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나는 가해자입니까

by Eunhye Grace Lee

그녀는 나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저는 나쁜 사람인가요?”
그 말은 울먹이지도 않았고, 과장된 제스처도 없었다. 오히려 침착한 얼굴이어서 나는 순간 대답을 망설였다.


C씨는 미얀마 출신의 40대 여성으로, 일본인 남성과 결혼 후 영주권을 신청한 상태였다. 그녀는 남편의 어머니, 즉 시어머니의 간병을 맡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였고, 치매 초기 증상으로 인해 돌봄의 난이도도 꽤 높았다.


문제는 간병의 피로도만이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그녀를 ‘외국 여자’라고 부르며 식사 거부, 배변 조절 문제, 심지어는 신체적 저항으로 대응했다. 언어적 폭력도 있었다.
“너 같은 건 왜 여기 있어?”,
“네 나라로 돌아가라.”
이런 말들이 반복됐다.


그녀는 처음엔 참고 넘어가려 했다. 가족이니까, 노인이니까, 아프니까. 그러나 감정은 누적되었고, 어느 날, 손으로 밀쳐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그녀도 시어머니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 일이 외부에 알려지며, 사회복지사인 나에게 긴급 상담 요청이 들어왔다.


C씨는 경찰 신고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가정 내 간병 상황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나는 현장을 조사하고, 의료진 및 가족과 면담을 했다. C씨는 분명히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었지만 물리적 위해를 가하려 한 정황은 없었다.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개인의 한계였다. 나는 그 상황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법적으로, 간병 중 발생한 물리적 접촉이 학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정황과 반복성, 고의성 등을 따져야 했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그녀는 이미 스스로를 ‘가해자’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담 중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데도, 나는 간병을 계속해야 했어요. 그런 나를, 이제는 내가 싫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반론하지 않았다. 그녀의 반성은 진지했고, 무엇보다 자기 성찰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이 구조는 과연 공정한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보수 노동이라는 전제 아래, 돌봄의 전부를 떠맡게 된 사람에게 우리는 어떤 ‘권리’를 부여하고 있는가.


간병을 하다가 순간의 실수로 인해 가해자가 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처한 맥락은 종종 무시된다. 그녀가 외국인이라는 점, 가족 내에서의 권한이 약하다는 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사건의 원인을 구성하는 요소였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고려하려 하지 않았다.


사회복지사로서 나는 감정의 편을 들 수는 없다. 그러나 사실의 균형은 지켜야 한다. 나는 상담기록과 사례보고서를 작성하며 사건을 ‘폭력’이라는 단어로 단정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 상황은 명확한 학대가 아니라, 지원체계 부재와 감정 누적의 결과였다.


그녀는 결국 간병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대체 요양보호사가 투입되었다. 시어머니는 더 이상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지 않게 되었고, 그녀는 한동안 외출도 하지 않았다. 몇 주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조금, 숨 쉴 수 있어요. 그리고… 다음엔 누군가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말은 나에게 오히려 안도감을 주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돌보는 사람은 강해야 한다’는 전제로 모든 책임을 맡긴다. 하지만 돌봄에는 감정이 있고, 감정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만이 건강한 복지체계를 가진다.


나는 그녀를 가해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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