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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one Jan 29. 2016

지렁이/공항/매미/손톱

-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들 -

사람은 항상 조금씩이라도 성장을 하지만 그것들이 눈에 두드러지게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왠지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고 언제부턴가 손톱을 모으기 시작했다. 모든 손톱을 모으지는 않고 왼손 엄지손가락의 손톱만 모아놨다. 처음에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였지만 조금씩 손톱이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묘한 성취감이 들어서 뿌듯하기도 했다.


가끔 어머니를 도와서 작은 텃밭을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리기도 했다. 내가 성장하는 건 손톱을 볼 때 조금씩 느껴졌지만 텃밭에서 자라나는 채소들은 볼 때마다 눈에 띄게 성장했고 나도 그렇게 빨리 자라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도 했다. 어느 날은 텃밭정리를 도와드리는데 지렁이가 눈에 띄었다. 나는 순간 징그러워서 호미 끝으로 지렁이를 들고 멀리 옮겨 놓으려고 했다. 그 모습을 어머니가 보시고는 웃음을 터트려버리셨다. 어머니는 지렁이를 바닥에  내려놓으시며 지렁이가 있다는 건 땅이 건강하다는 뜻이고 좋은 것이니 그렇게 징그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왠지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바라보니 매끈해 보이는 것이 예뻐 보이고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후로는 지렁이를 봐도 거부감 같은 것은 거의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렁이와 다르게 날씨가 더워지면서 울어대는 매미는 아무리 적응하려 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안 그래도 더워서 짜증이 치솟는데 귀가 찢어질듯한 소음은 나를 미치게 했다. 눈에 띄는 대로 약을 뿌리고 하고 떄려잡기도 했지만 소리가 나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그냥 참고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운 매미소리에 스트레스 받던 시기가 지나고 시간은 흘러 나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고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 해외여행을 꼭 가보고 싶었고 예전부터 친하던 친구들과 대학이 멀리 떨어졌지만 틈틈이 돈을 모아서 해외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들은  틈만 나면 몸이 부서져라 돈을 모았고 겨울방학 때 해외여행을 경비가 모이게 됐다.


우리는 호기롭게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최대한 멋진 곳으로 가기로 다짐하고 공항에서 모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마치 부적이나 되는 것처럼 그동안 모든 손톱을 캐리어밖에 물통처럼 매달아 놨고 친구들은 악취미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것이 나의 작은 자부심이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기다리는며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고 나는 굳이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이 잘 보이는 곳으로 친구들을 데리고 갔다. 친구들은 그딴 거 봐서 뭐하냐 머 인상을 썼지만 나는 굳이 친구들을 끌고 갔다. 잠시 후 비행기가 한대 떠올랐고 나는 넋을 놓고 비행기만 바라봤다. 


하지만 그때 친구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시끄럽다고 징징거렸다. 나는 시끄럽기는 커녕 기분 좋게 들리기까지 했다. 내가 너무 비행기를 볼 욕심에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곳으로 왔는지 죽은 벌레들이 몇 마리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 또 다른 비행기 소리가 귀를 부술 듯이 들려왔고 죽은 벌레를 보며 내가 매년 죽이던 매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매미들은 단지 짝을 찾기 위해 울어대던 것뿐인데 씨끄럽다는 이유만으로 무자비하게 잡은 것이 실수였던 것 같았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때 단지 시간이 흘렀다는 표시밖에  안 되는 손톱을 내가 성장했답씨고 모아 왔던 통이 눈에 들어왔고 성장하지도 않아놓고 고작 손톱 조각 모아놓고 내가 성장했다며 좋아하던 내가 부끄럽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바로 그 통을 집어 들고 가까운 쓰레기통에 그동안 모아 온 손톱을 쏟아부워버렸다. 친구들은 갑자기 왜 그러냐며 말리기도 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마지막 손톱 조각까지 탈탈 털어버리고 나니 착잡할 줄 알았던 마음이 홀가분하고 개운했다. 나는 손톱이 담겨있던 통도 깔끔하게 쓰레기통으로 던저버리고 내 속을 감추려고 억지로 베시시 웃으며 친구들을 끌고 탑승구로 향했다.





누구나 소재 신청 가능합니다. 

아래쪽 글을 참고하시고 신청해 주세요.


https://brunch.co.kr/@ehdwlsez4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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