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akeone Jan 28. 2016

비/카페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아주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더욱 편한 생활을 원하게 됐고 더 이상 외출을 할 필요도 없이 하나의 건물에서 거의 모든 생활을 다 할 수 있게 됐다. 하나의 건물에서 태어나 장례까지 치르게 되는 BD타워(birth-death tower)라는 이름의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극단적인 편리함 속에 살아가고 있다.


외부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고 태어나서 건물 안에 있는 곳에서 교육을 받고 여가를 즐기고 사이버상의 교류를 통해 수익을 얻거나 BD타워 내부에서 취직을 해서 수입을 얻어 생활한다. 사망하면 지하에 있는 납골당으로 이동하게 된다. 보통 건물보다 거대한 이 건물이 처음 생겨 날 때 사람들은 과연 사람들이 저런 감옥 같은 곳에서 살기를 원할지 의심했지만 이미 생활이 되어버린 지금 의심하는 사람보다 그곳에서의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서 그중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단골 카페가 있다. 그 카페에서 내가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서 보는 경치는 다른 곳보다 좋은 편이다. 보이는 것은 하늘을 찢고서라도 솟아오를듯한 높은 건물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대로 이곳은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다. 칙칙한 향기만 맡다가 이곳의 커피 향을 맡고 여유를 즐길 때면 모든 걸 다 얻은듯한 기분마저 들곤 한다. 이곳에서는 야외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서 좋다. 


황사나 오염 때문에 흐릿한 날이 많았는데 얼마 전부터 장마가 시작됐다. 예전보다 많이 늘어난 비 때문에 TV와 인터넷은 한동안 시끄럽기도 했지만 나는 피해 입은 게 없어 큰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고작 비 때문에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그저 비가 많이 와서 카페에 앉아 창밖으로 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릴 뿐이었다.


여러 매체에서 시끄럽던 장마가 끝났다. 얼마 전에 건물밖에 사는 SNS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작은 망원경을 들고 비에 씻겨 맑아진 풍경을 보기 위해 카페를 찾았다. 망원경을 들고 여러 곳을 구경하다가 아래쪽을 보니 장마로 인해 물에 잠겨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 사이를 힘겹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였다. 쏟아져나온 짐을 정리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BD타워에서 100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 바로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SNS에 올렸던 사진에 나도 모르게 작게 찍혀있던 장마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온갖 욕설이 담긴 댓글이 쌓여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단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건물 안에서 편하게 살고 있었을 뿐인데 사진 한 장 때문에 욕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창 밖으로 떡하니 보이는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카페에 앉아서 몇 시간이나 멍하니 수많은 고민에 쌓여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이곳이 불편해졌고  한번밖에 나가서 현실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출구 쪽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1층도 빗물에 축축했고 왠지 그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치료할 수 없는 지독한 불치병에 걸릴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고민하다가 도저히 그곳에 발을 담글 용기가 생기지 않아 다시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내가 봤던 바깥 풍경은 진실이 아녔을 것이라고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듯 수없이 되뇌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도 체 지나지 전 나는 타워 안의 생활에 익숙해졌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예전처럼 돌아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세요.


https://brunch.co.kr/@ehdwlsez4ge/1


작가의 이전글 동화/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