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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Apr 26. 2023

커피 두 잔

부모와 자식의 상관관계

12:00 점심식사로 달달한 군고구마 2개, 닭가슴살 소시지 2개, 사과 1개를 통째로 먹고 1시쯤에 하얀 거품이 올라간 찐-한 카페모카를 한 잔 쭈욱 들이켰습니다. 혜화역으로 가서 볼 일을 보고 아는 분과 4시쯤에 파스쿠찌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또 쭈욱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몇 분 뒤 몸이 진동 온 것처럼 떨렸습니다. 제가 커피를 마시면 가끔 심장이 너무 뛰어서 힘들거든요. 공포영화를 보고 깊은 밤 시골길을 혼자 걸어가는 것처럼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혜화역에서 아차산역까지 오는 동안 교감신경이 자극을 받아서 그런가 다리도 후달리고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뭐라도 먹으면 괜찮을 것 같아 떡볶이로 배를 채우려다 살찔 것 같아 참았습니다. 교회에 저녁 도시락이 들어있는 가방이 있으니 힘을 내서 참고 교회로 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택배 아저씨의 빠른 손놀림처럼 가방에서 떡, 사과, 닭가슴살을 꺼내 먹으니 벌렁대던 심장도 안정을 찾았습니다. 휴- 다행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고 이렇게나 힘들었던 적은 없어서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잠시 글을 쓰다가 저녁 8시쯤에 컴백홈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가 해놓은 빈대떡을 먹고 9시까지 엄마 어깨와 등을 주물러주고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다락방 같은 곳에서 살 거든요. 오후에 봤던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특강 유튜브에서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을 들어서 성경책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책상배치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공부하기 전에 그런 생각 들잖아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책상과 TV 선반 위치를 바꾸고 코드선들을 정리하고 바닥을 물티슈로 닦고 청소까지 하니까 1시간 30분이 지나 1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이제 책을 읽으려고 책상에 앉아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폈습니다. 생각의 자유라는 챕터를 3페이지 읽는데 40분 정도 걸렸습니다. 책을 접고 제가 썼던 소설원고를 잠깐 펼쳤는데 재밌는 거예요. 제가 쓴 글을 혼자 키득키득 웃으면서 읽었습니다. 11시 40분 정도 되었습니다. 이제 자야겠다는 생각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유튜브, 인스타, 당근마켓, 데이트 어플, 인터넷 메일, 카톡들을 확인하고 이제 자야겠다 하는데 하나도 졸리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12시 넘어서 자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12시 이후에 텔레비전을 키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잠이 너무 안 오니까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리모컨 배터리 약이 떨어져서 벽시계 배터리를 꺼내서 바꿔봤는데도 리모컨이 안 됐습니다. 며칠 전에는 됐었거든요. 벽시계 배터리도 약이 거의 없는 거겠죠. 다이소 배터리는 싼 만큼 금방 약이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 바로 앞에 쪼그려 앉아 셋톱박스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버튼을 수동으로 누르면서 채널을 돌렸습니다.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야간에는 성인인증을 해야 하는 영화가 많잖아요. 저는 성인이지만 웬만하면 성인영화를 안보거든요. 다른 데로 채널을 돌렸습니다. 라디오 스타가 하길래 채널을 멈추고 봤습니다. 게스트로 개그맨 양세형, 배우 김민규, 가수 이지혜, 작사가 김이나 4명이 나왔습니다. 라스야 원래 기본적으로 재밌잖아요? 김국진의 썰렁한 개그, 김구라의 삐딱하고 거침없는 입담, 안영미의 명랑 추임새, 유세윤의 개그본능 애드립, 양세형의 독보적인 개그센스, 이지혜의 예능 투지, 대세 배우로 떠오르는 김민규, 김이나 작사가의 섬세한 멘트들이 유니크하게 버무려져 재밌더라고요.


저는 특별히 김이나 작사가를 집중해서 봤습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생기고 글을 쓰면서 작사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을 그날 오후에 했었거든요. 김이나 작사가는 워낙 유명해서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데요. 김이나 씨는 깊이 사유하고 오래 음미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직설적인 표현과 비유적인 표현을 리드미컬 하게 사용하면서도 감성적이고 유머러스함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세련되고 편안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면서 대체불가능한 자신 만의 스타일이 있는 작사가라고 말하는 자신감도 멋져 보였습니다.

나는 대체불가능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웃다 보니까 2시를 넘겼습니다. 그제야 잠이 왜 이렇게 안 오나 알게 되었습니다. 커피 두 잔 때문이었습니다. 낮에 내 심장을 그렇게 벌렁벌렁 뛰게 한 커피 그 자식이 내 몸을 어떻게 한 게 분명했습니다. 커피 그 녀석이 잠을 어디 여행 보냈는지 마실 보냈는지 오늘밤은 저에게 돌아 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텔레비전을 돌려서 관절에 좋다는 콘드로이친에 대한 이야기, 설탕은 줄이고 채소를 먹어서 건강해졌다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강 채널을 보다 보니 3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잠은 안 오지만 그래도 다시 이불 위에 누웠죠. 스마트폰을 보면서 1시간을 놀았습니다. 4시 30분, 그제야 졸음이 점점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기상 시간이 5시 전후거든요. 이제 일어날 시간이었습니다.

잠깐 눈을 감았는데 너무 포근하고 자고 싶은 거예요. 근데 잠들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조금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에 도착해서부터 졸음이 밀려오는데 홍수에 뚝이 무너지는 것처럼 계속 잤습니다. 저는 잠을 제대로 못 자면 감기몸살이 걸린 것처럼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기운이 쭉쭉 빠지거든요. 역시 오늘 하루를 비실비실 보내고 말았습니다. 에-휴. 진짜 커피는 웬만하면 두 잔 이상 마시지 말아야겠습니다. 


신기한 건 저희 엄마도 그렇거든요. 몇 주전에 낮에 커피를 마셔서 밤에 한숨도 못 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식은 어쩔 수 없이 부모를 닮게 되어있잖아요. 교육은 첫째도 example, 둘째도 셋째도 example인데 평생을 본 example인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드니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의 신체적 약점을 자식이 닮았다면 정서적 약점 또한 닮겠구나. 부모가 살면서 했던 인생을 실수들을 자식도 반복할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커피 두 잔으로 잠은 못 잤지만 그래도 안 해봤던 생각을 하게 되었네요. 부모님의 약한 부분들을 정리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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