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학대 이중인격자

남은 봐줘도 나는 못봐주지!

by 태리우스

think balance 생각치료 no.7

자기학대 이중인격


철수 엄마와 영희 엄마가 함께 커피숍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철수와 영희는 커피숍 MD상품 진열대 앞에서 신기해하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우리 영희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걱정이에요."

"어렸을 때는 공부보다 많이 뛰어놀아야 한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 순간 철수와 영희가 진열대를 건드리면서 그 위에 있던 커피숍 MD상품 머그컵 4개가 흔들거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깜짝 놀란 철수 엄마와 영희 엄마가 철수와 영희에게 달려갔다. 영희 엄마는 먼저 영희를 안아주었다.


"영희야 놀랐지? 괜찮아. 걱정하지 마."


영희는 실수를 할 때마다 엄마가 따뜻하게 안아주어서 이번에도 마음이 심하게 불안하지 않았다. 다음에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엄마의 포근한 품을 느꼈다. 반면 철수 엄마는 철수를 매섭게 노려보며 손가락 질을 하고 큰소리로 혼냈다.


"야! 김철수! 너 미쳤어? 엄마가 얌전히 있으라고 했지? 집에서 진짜 쫓겨나고 싶어?! 내가 너 때문에 못살아 진짜! 너 집에 가서 보자!"


철수는 두려움과 걱정 때문에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눈물이 한가득 고이더니 결국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철수가 울자 철수 엄마는 뭘 잘했다고 우냐고 소리쳤다. 너무 큰 목소리로 철수를 혼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영희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철수 엄마 너무 무서워...."


철수 엄마는 영희 말을 깜짝 놀라서 밝은 얼굴로 영희에게 말했다.


"어머, 영희야~미안해~아줌마 때문에 많이 놀랐지? 영희 다치지는 않았니? 영희는 어른스럽기도 하지 많이 놀랐을 텐데 울지도 않네~영희 정말 예쁘고 의젓하다."


철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영희한테 하는 것처럼 나한테 반에 반에 반만 해도 정말 좋겠다. 영희가 부럽다. 나는 집에 가서 얼마나 혼날까....? 우리 엄마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천사인데, 나한테는 악마 같을까?'


20년 후 철수는 심각한 결벽과 완벽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 사소한 결벽과 강박적인 부분이 있었던 철수는 30대가 되면서 세균과 병균을 완벽하게 없애고 싶어 했고 자신의 사소한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모든 법과 규정,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야 했다. 타인의 잘못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잘못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신앙을 갖고 있던 철수는 잘못했을 때 벌을 받을 것 같아 늘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자기 자신을 가혹하게 정죄하고 처벌하던 철수는 애인과 가족들도 가혹한 심판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점점 악화되는 심리적 상태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어졌다. 결국 철수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휴직을 하고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받고 있지만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자기학대 이중인격자는 어떤 사건, 상황, 일을 이중적인 잣대로 확대하거나 축소해서 판단하는 인지적 오류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타인과 자신이 똑같은 잘못을 했을 경우 타인은 관대하고 너그럽게 이해하면서 자신에게는 가혹하게 비난하고 처벌적인 경우입니다. 또한 자신의 단점이나 약점은 강조해서 비하하면서 장점과 능력은 인정하지 않거나 평가절하합니다. 반대로 타인의 단점과 약점은 관용적인 태도를 갖습니다.


이러한 경향성은 자신과 타인을 평가할 때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게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는 저울추를 바꿔가면서 무게를 재는 불공평한 저울과 같습니다. 같은 무게라도 기준이 되는 저울추가 달라지면 측정값은 달라지게 되겠죠? 이러한 이중적인 기준(double standard)으로 자기 잘못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큰 잘못을 한 것으로 자책하는 반면, 타인의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여 별 잘못이 아닌 것으로 평가합니다.


또 다른 예로 A 씨는 원리원칙을 강박적으로 지키는 강박증 환자입니다. 집 앞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모르는 차량이 주차되어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며 넘어가지만 자신과 가족은 절대로 불법주정차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본인 명의의 자동차가 불법주정차되어 있는 것을 관할 구청에 신고한 적도 있습니다. 동일한 잘못에 대해 타인은 너그럽게 이해하지만 자신은 가혹하게 비난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음란동영상을 보고 죄책감을 느껴 후회하고 있다면 따뜻하게 위로하고 이해해 주지만 본인이 같은 잘못을 했을 경우는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기도원에 가서 3일씩 금식 기도를 하며 자기 스스로를 처벌하고 속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씨는 점점 자기뿐만 아니라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들도 엄격한 기준을 충족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A 씨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A 씨를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A 씨와 밀접하게 관계된 사람일수록 그를 피도 눈물도 없는 가혹한 원칙주의자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자기학대 이중인격자는 왜 대상에 따라 다른 판단 기준을 갖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부모의 영향으로부터 경험적으로 습득했을 것으로 추론해 봅니다. 철수 엄마처럼 가족 외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상냥하고 자비롭고 부드러운 어머니가 집에만 오면 가족들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남편과 자식들을 비인격적으로 대하며 폭군처럼 행동한다면 자녀들은 이와 같은 어머니의 모순되는 상황을 혼란스러워합니다. 하지만 정서적, 육체적, 지적으로 취약한 자녀는 모순되는 상황을 합리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힘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불합리한 상황이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되었다면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과 기준이 잠재의식에 내재화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불안과 분노도 함께 쌓이게 되면서 마음의 시한폭탄은 점점 커집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순된 인격적 폭력 앞에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총알받이가 됩니다. 동시에 인간은 상대방을 닮아가는 특성(human mirroiring)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모습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그대로 배우고 습득하여 붕어빵처럼 부모의 인격과 똑 닮은꼴로 만들어집니다.


내면의 심연에서 거대하게 몸집을 키우던 인지적 오류는 어느 순간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인격을 형성하는 커다란 축이 됩니다. 자녀는 어머니가 자신을 대했던 기준과 태도대로 계속해서 자신을 대합니다. 무서운 것은 자신이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자기의 가족에게 동일하게 행동합니다. 타인에게는 너그럽고 가족에게는 가혹한 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경험한 대로 기형적인 저울로 자기와 외부세계를 저울질하게 됩니다. 이러한 추론을 통해 부모가 자녀에게 실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환경에 자라 안정적인 정서를 공급받지 못한 자녀는 사막 한가운데 심긴 나무처럼 메마르고 뒤틀어진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과 가족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가상의 미션을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대통령과 함께 해외순방을 가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대통령과 같은 방을 쓰고 같은 침대에서 함께 잠도 자야 합니다. 밥도 바로 옆자리에서 나란히 먹습니다. 마치 영부인처럼 모든 일정에 동행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같이 살다시피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언행이 마음에 안들 때나 실수나 잘못했을 때 가혹하게 비난할까요? 아니죠. 웃으면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이해해 줄 겁니다. 대통령을 지극히 배려하고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며칠 같이 지낼 뿐인 대통령한테도 이렇게 잘해주면서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 자신과 가족은 왜 이해하고 감싸주지 않나요?


단언컨대 자신이 대통령보다 오만 배는 중요한 VIP입니다. 너무 감정적으로 말했나요? 그럼 수학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우리가 70년을 산다고 했을 때 우린 25,550일을 삽니다. 대통령과 함께 했던 7일로 나눠보면 3650배 중요한 사람이겠네요. 가족은 어떻습니다. 30년을 같이 산다고 계산해 보면 약 1564배 중요한 사람들이네요. 친척, 친구, 직장동료 모두 대통령보다 수백 배 이상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타인에게는 관대하고 가족에게는 가혹한 부모도 아마도 그런 대우를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어쩌면 가족을 너무 사랑하니까 더 좋은 사람들로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한 인생을 살라고 스스로 대장장이를 자처하고 악역을 가족들을 연단했을 수 도 있습니다. 이미 지난 일과 지금 나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현실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있는 자신입니다. 내가 나와 외부세계를 그렇게 대하고 있다면 불공평한 저울을 고쳐야 합니다. 기울어진 저울추를 끊어내야 합니다.





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의 의미는 타인에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자기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다는 뜻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타인만을 향한 관용과 자신에게만 가혹한 처벌은 망가진 저울과 같습니다.


봄바람과 가을 서리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봄바람이 필요할 때가 있고 가을 서리를 맞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과 타인에게 봄바람이 되어줄 때가 있고 가을 서리가 되어줄 때가 있습니다. 봄바람만 불면 꿀벌들이 일을 하지 않을 테고 가을 서리만 내린다면 꿀벌들은 모두 얼어 죽을 것입니다. 공평한 봄바람과 가을 서리처럼 나와 타인에게 모두 공평한 저울러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 나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로 나 자신을 대합니다. 내가 내 자녀를 대하는 태도로 자녀는 자기 자신을 대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 타인을 대합니다.



내 자녀가 자신을 관용하고 존중하며 사랑하길 원한다면 자녀를 관용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스스로도 관용하고 존중하고 사랑해주세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든 상관없습니다. 좋은 것은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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