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나의 마음에 분노가 일렁였다. 엄마의 불행함이 나를 얼마나 괴롭게 만들었는지 다시 상기시키고 어린 시절까지 돌이켜보면서 글을 쓰다 보니 그 이면의 모습도 함께 불쑥 떠오른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나는 엄마가 왜 그토록 힘이 들까........?
엄마는 나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로 변신해서 본인이 사랑하는 자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자처하기도 한다. 남들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할지 같은 고민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엄마는 너무나도 투명한 사람이다. 너무 투명해서 타인한테 속을 훤히 보여주고 그리고 쉽게 물들어버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온 마음을 보여주며 다 내어주고는 결국 상처를 받아서 너덜너덜해진다. 그리고 서러워져서 툭하면 울고 자책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상대방을 비난한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고 엄마와 관계가 좋았던 사람도 머지않아 엄마와 갈등을 빚는다. 마치 엄마는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바라는 듯하다. 그렇게 상대방에게 실망해 버리면 상대방을 비난하며 하소연을 해댄다. 엄마의 마음은 거친 파도를 치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결국 미쳐버린다. 그런 엄마의 마음에는 단단함이 전혀 없다. 자신을 사랑하는 힘도 지탱하는 힘도 전혀 없어서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매 순간 남편에게 딸들에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 들었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어김없이 별일이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문제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그만인데 엄마의 피해의식은 늘 사소한 걸 확대 해석하며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든다. 그리고 엄마의 마음은 다시 또 불행해진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엄마를 닮아버렸다.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 치고 나는 엄마랑 다르다며 선을 그어도 때때로 나는 엄마랑 너무나 닮은 걸 알게 된다. 작은 일에도 쉽게 무너지며 걱정투성이에 불안함을 항상 안고 산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남편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그 불안함과 걱정을 수도 없이 드러낸다. 작은 일에 징징거리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나에게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너무 부족하다는 걸 점점 깨닫는다.
속이 빈 엄마와 그녀를 닮아버린 속이 빈 나는 서로 가까이할수록 자꾸만 서로를 할퀴고 생채기를 내버린다.
그런데 어느 날 속이 비어있는 나를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발견했다. 바로 나의 딸이다. 나의 딸은 나와 참 닮았다. 소심하고 마음이 여려서 친구들의 작은 말에도 상처를 받고 거절도 잘하지 못한다. 그런 딸이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간간히 친구와 있었던 일들을 들려주면 속이 어찌나 답답한지...
그럴 때마다 딸의 입장에서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감정적인 내가 약간은 이성적으로 변한다.
"친구보다 너의 마음이 우선이야.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는 없어. 그러니까 친구가 화를 내고 삐진다고 무서워하지 말고 너의 생각과 감정을 말해도 괜찮아."
딸아이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면서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정작 아이한테 말하는 것과 달리나도 항상 나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게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아이한테 하는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딸은 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한 아이다. 아이는 이제 제법 상처도 덜 받고 나와 맞지 않는 친구 하고는 굳이 가까이 지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아이를 보며 나도 더 단단해지고 빈 속을 채워서 나무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