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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삶은 동행으로 완성된다

혼자는 시작할 수 있어도, 함께여야 오래 걸을 수 있다

by Eunhye Grace Lee

삶은 흔히 혼자서 시작됩니다. 진로를 정할 때도, 선택을 내릴 때도, 방향을 바꿀 때도… 우리는 깊은 고독 속에서 결정을 내리곤 하지요. 그 고독은 때로 성숙을 낳지만, 오래 머물면 무게가 됩니다. 그 무게는 우리를 지치게 하고, 결국 길 끝에 주저앉게 만듭니다.


저 역시 여러 번 그 끝에 다다른 적이 있습니다. 버티던 마음이 무너지는 밤, 무력감이 엄습한 새벽, 누구와도 쉽게 나눌 수 없는 마음의 골짜기 속에서 이 길을 그만둘까 고민했던 순간들. 그러나 그때마다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의지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 사람, 단 한 마디, 단 한 손길. 아주 작은 동행이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나를 비추고, 관계를 통해 나를 구성하며, 연결 속에서 삶의 의미를 얻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함께’라는 단어 덕분입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오늘의 사회가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자율성과 선택은 강조되지만, 정작 그 속에서 우리는 관계의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성취는 혼자 이룰 수 있지만, 의미는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삶을 오래도록 지속 가능하게 하는 힘은 결국 연결과 동행에서 나옵니다.


저는 현장에서 그 사실을 자주 확인합니다. 도움만으로는 사람이 변하지 않습니다. 정보나 자원만으로 삶이 나아지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의 ‘진짜 동행’이 시작되면, 그 사람은 스스로 조금씩 회복해 갑니다. 함께 걷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망은 줄어들고, 희망은 싹트기 시작합니다.


돌아보면 제 삶도 그러했습니다. 제가 이 길을 선택하고, 또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누군가의 동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과 나눈 오래된 대화, 친구의 따뜻한 편지, 동료의 조용한 위로, 클라이언트의 눈물 섞인 고백… 그 모든 순간이 제 발걸음을 붙잡아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삶을 성과나 목표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삶은 연결의 반복이며, 그 연결 속에서 의미가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결코 혼자 만들 수 없습니다.


부디 당신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문장이자, 누군가의 시간이며, 서로의 길 위에 놓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그러니 혼자 걸을 수 있는 짧은 거리가 아니라, 함께 오래 걸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하시기를. 속도를 내기보다 방향을 함께 바라보시기를.


그 길 위에서, 삶은 가장 인간답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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