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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by 도냥이

명반병은 특별한 사람만 걸리는 게 아니야

내게 그 말은 곧, 왜 이렇게 남들 시선만 신경 쓰며 사느냐는 물음과 다르지 않게 들렸다. 비단 그림에 대해서만이 아니었다. 영화에 대해서, 연출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묻고 있었다. ‘왜 이렇게 나 자신을 자꾸 잃어버리지?’ 38p


위 내용은 미술평론가가 왜 이렇게 디자인에만 신경 쓰냐는 물음에 영화배우이자 화가였던 하정우가 느꼈던 심정이다. 당시 그는 미국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의 개인전을 열기로 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한 달 밖에 남지 않았고 작품수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는 한 달 동안 열세 시간에서 열다섯 시간 동안 방에 틀여 박혀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려댔다. 그때 하정우는 체중이 15킬로그램이나 불어나는지도 몰랐던 당시를 책 <걷는 사람, 하정우>에서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그림을 그린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공포에 질려서 ‘나’를 복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귀를 보고 나는 예상치 못하게 폐부를 찔린 느낌이었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작스럽게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 역시 저자처럼 공포에 질려 무분별한 자기 복제를 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는 내가 가장 왕성하게 글을 쓰던 시기였다. 나는 칠 개월 간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편의 서평을 브런치에 올렸었다.


하지만 오 개월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부터 기계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 글을 쓸 때의 흥분과 재미는 온데간데없고 단지 마감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만 남아있었다. 내 이런 마음 깊은 곳에는 사람들이 놀랄만한 것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언젠가 래퍼 쌈디가 방송에 나와 말했던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반병에 내가 걸려버린 것이다.


명반병2.jpg


물론 쌈디와 하정우에 비하면 난 개뿔도 없지만 이 병은 그런 사회적인 성취보단 개인적인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내 가슴 한 구석엔 찜찜한 마음이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결국 난 취업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올리는 데에는 거의 구 개월에 시간이 걸렸다. 칠 개월을 올리고 구 개월을 쉬었다.


다시 책으로 돌아오면 하정우는 평론가로부터 작품이 겉에만 치우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져 괴로워한다. 그리고 곧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내가 처음에 어떻게 그렸지? 내가 왜 그림을 그렸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지?’ 그리고 나 또한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내가 처음에 어떻게 썼지?, 나는 왜 글을 썼지?


기억을 더듬어 생각해보니 내가 처음에 쓴 글은 일기였다. 지금 보면 맞춤법도 틀리고 그다지 논리적이지도 않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짧으면 두 세줄 길면 네다섯 줄 되는 나의 이십 대 초반의 고민들을 갈겨 적었다. 주제는 사랑, 인생, 싫어하는 사람, 진로 등 다양했다. 물론 쓴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쓰면 조금이 나마 해소된다는 걸. 배탈이 났을 때 토하면 개운해지듯이 나 또한 생각의 잡념들을 게워냈다. 그래서 터질 것 같이 복잡했던 내 이십 대 초반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다음 글쓰기는 필사였다. 책에서 읽었던 마음을 걸리게 하는 문장들을 따라 적었다. 수없이 많은 고민들과 사유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그 결정체를 따라 적는 것만 해도 내 마음은 충만해졌다.


요약해보면 나는 내 가슴에 응어리들을 풀어내기 위해 글을 쓴다. 이 응어리들은 혼자만 알고 있기는 아까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현재 겪고 있는 감정의 폭풍들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이것들을 글로 옮기면서 신기하게도 내가 겪은 이야기들이 또렷해지고 진해짐을 느낀다. 2% 아쉬운 국 마지막에 MSG를 치는 느낌이랄까.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아주 맛있는 그런 거.


다시 책으로 돌아와서 마침내 하정우는 사람들이 좋아하든 말든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자는 결심을 한다. 그리고 다음 전시회 때는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나간다. 물론 단 한 점밖에 팔리진 않았지만 하정우는 이게 훨씬 자기다움을 느낀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결국 사람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기다울 때다. 하지만 그런 자기다움은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타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내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특권 아닐까.


참고문헌 : <걷는 사람, 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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