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쉽게 지치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때마다 어떤 상담 프로그램이 있으면 종종 받고는 했다. 그중에 한번 기억에 남는 심리검사 결과가 있었는데 나는 쉽게 우울함에 빠지지만 그 우울함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지수가 타인보다 많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언제나 우울증과 가까웠다. 어릴 적부터 불안한 엄마를 보며 그런 환경에 놓여있던 탓인지 나에게도 우울하고 불안한 감정이 쉽게 자주 찾아오곤 했다.
감정적으로 예민해서 작은 일에도 심하게 흔들리고 타인의 별거 아닌 말을 곱씹고 생각하며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였다. 그러니 쉽게 우울한 감정에 빠지면 곧 무기력함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가 많았다.
우울한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가도 이러다가 나도 엄마처럼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번뜩 들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 자신을 일으켰다. 평생을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절대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떠한 이유보다 내 자식들에게 우울한 엄마를 주고 싶지가 않다. 나는 내가 갖고 싶었던 어떠한 순간에도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에게는 그런 엄마를 주고 싶었다. 그런 욕망이 있으니 그래서 때때로 우울함과 나약함이 찾아와도 그 감정에 잠식되어 망가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마흔에 번아웃을 맞으면서 나는 한없이 땅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을 받았고 더는 이렇게 나를 방치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먼저 챙겨보기로 마음먹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시간을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많이 쓰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내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나는 지금 혼자 있고 싶다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카페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다이어리를 끄적이고 싶은데 누군가가 영화를 보자고 하던가 밥을 같이 먹자고 하면 거절하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을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엄마와도 거리 두기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거리를 두려면 아빠 하고도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둘은 이미 세트였다. 어쩔 수 없다.
주말마다 심심하고 무료해서 손주들이 보고 싶다는 핑계로 방문하시는 친정부모님을 거절하기 시작했다.
늘 나의 주말은 친정부모님과의 만남이 껴있었는데 기분이 좋았다가도 친정 엄마의 하소연과 온갖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면 나의 기분과 에너지는 이미 소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