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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픔이 더 서럽다.

by 도냥이

6년 간 원인 모를 통증에 시달렸다. 엉덩이 깊은 곳에서 시작된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됐다. 처음엔 엉덩이만 아팠다. 나중엔 허벅지와 무릎도 이상이 생겼다. 지금은 발목까지 내려와 오른쪽 다리 전체가 저리다.


병원에도 가 봤지만 소용은 없었다. 9번의 X-ray 2번의 MRI를 찍고 의사 선생님들의 소견에 따라 다양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스테로이드 주사, 초음파 치료, 물리치료, 침도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진 못했다. 받는 순간에는 효과가 있나 싶다가도 집에만 오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갔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서 나는 통증과는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무려 이 친구와 6년을 함께 했으니.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을까. 이제는 아프지 않고 살았던 때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생의 동반자라는 말까지는 쓰고 싶지 않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었다면 진작 버렸을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같이 갈 뿐이다. 물론 이렇게 마음먹는다 해도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남들은 늘 하는 것을 나는 하지 못할 때면 괴로움이 배가 됐다.


나는 청바지를 입지 못한다. 청바지가 엉덩이를 압박하면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다리가 저리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교를 다닐 때 멋 부리고 싶은 마음에 고통을 참고 청바지를 계속 입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 상태에서 더욱 심해지진 않겠지?”하는 불안감을 가진 채로 만용을 부렸었다.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던 어떤 의사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 그날 이후 학교에 이틀 동안 나가지 못했다. 통증이 허리 전체로 번져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상태를 잘 알지만 그럼에도 옷장 안 옷걸이에 반으로 접혀 걸려있는 새 청바지들을 볼 때면 못내 마음이 쓰리다.


1.jpg 옷장 안 청바지들

또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 청바지와 같은 이유에서다. 고통이 심해지기 전에 나는 사람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상태가 심해지고 나선 이런 자리를 피하게 됐다. 한두 번 연락을 피하니 이런 만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굳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 점 덕분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자리만 가게 됐다. 고통을 감수할만한 자리 말이다.


그래도 이런 점들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내가 가장 힘든 것은 다른 사람이 내 아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다. 특히 그 대상이 부모님이나 여자 친구라면 더 서럽다. 엄살 부리는 거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낼 때면 아픔이라는 것을 꺼내서 눈 앞에 보여주고 싶다. 드래곤 볼에 나오는 전투력 측정기처럼 고통도 숫자로 측정된다면 좋으련만.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고통은 주관의 영역에 놓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고통은 환영받는 대화 주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책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가 반가웠다. 저자가 자신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히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디테일하게. 덕분에 나도 이렇게 내 아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저자인 벨라 마키는 중증 정신 질환 환자다. 그녀는 이로 인해 데이트 약속도 종종 펑크내고 시험보다 중간에 나오기도 한다. 대학도 중퇴했고 이혼도 당했다. 나이라도 많으면 굴곡진 인생을 잘 극복했구나 미화시킬 수도 있을 텐데 심지어 그녀는 젊기까지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고 나보다 반 발 앞서가는 사람 이야기라서 좋았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조금은 냉정하다 싶을 만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오래 겪어봐서 아는데, 평생 불안증이나 우울증에 시달렸다면 남은 생에도 그럴 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좋다.


나는 정신 질환을 겪고 있진 않지만 뚜렷한 원인이 없다는 점과 앞으로 나아질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 점에서 내가 겪고 있는 병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평생 고통과 함께 살아갈 생각을 하니 암담하다. 마치 영원히 돌아가는 러닝 머신에 올라 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발도 아프고 몸도 슬슬 힘든데 기계에서 멈출 수도 내려올 수도 없다.


이런 우울한 생각에 빠지면 내 세상은 점점 좁아진다. 결국 내 세계는 줄어들어 작고 검은 점이 돼버린다. 이때가 되면 나는 이 세상에 아픈 건 나뿐이라는 것 같은 생각에 강하게 사로잡힌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벨라 마키는 이렇게 얘기하기도 한다.

정신 질환에도 믿음이 필요하다.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 나락으로 영영 떨어져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책 <굿 라이프>에는 행복해지는 두 가지 방법에 대해 나온다. 첫 번째는 자신의 욕심을 내려놓고 기대치를 낮추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도 무사히 눈을 뜰 수 있어 감사합니다.”하고 속으로 외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행동을 찾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전자에 비해 후자가 무시되거나 심지어는 사치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아마 자신이 뭘 하면 행복한지에 대해 알아야 하고 활동에는 돈이 든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말처럼 행복을 원한다면 행복할 수 있는 활동을 자주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만약 행복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불행하진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나도 요새 달리고 있다. 이 책을 보기 전부터도 달리고 있었지만 본 후로는 더욱더 몰입해서 달린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린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 달린다.


2.jpg 책에서 강추한 초보자용 달리기 앱 C25K


참고 문헌 : 벨라 마키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 최인철 <굿 라이프>

참고 사진 : https://pixabay.com/images/id-64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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