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나를 본다: 숏폼 시대의 자아 성찰(1부)
내가 처음으로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건, 늦은 밤 침대 위에서였다. 손에 쥔 스마트폰 화면은 온갖 화려한 색과 소리로 가득했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손가락을 쉴 새 없이 위로 밀어 올렸다. 챌린지 영상, 짧은 코미디, 춤, 그리고 또 다른 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문득 화면을 끈 나는, 허공을 응시하며 멍하니 생각했다.
"음, 나… 방금 뭘 본 거지?"
기억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특정 영상의 강렬한 인상은 있었지만, 그 감정이 내 안에 남아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손가락을 움직인다는 행위만이 반복되었을 뿐이었다. 마치 잔뜩 배를 채웠는데도 영양분은 하나도 섭취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허기는 사라졌는데, 근육은 늘어나지 않은 그런 기분.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하철에서, 카페에서, 심지어 식탁에 앉아서도 사람들의 시선은 언제나 작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서 펼쳐지는 것은 길어야 1분, 짧게는 15초 남짓한 '숏폼' 세상이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웃고, 분노하고, 감탄하며 수많은 감정을 소비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 감정들은 길게 지속되지 못했다. 물속에 잉크를 떨어뜨린 것처럼 순식간에 퍼져나갔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은 숏폼 콘텐츠를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사실 나도 여전히 즐겨 보고 있다. 그것이 주는 즉각적인 즐거움과 정보의 편의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얻고 있는 걸까? 이 현란하고 빠르기만 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혹시, 우리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통해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아주 개인적인 여정을 담으려 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의 콘텐츠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우리가 그 안에서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갈망이 우리 내면의 어떤 공허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또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1부: 숏폼 콘텐츠, 그 현상의 시작
1장. 숏폼은 언제 내옆에 와서 날 지배했나
나는 솔직히 말하면, SNS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었다. 내성적인 성향 탓도 있었고, 남들의 화려한 삶을 엿보며 괜히 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그 감정이 싫었던 것 같다. 특히나 '인싸'들이 모여 신나게 춤추고 놀러 다니는 영상들을 보면, 속에서 묘한 부러움과 함께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 하는 자괴감이 올라왔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람들과의 물리적 만남이 줄어들면서, 온라인 공간은 유일한 소통 창구가 되었다. 그 무렵,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그램 릴스가 본격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또 새로운 게 나왔네' 하며 시큰둥했다. 1분 남짓한 짧은 영상에 대체 뭘 담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야, 그거 진짜 재밌어"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호기심에 한 번 보기 시작한 것이 나의 일상을 통째로 바꿔놓았다.
퇴근 후, 밥을 먹으면서, 화장실에 앉아서, 심지어 잠들기 전까지 스마트폰을 놓지 못했다. 내가 올린 영상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그 챌린지를 해낸 것처럼 뿌듯했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감탄하며 '역시 세상엔 천재들이 많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짧은 영상을 무한 반복해서 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면, 늘 그랬듯이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와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망이라 생각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밤, 또다시 무의미한 스크롤을 하다가 한 영상을 만났다. 거창한 내용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묵묵히 숲길을 걷는 영상이었는데, 영상 내내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그리고 발소리만 담겨 있었다. 별다른 음악도, 자막도 없었다. 처음엔 '이게 뭐야, 재미없네' 하고 넘기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영상이 주는 편안함이 있었다. 나는 멈춰서 그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30초 남짓한 그 짧은 영상이 끝나고, 나는 불현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내가 얼마나 답답한 숨을 쉬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빠르기만 한 세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짧은 영상은 나에게 '잠시 멈춰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숏폼을 보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열광할까? 그 안에는 대체 무엇이 담겨 있길래, 한 번 손을 대면 멈출 수 없는 걸까? 그 질문은 마치 나의 내면을 향한 화살촉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화살이 꽂힌 곳을 깊이 파헤치기로 마음먹었다. 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2장 문제의식 발견: 2022-2024 트렌드 분석을 통한 문제 제기
내가 왜 그렇게 숏폼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 여러 영상을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놀라운 패턴을 발견했다. 내 취향을 넘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수많은 영상들 속에는 공통된 갈망이 숨어 있었다. 그건 단순히 '재미' 이상의 것이었다.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챌린지'와 '댄스'였다. 똑같은 음악에 맞춰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영상들. 음, 사실 나는 몸치라 따라 하진 못했지만, 수십, 수백 명이 똑같은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신기함을 느꼈다. 모두가 같은 '놀이'에 참여하고, 서로 '좋아요'를 누르며 하나의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는 것. 나는 그 속에서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어 하는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나만 없어' 시리즈로 대변되는, 남들의 화려한 일상을 담은 영상들도 그랬다. 해외여행, 맛집 투어, 명품 언박싱…. 사람들은 그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나는 왜 저렇게 살지 못할까?’라는 작은 시샘이 숨어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완벽한 삶을 엿보며,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쫓고 싶어 하는 허탈한 욕망을 채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뿐만 아니었다. '3분 요약'이나 '꿀팁'처럼 정보를 압축한 영상들, 그리고 '공부 브이로그'처럼 일상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상들도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싶어 했다. 끊임없이 효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초상이 거기 있었다. 동시에, 타인의 정돈되고 평화로운 일상을 엿보며, 우리 자신이 가지지 못한 '안정감'과 '진정성'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문제의식이 발견되었다. 이 모든 콘텐츠들은 우리의 갈망을 정확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소속감, 대리만족, 지적 욕구, 그리고 진정성. 하지만 숏폼은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그 모든 것을 즉각적이고 가볍게 제공할 뿐이었다. 한순간의 '좋아요'로 소속감을 느끼지만, 깊은 관계는 형성되지 않았다. 타인의 화려한 일상을 엿보며 만족하지만, 나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3분짜리 요약본으로 지식을 얻었지만, 그것이 깊은 사유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경험만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진짜 갈망하는 것, 즉 깊이 있는 소속감과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기회를 계속 놓치고 있었다. 숏폼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즐거움과 만족을 주었지만, 동시에 우리의 영혼을 텅 비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짠 과자를 많이 먹어 목이 마른 것처럼, 우리는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찾아 헤매는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었다.
3장. 첫 번째 깨달음: 진정성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심리
어느 날부터인가, 숏폼을 보면서 묘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화면 속 인물들의 화려한 미소나 과장된 몸짓이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고 할까. 모든 것이 지나치게 완벽하게 연출된 것만 같아, 그 안에 담긴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의심이 가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그제야 나는 내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이 '진정성'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떤 크리에이터가 '1만 원으로 하루 살아보기' 챌린지를 하는 영상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계획대로라면 1만 원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은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남은 돈이 얼마 없어 배고픔에 쩔쩔매는 모습까지 그대로 보여줬다. 문득 생각해보니, 예전에는 만원으로 일주일도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하루도 벅찬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계획이 틀어지고, 어설픈 모습까지 여과 없이 보여주는 그 영상은 어쩐지 모르게 나를 끌어당겼다.
사실, 나는 그가 챌린지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가 겪는 곤경과 인간적인 솔직함이 나에게 더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꾸며내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에게 '아, 나만 이렇게 허술한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을 선물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가짜'에 지쳐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과하게 예쁘고, 완벽하게 짜여진 컷들은 우리에게 피곤함을 안겨주었다.
우리의 현실은 늘 불완전하다. 실수를 하고, 계획은 어긋나고, 때로는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낼 때도 있다. 그런데 SNS 세상은 그런 불완전함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완벽하게 편집된 하이라이트만을 보여준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 하이라이트와 나의 '날것'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비난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비교는 결국 우리를 공허하게 만들 뿐이었다.
결국 우리가 숏폼 속에서 끊임없이 찾아 헤맸던 것은, 그 안에 담긴 현란한 콘텐츠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만든 사람의 진실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진짜 감정, 진짜 고민, 진짜 삶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첫 번째 깨달음은 단순한 영상 소비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얼마나 진정성에 목말라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앞으로의 내 여정의 가장 중요한 나침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