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상담을 받을 때에 상담사분이 질문지를 숙제로 내어주신 적이 있다. 그 질문지에 있던 질문 중에 한 질문이 나는 나의 자녀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받고 내가 쓴 답은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고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엄마였다. 상담사는 그 답을 보고는 내가 바라고 갖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을 내가 되고 싶은 엄마로 쓴 것 같다고 했다. 상담사의 그 말에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언젠가는 엄마의 병이 완전히 나아져서 나의 엄마도 보통의 평범한 엄마의 모습으로 변화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살았는지 모른다. 언젠가는 꼭 그런 날이 올 거라는 막연한 꿈을 꾸었을지도.
하지만 이제는 알아버렸다. 어릴 적부터 내가 꿈꾸고 바라던 그런 엄마는 나의 삶에서는 없다는 것을..
엄마의 병은 앞으로도 평생 동안 나아질 리가 없다는 것을.
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내가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나무 같은 엄마가 갖고 싶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뿌리내려 버티고 있는 나무처럼 세상에서 모진 말과 풍파를 겪고 찾아왔을 때 한결같이 그늘을 내어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 같은 존재.
변화무쌍한 것 말고 한결같은 존재.
그게 내가 어린 날부터 그토록 갖고 싶은 엄마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제 그 바람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고. 이제 그 꿈에서 깨어서 현실을 봐야지. 냉혹한 현실에서 그늘을 내어주고 바람을 막아주는 존재는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내가 나 자신을 지켜야지.
그래야 나는 갖지 못했지만 내가 낳은 나의 자식들한테는 나무 같은 엄마가 되어줘야지. 그러려면 얼른 이 세상에 뿌리를 단단히 내려서 박고 더욱더 단단해져야만 한다. 더는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삶이 힘들고 지친다며 다 버려두고 멀리 떠나버리고 싶은 그런 감정에 매몰되어 살 수 없다.
나의 엄마를 닮아가서는 안된다.
엄마의 연락처를 두 번째쯤 차단한 어느 날 아빠가 엄마의 편지를 전해주고 갔다. 손으로 쓴 편지는 3장쯤 되었는데 그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서 나는 분노에 차버렸다. 편지에는 엄마의 불행했던 가정환경과 불행한 어린 시절을 지나 어떤 남자를 만났었고 또 그 불행한 상태에서 아빠를 만나 도망치듯 결혼해서 나를 낳았고 어린 나에게 본인의 화를 풀어서 미안하다는 대략 그런 내용이었는데 결론은 이러이러하니 본인을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로 느껴졌다.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은 내용들로 가득 찬 그 편지를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서 엄마한테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굴뚝같았다. 나는그 편지를 당사자인 엄마에게 꼭 다시 되돌려 주고 싶었다.
그것은 마치 나는 이제부터 엄마의 감정을 절대 받지 않고 꼭 되돌려줄 거야 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돌려주거나 그런 액션은 취하지 않고 장롱 깊숙이 처박아 놓았다. 나중에 우리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 있을 그 어느 날 즈음에 그 편지를 다시 읽고 엄마를 이해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