쯤 포기하고 나니 이렇게 다른 곳으로 가게 됐다. 취업 준비할 때도 반쯤 포기할 때쯤 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내가 가게 될 곳은 회사에서도 괜찮은 근무지로 평판이 높았다. 어떤 회사나 있는 삼대가 공을 쌓아야지 갈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조장님과도 잘 알았다. 예전에 이 년동안 같이 근무를 했었다. 떠나실 때 먹먹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모든 게 순탄하다. 이쯤 한 번 외쳐본다. 맘 같아서는 산정산에서 외치고 싶은데 요즘은 그러면 안 된다니 속으로라도 외쳐본다.


야호! 드디어 막내 탈출 서무 탈출이다!!


그동안 지긋지긋했다. 서무를 해본 사람은 안다. 이 일이 사실상 잡부에 가깝다는 것을. 서무를 네이버 치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특별한 명목이 없는 여러 가지 일반적인 사무. 또는 그런 일을 맡은 사람.


여기서 나오는 특별한 명목이 없다는 말은 남들이 귀찮아하는 일들은 다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회사에 커피가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부터 교육시간을 짜고 휴무계획을 세우고 그 밖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여러 업무들을 도맡아 한다. 


기껏 힘들게 잡아 놓은 교육일정을 갑작스러운 조원의 연차로 인해서 다시 짜야하는 스트레스와 “도냥씨 사무실에 뭐가 없는데 이것 좀 사줘”,“병가처리 어떻게 하면 돼?”등 얘기는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


반면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크다. 지금 있는 곳이 힘들긴 삼 년 넘게 일하면서 적응이 됐는데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하니 거부감이 들긴 한다. 분재당하는 식물이 이런 기분일까 싶다.    


같이 힘든 점을 공유하며 동료들과 으쌰으쌰 해왔는데 갑자기 헤어져야 한다는 점도 아쉬움이 크다. 나에겐 이 점이 가장  큰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결국엔 사람인가 싶다. 천국이라도 내 위가 악마라면 괴롭고 지옥이라도 내 위가 천사면 할만한 것이다. 힘들게 일하는 그들을 내버려 두고 나 혼자 떠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조장님과 다시 만나게 된 것처럼 그들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을 믿는다. 그때 힘들었던 경험이 즐거웠던 추억으로 미화되는 날을 고대한다.


                                                                                                    

이 글에서 등장한 모든 인물, 직위, 날짜등은 작가가 임의로 변경했습니다.


Image by Shelley Wiart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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