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

by Eunhye Grace Lee

나는 요양보호사의 퇴사를 다룬 보고서를 검토 중이었다. 보고서에는 “업무 강도 과다, 의사소통 어려움, 돌봄 대상자의 공격적 행동”이라는 항목들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간병이 두려워졌다”는 짧은 메모였다.


그 요양보호사는 필리핀 출신의 30대 여성이었다. 현장에서는 일도 성실했고, 동료들과의 마찰도 없었지만 몇 달 전부터 얼굴이 자주 어두워졌고,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


그녀가 맡았던 노인은 중증 치매를 앓고 있었다. 현실과 망상을 자주 혼동하고, 때로는 폭언과 손찌검을 반복했다. 문제는 간병인의 대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의 시스템과 태도가 더 큰 문제였다. 폭력적 행동이 반복되는 이용자에 대한 관리 매뉴얼은 있었지만, 현장에서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진 않았다.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겪는 감정적 소진은, ‘일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지원 체계는 거의 없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 때때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구조가 정당한가. 누군가의 병든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또 다른 사람의 존엄을 소모하는 방식으로 지속되어도 괜찮은가.


하지만 동시에 나는 알고 있다. 돌봄은 필요하고, 인력은 부족하며, 현장은 이상보다 현실이 먼저 움직인다. 그리고 그 현실은 때로 매우 보수적인 논리로 운영된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정 안 되면 떠나면 된다”,
“외국인이라면 더 강인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가 존재한다.


나는 그 기대를 전면 부정하지 않는다. 사회란 유지되어야 하며, 책임과 역할이 분배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이 일방향일 때, 그 분배는 정의롭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가 복지현장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감정과 희생이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퇴사 전 마지막 상담에서 조용히 말했다.
“제가 환자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웠어요.”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간병인은 단지 노동을 제공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감정이 있고, 한계가 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가 빠진 자리에는 또 다른 외국인 요양보호사가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될 가능성도 높다.

돌봄 노동의 순환 구조는, 노동력의 재생산이 아닌 소진과 교체로 유지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 그래서 나는 현장의 ‘온도’를 자주 점검한다. 간병인이 웃고 있는가, 말을 하고 있는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건 일이니까”로 처리되지 않고 있는가.


사회복지사의 역할은 이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다. 나는 어느 한 쪽에 편향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노인의 질병이 이해되어야 하듯, 돌보는 사람의 피로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은 숭고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병든 사람이 생긴다면 그 구조는 재검토되어야 한다. 복지란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이지만, 사람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만 접근해서도 안 된다. 제도와 책임, 감정과 현장 사이에서 우리는 가능한 현실적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녀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갔고, 나는 그 후에도 몇 번 연락을 주고받았다.

“지금은 부모님을 돌보고 있어요. 일은 여전히 힘들지만, 지금은 웃을 수 있어요.”

나는 그 메시지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돌봄은 이어지지만, 그 돌봄이 소진이 아닌 연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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