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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Dec 05. 2024

평안함의 유통기한

아마도 마지막 연재글..?

엄마의 연락처를 n번째 차단하고 꽤 오랜 시간 풀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진절머리가 나서 내게 누구든지 엄마 전화를 풀어놓으라고 강요나 부탁을 한다면 그 사람까지 차단해 버릴 거야!!!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고작 한 두 달 정도지만 엄마의 연락처를 차단하고 그렇게 엄마를 한동안 보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단짝인 아빠까지 보지 않게 된 이후로 나는 꽤 평안해졌다. 책임감이라면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K장녀인 내가 나의 부모를 외면한 채 나만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기까지 많은 고통의 시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 책임감을 나 자신에게 먼저 쏟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기에서 해방되어 부모의 소식을 듣지 않게 되니 내 삶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꽤 평안하다. 엄마의 안부를 더 이상 듣지 않게 되니 내 삶에 항상 골칫덩이처럼 자리를 차지하던 한 부분이 요즘은 잠잠한 느낌이다. 아직까지는 잠잠하고 평안하다. 


이 평안함이 얼마나 갈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평안함을 택한 지금의 내가 나중에 얼마나 후회를 할 지도 전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난 이제 더 이상 원망이나 분노의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소용돌이치며 일렁이는 마음이 잔잔해져서 어느 정도의 평안함이 찾아왔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평안함을 택한 내가 마음에 든다. 훗 날에 어떤 후회와 죄책감이 다시 나를 찾아와서 괴롭히더라도 그건 훗날의 나에게 맡기기로.


이미 나이 든 부모님은 앞으로 더 늙어갈 일만 남았고 엄마와 아빠 두 분 중에 한 분이라도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한다면 그때의 나는 더 이상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 평안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는 내 나이가 마흔이 되도록 이렇게 나의 엄마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서 더 이상 엄마의 사사로운 소식을 듣지 않을 수 있고 더는 엄마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고 그냥 엄마 자체를 잊고 살 수 있다는 걸 처음 겪어보게 되었다. 


엄마와 아빠의 삶을 그대로 인정해 버리고 내가 앞으로도 평생 어쩌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니 나는 이제 그저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평안함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비록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어도 이 감사한 시간을 마음껏 누려보기로 했다. 




다음 글은 아무래도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마무리는 다음글에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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