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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04. 2023

소복소복 눈꽃



내 주위에는 여자들이 항상 많았다. 엄마는 2남 4녀 둘째 딸로 이모들이 많았고 사촌동생들도 여자들이 많았다. 미대입시를 위해 미술학원을 다닐 때는 여자 100명에 남자가 5명 정도였다. 미대를 가서도 여자들이 많았고 교회를 다니다 보니 교회에도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남자답다기보다는 생긴 거는 소도 때려잡게 생겼다는데 여성스러운 부분이 많다. 작년에 평소 편하게 생각했던 후배가 나는 아주 무식하게 생겼다고 얘기를 해서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내가 박보검처럼 세련된 얼굴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무식하게 생겼다면 그 자체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수염도 기르고 머리도 짧게 깎았다.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호불호는 많이 갈리지만.

 얼굴은 무식하게 생겼는데 디자이너, 작가, 고위 공무원이면 반전 매력도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모두가 세련되고 도시적이라면 나처럼 농촌스럽고 투박한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할 누군가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나는 무식하게 생겼지만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 여자들과 대화를 할 때 좋아하는 계절을 물어보면 봄을 많이 이야기한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여자들 마음도 살랑거리나 보다.


그래서 봄에 고백하면 백발백중이란 남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말이 있다. 가을에 눈에 들어오는 처자가 있다면 겨울 동안 잘해줬다가 봄에 고백하면

성공률이 아주 높다는 공식이다. 그런데 그것도 옛말이다. 요즘 여자들은 눈이 너무 높으니까. 예전이나 쫓아다니면 불쌍한 마음으로 사귀어주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스토킹으로 신고당할 수도 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이제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이다. 상황 봐가면서 찍어야 한다.


봄에 피는 연핑크색의 벚꽃이 바람에 날려 꽃눈이 내리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도 드물다. 앙증맞고 귀여운 이파리들이 함박눈처럼 길거리에 소복소복 쌓여있다. 꽃잎들로 가득 채운 수영장에 누워서 낮잠을 자고 싶다. 은은하게 퍼지는 꽃향기가  아저씨 마음도 베이비로션을 바른 것처럼 부드러워진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면 우리가 맞이하는 봄은 횟수가 정해져 있다. 몇 번의 봄이 남아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영원하지 않다는 건 그만큼 애틋하다는 의미다. 봄을 더 밀도 있게 느껴야겠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나의 44번째 봄이니까.


눈을 감아본다. 벚꽃으로 가득 찬 거리에서 바람이 불고 꽃잎들이 날아와 얼굴을 스치고 머리에 내려앉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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