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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8. 2016

카페/기차역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나는 장거리 연애 중이다. 거리는 멀지만 항상 나에게 달려와주는 그 남자가 좋다. 난 유치한 것들이 좋다. 남자친구와 단둘이 공유할 수 있는 둘만의 유치함이라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것 같았다.


예측 가능한 이별이었지만 막을 수 없었다. 부모님께서 이민을 오래전부터 이야기하셨다.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다른 나라에서 정착하고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남자친구 이야기도 했지만 귓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나 혼자 한국에 남아있을 자신도 없었다. 안 그래도 장거리 연애라서 힘든데 이젠 완전히 외국으로 가자니 미칠 노릇이었다. 5년. 최소한 그 정도 버텨보고 도저히 힘들면 돌아오자고 말씀하셨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남자 친구와 자주 가던 기차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10년 후에 만나자며 이야기를 꺼냈다. 날 포기하라고 했다면 차라리 서로 마음 편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미련 때문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던져버렸다. 난 앞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해해달라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때를 쓰고 있었다. 남자친구는 종업원의 눈치를 보더니 티스푼을 라이터로 달구더니 나무 테이블에 만날 날짜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카페에 불이라도 지를듯한 눈빛이었다. 한동안 말없던 그는 더 이상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듯 카페에서 나가버렸다.


이민 준비는 수월했다. 차라리 큰 문제라도 생겨 미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을 무시하기라도 하듯 막힘없이 준비가 됐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이민 준비가 끝나갈  때쯤 지하철 선로가 생기면서 만나기로 한 기차역이 통째로 사라질 것이라는 기사를 보게 됐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떠난 후 5년 후 예상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도 안 하던 부모님은 시치미를 때로 있었고 약속한 10년이 넘어서 겨우 한국에 올 수 있게 됐다. 약속 장소에 미련이 있긴 했지만 가면 눈물만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눈물은커녕 기억도 안 날정도로 그 일대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어디가 어딘지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바뀌어서 그냥 그 근처를 터벅터벅 돌아다녔다. 



나는 장거리 연애 중이다. 내 목숨이라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갑자기 떠난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날 비웃는 것만 같아 분노가 치밀었다. 저주라도 퍼붓듯 날 기억이라도 해달라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테이블을 그을려봤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참을 수 없어 그곳을 박차고 나왔다. 


그 후 그녀를 잊기 위해 노력했고 다른 여자도 만나보고 여행도 다니고 회사도 옮겨 다니며 시간이 흘렀다. 10년이 다가오고 tv에서 우리가 만나기로 했던 곳이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이 나오니 가슴이 먹먹했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녀를 잊을 수 없었다. 


무작정 그곳에 찾아가 봤지만 익숙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높은 건물은 과거를 억지로라도 떠올려보려는 내 의지를 꺾으려는 듯 우뚝 서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근처에 카페가 있었고, 무작정 날 받아달라고 우겼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바리스타 자격증. 무슨 생각이었는지 공부에 매달렸고 자격증을 취득해서 정식으로 요청했다. 자격증과 함께 내 사연을 이야기하고서야 겨우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테이블도 없었고 기차역도 없어서 그녀가 못 찾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근처 상점을 돌며 양해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주 후 카페 근처 10여 개의 상점 벽과 창문에 기차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 그렸지만 차츰 소문이 돌면서 직원들이 도와주기 시작했다. 얼마 후 거대한 기차가 완성되어 뿌듯했지만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하지만 기차 그림은 기차 거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었다. 어느 날. 왠지 평소와 다른 게 느껴지던 시선. 그녀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입구에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10년. 어제였을까 싶은 정도의 감정. 눈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그랬다. 우린 웃었다. 우린 울었다. 우린. 아직도 그랬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세요.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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