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및 제언
이 글을 시작할 때 던진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만약 AI가 전 세계 빚을 갚아버린다면?" 처음에는 황당한 공상으로 들렸을 이 질문이,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는가?
1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AI의 법적 인격 획득과 독립적 경제 활동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스토니아의 e-Residency, 일본의 AI 가이드라인, 그리고 ConstitutionDAO 같은 블록체인 기반 자율조직들이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초고빈도 거래와 양자컴퓨팅의 발전을 고려하면, AI가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부를 창출하는 것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목적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고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이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통해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었다.
부채란 무엇인가? 일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소유란, 성공이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깊이 생각해봤을까?
사실 이 글에서 다룬 많은 변화들은 이미 현실에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기본소득 실험이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고, 원격근무와 긱 이코노미가 전통적인 노동 개념을 바꾸고 있다. 크리에이터 이코노미는 새로운 형태의 가치 창출을 보여주고 있고, ESG 경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다.
AI의 발전 속도도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ChatGPT의 등장 이후 불과 2년 만에 AI는 인간의 많은 영역을 위협할 정도로 발전했다. 자동차 자율주행, 의료 진단, 법률 검토, 심지어 창작 활동까지 AI가 인간과 경쟁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의 디지털 전환도 가속화되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도입,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 디파이(DeFi) 생태계의 확산 등이 기존 금융 질서를 흔들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종합해보면, 이 책에서 다룬 시나리오가 그렇게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AI가 하루아침에 모든 부채를 탕감하는 극적인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점진적이고 누적적인 변화를 통해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수는 있다.
이런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개인, 사회, 그리고 인류 차원에서 각각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개인 차원의 준비
첫째, 평생 학습 능력을 기르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한 번 배운 지식이나 기술로는 평생을 살 수 없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둘째,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키우자.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고유한 창의성과 가치 판단 능력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 단순한 정보 처리보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복잡한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셋째, 인간관계와 소통 능력을 소중히 하자.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적인 연결과 공감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능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넷째, 자신만의 의미와 목적을 찾자. 7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경제적 압박이 사라지면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이 더욱 중요해진다. 외부의 기대나 압박이 아닌,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을 찾아야 한다.
사회 차원의 준비
첫째,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시급하다. 산업 시대에 맞춰 설계된 현재의 교육 시스템으로는 포스트-부채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다.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중시하고, 평생에 걸친 학습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모델이 필요하다.
둘째, 사회 안전망의 재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전통적인 고용 기반 복지 제도는 일의 성격이 바뀌면서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기본소득, 보편적 서비스, 개인 맞춤형 지원 등 새로운 형태의 사회 보장을 실험해봐야 한다.
셋째, 민주주의의 진화가 필요하다. 9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새로운 사회에는 새로운 형태의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직접민주주의, 시민 참여형 정책 결정, AI 보조 거버넌스 등을 실험해볼 수 있다.
넷째, 윤리적 기준의 확립도 중요하다. AI의 발전과 활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기술을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인류 차원의 준비
첫째, 글로벌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AI가 만드는 변화는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처럼 전 지구적 대응이 필요한 이슈가 될 수 있다. 국제기구의 역할 강화, 다국적 협력 프레임워크 구축 등이 필요하다.
둘째, 지속가능한 발전의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 아무리 AI가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지구의 자원과 환경은 유한하다. 현재 세대의 풍요가 미래 세대의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셋째,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해야 한다. 글로벌 AI 시스템이 특정 문화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각 지역과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공통된 인류적 가치를 찾아가야 한다.
넷째,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AI는 인간을 위한 도구이지, 인간이 AI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에서 그려본 미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새로운 기회만큼이나 새로운 위험도 함께 따라온다.
위험 요소들
기술적 위험부터 보자. AI 시스템의 오작동, 해킹, 예상치 못한 학습 결과 등이 전 인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블랙박스 AI의 불투명성은 이런 위험을 더욱 키운다.
사회적 위험도 크다. 급격한 변화로 인한 사회적 혼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갈등 등이 예상된다. 2부에서 다룬 바와 같이, 부채 탕감이 가져올 사회적 충격은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심리적 위험도 간과할 수 없다. 급작스러운 자유와 풍요로움이 오히려 정신적 공허감과 방향성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인간은 적당한 도전과 목표가 있을 때 더 행복하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 위험도 있다. AI를 통제하는 소수가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 기존 권력 구조의 저항, 국가 간 AI 패권 경쟁 등이 새로운 형태의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회 요소들
하지만 위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기회들도 열린다.
창의성의 폭발이 첫 번째 기회다. 생존 압박에서 해방된 인간이 보여줄 창의적 잠재력은 상상을 뛰어넘을 수 있다. 르네상스보다 훨씬 큰 규모의 문화적, 과학적, 예술적 발전이 가능하다.
사회 문제 해결의 기회도 크다. 빈곤, 질병, 교육 불평등 등 인류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AI의 도움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의 진화도 기대해볼 만하다.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인간관계, 진정한 공동체 의식의 발달 등이 가능하다.
지구 환경의 회복도 큰 기회다. AI의 최적화 능력을 활용하면 자원 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환경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이런 변화들이 위험으로 귀결될지, 기회로 발전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기술 결정론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자동으로 모든 것이 좋아진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인간이 결정해야 한다.
운명론적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차피 AI가 알아서 할 테니까"라고 생각하고 손을 놓고 있으면 안 된다. 인간이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미래를 설계해나가야 한다.
이분법적 사고를 피해야 한다. AI가 적인지 동지인지, 유토피아인지 디스토피아인지를 따지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인간과 AI가 협력해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런 거대한 변화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다.
첫째, 학습하자. AI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부하자.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맹신하지 말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둘째, 실험하자. 새로운 형태의 일, 새로운 교육 방법, 새로운 인간관계를 실험해보자.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확장해나가자.
셋째, 토론하자. 주변 사람들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고민해보자. 민주주의는 토론에서 시작된다.
넷째, 참여하자. 지역 공동체든, 온라인 커뮤니티든, 전문 단체든 상관없다.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자.
다섯째, 상상하자. 제약을 두지 말고 자유롭게 상상해보자.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꿈꿔보자.
이 책의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AI가 모든 부채를 탕감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경제적 압박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에서, 창의성과 협력이 경쟁과 소유보다 중요한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예술 창작에 몰두하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과학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싶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을 하고 싶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새로운 기술 개발에 도전하고 싶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만의 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변화와 도전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발전해왔다.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쳐 온 것처럼, AI 혁명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이다.
물론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도전이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항상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고, 변화의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도 불가피하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존재다. 새로운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연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려움이 클수록 서로 도우며 함께 극복해나간다.
AI가 가져올 변화, 그 중에서도 전 세계 부채 탕감 같은 극단적 변화조차도 결국은 더 나은 인류를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