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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진로는 혼자 고민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내 길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by Eunhye Grace Lee

진로라는 것은 늘 혼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할 수 있을지... 이 질문은 철저히 내 안에서만 답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진로를 처음 고민하던 순간도, 방향을 정해야 했던 결정의 순간들도 언제나 혼자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들은 깊었지만, 동시에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내 진로는 결코 혼자 만든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스쳐 지나간 선생님의 한마디, 의도하지 않았던 조언, 그리고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누군가의 눈빛이 내 선택을 흔들었고, 때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습니다. 진로는 혼자 고민하지만, 결국 관계 속에서 다시 결정되고 새롭게 열리는 길이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를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 던져진 현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홀로 서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늘 타인의 말, 타인의 시선, 타인의 삶 속에서 스스로를 구성해 갑니다. 진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길은 나 혼자 만든 듯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만남의 흔적과 대화의 기억이 엮여 만들어진 것이지요.


저 역시 사회복지사라는 길을 선택한 계기는 아주 작은 만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유학생으로 지내던 시절, 우연히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사회복지사의 태도. 그분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모습에서 말보다 더 깊게 새겨진 감동이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진로를 결정짓는 가장 조용하고도 분명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로를 묻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너를 가장 따뜻하게 해준 사람은 누구였니?”
“어떤 말이 너를 흔들었니?”
“누구의 삶이 네 안에 길을 열어주었니?”


진로는 내 안에서만 찾는 문제가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한 만남과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여정입니다. 결국, 진로를 바꾸는 것은 수많은 ‘정보’가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존재’라는 것을, 저는 이 일을 하며 배웠습니다.


그러니 외로워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길 위에도, 당신을 흔들고 이끌어 줄 만남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이 누군가의 길에 조용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지금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걸어갈 이유가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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