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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냥이 Apr 13. 2024

술자리에서 200만 원짜리 물건을 산다고 말했다.

나였다면 안 했을 것들 해보기.

야 우리 올해에 나라면 원래 안 할 거 같은 거 해보자!


술자리에서 불콰한 얼굴로 내가 친구들에게 한 말이다. 이런 내 말에 세 명은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라도 맨 정신이라면 꺼내지 않았을 말이었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헤롱대는 내가 생맥주에 하이볼까지 마셔서 그랬을까. 어쩌면 과음으로 인한 객기에 가까웠을 수도 있다.      


이런 뜬금없는 말 저면에는 일말의 진실은 숨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이런 말을 한 까닭은 나 스스로도 현실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 회사나 개인적으로도 정체되어 있다고 느끼던 나에겐 도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친구들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라서 그랬을 거다. 내가 한 질문에 대답하려면 일단 나라는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데 평소에 나라는 사람에 대해 깊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 모두는 타인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고민하지만 정작 나 스스로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다. 이런 생각을 매일하고 살기엔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든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이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아?”란 고민은 누구나 해봤을 거다. 누군가는 십 대에 이 생각을 하고 누군가는 삼십 대 혹은 그 이상 나이에서 하게 된다. 사람들이 인스타와 같은 sns를 보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다. 본인이 맞게 살고 있는지를 여기를 통해 확인하는 거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사는구나라는 위안을 받는 거다. 혹은 남들을 이렇게 웃는데 나만 슬픈가라는 소외감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브런치란 플랫폼만 봐도 이혼이야기는 상위권에 포진되는 측면이 있다. 아무래도 겪어보지 않은 일은 사람들은 흥미로워한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 J가 말을 꺼냈다. 대기업에 다녀 일이 한창 바쁜 친구는 롤 다이아 찍기를 목표로 삼았다. 현재 이 친구 티어는 플래티넘이다. 롤 티어가 아이언-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에메랄드-다이아-그랜드마스터-챌린저이니 나름 현실성 있는 목표다.      


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목표로 하는 티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목표를 정한 것은 다이아를 찍으려면 시간을 투입해야 할 텐데 이런 시간 투입이 현생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에 지장을 줄 수도 있고 뭔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말을 꺼낸 취지는 나아지는 방향으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자는 것이었는데 급 이 말을 꺼낸 게 후회되는 참이었다. 하지만 원래 말대로 안 되는 게 인생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른 친구 D는 현재 있는 부서보다 더 힘들게 일하는 부서로 간다고 선포했다. 이 친구 마인드는 과장에서 끝내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야심이 없는 친구다. 물론 내가 이 친구 속을 까본 건 아니니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말은 그렇게 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친구가 회사에서 험지로 꼽히는 곳에 지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면 안 했을 행동인 거다.     


나까지 포함해 네 명 중 마지막 친구 K는 말하는 것을 주저주저하길래 내가 롤 골드 찍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반강제로 말했다. 이 친구는 우리가 만난 삼 년 동안 롤을 하라고 말해도 말해도 절대 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래서 이 친구에겐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깨보라는 의미로 제안했다. 해보고 안 맞으면 안 해도 그때 늦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말을 꺼낸 나는 특별히 할 얘기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말이 바로 떠오르거나 내뱉을 수 있었다면 원래 나였다면 했을 행동일 것이다. 내가 주저주저 하자 친구들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200만 원짜리 물건 사기를 제시한다. 그것도 모두가 쓰는 가전제품이 아닌 나를 위한 물건으로 말이다. 이 얘기를 듣자마자 거부감이 든다. 배우자 HJ에게 이 돈을 쓰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내가 괜한 질문을 던졌나 싶기도 하다. 이런 내 마음을 살펴보니 이렇게 거부감이 드는 걸 보니 잘 말했다 싶기도 했다. 이런 뼛속깊이 드는 거부감은 원래 나였으면 안 했을 거라는 강한 반증이기도 하니깐. 


결혼 전이나 후에도 이렇게 한 번에 많은 돈을 쓰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친구들이 좋은 목표를 선정해 줬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간만에 스릴이 느껴진다.           


내가 사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꺼낸 이유는 옛날에 유퀴즈에서 나왔던 김영하 작가 말 때문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본인이 절대로 가지 않을 것 같은 곳을 여행지로 삼아보라고 말했다. 이런 사고 실험을 통해서 본인의 틀을 깰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를 들어 나라면 에콰도르는 안 갈 것이다.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그동안 살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큰 즐거움이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여행을 다녔을 때도 뭔가를 보러 가야지 할 때는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가서 경험을 했을 때 경험은 지금도 밀도 높게 가지고 있는 경험이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도 그것이기도 하다. 나라면 원래 보지 않았을 책들을 추천받아서 그것을 읽고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본인이 익숙한 테두리 내에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데 이런 틀에 박힌 행동은 진정한 변화를 만들기가 역부족이다. 이런 내용도 브런치에 이미 다 적어서 물리는 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현실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으니 한 번 더 적어본다.     


술자리에서 한 얘기라 다들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도 알 수가 없다. 아마 안 지켜질 확률이 높을 거다. 술자리에서 한 얘기치고 진실인 법이 거의 없으니. 하지만 이렇게 나라면 안 했을 행동들은 생각해 보고 말까지 해봤다는 경험 그 자체로도 의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행동을 물꼬로 나 이상의 것들을 줄줄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쓴 김에 아래와 같이 내가 각자가 했던 공약들을 적어서 카톡 공지방에 올려뒀다. 아마 이런 공지는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좋은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어린 마음을 품어본다.     

     

 독서 평론가 이동진작가도 의도적으로 본인이 읽지 않을 만한 분야의 책을 산다고 한다. 나이가 먹을수록 폭이 좁아지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완화해 보려는 목적에서다. 친구들과 한 내 150만 원 쓰는 것 말고도 브런치에 나라면 하지 않았을 다른 것들을 적어보는 글을 한 번 올려 봐야겠다. 쓰면서 내가 어떤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PS. 사실 이 글은 2024년도 1월에 작성한 글이다. 써둔 걸 까먹고 있었는데 우리 회사 팀장님이 했던 질문 덕택에 이 글이 떠올랐다.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란 질문이었는데, 여기에 난 다양한 취미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답하고 원래 나라면 안 했을 그런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이 글이 떠올랐다.  


지금 와서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리뷰해 보자면,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까지 200만 원 상당의 물건을 사진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선포해서 그런가 신기하게도 사고 싶은 물건은 생겼다. HJ가 허락해 줄지는 모르겠다. 꾸준히 기타를 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은 많이 해소됐다. 떨어지긴 했지만 본사로 지원을 하기도 했고 기타를 배우고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있는 게 좀 도움이 됐다. 


Image by Ai Copi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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