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느낌이 맞다니까! 틀린적이 없다고!
감정적 심판자 The emotional judge
감정적 심판자는 충분한 근거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감정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까 사실임에 틀림없다.'라고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강한 느낌에 지배받기 때문에 반대되는 증거들을 모두 무시하고 고려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적인 사실보다 훨씬 더 과신합니다.
의처증이 있는 남자 A 씨는 배우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고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배우자의 모든 행동들을 불륜의 증거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배우자가 시장을 갔다가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오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왔다고 믿고 아내를 추궁했습니다. 동창 모임을 다녀온 아내의 말을 믿지 않고 역시 외도를 하고 왔다고 느꼈습니다. 급기야 A 씨는 배우자의 행동 하나하나를 강압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우자의 스케줄을 1분 단위로 체크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강박적으로 기록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남편의 병적인 의심과 감시, 통제 때문에 아내는 노이로제에 걸려 몹시 고통스러웠으며 A 씨 또한 온종일 아내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느낌에 잠식당하여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가정은 산산조각 나고 있었지만 A 씨는 아내에 대한 의심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A 씨가 길을 걷던 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젊은 아가씨가 보였습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예쁜 여자였습니다. 스쳐 지나가면서 잠시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아가씨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A씨도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가씨는 A 씨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저 변태 새끼가 날 성추행했어요! 도와주세요!"
A 씨는 너무 당황하여 아가씨에게 다가가 오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더 크게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떤 여자가 A 씨를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얼마 후 현장으로 경찰차가 도착하고 자초지종을 들은 경찰관은 두 사람의 상반된 진술로 수습이 되지 않자 두 사람을 데리고 경찰서로 가서 자세히 조사하기로 하였습니다. 경찰서에 도착한 여자는 여전히 경멸과 분노의 눈빛으로 A 씨를 노려보면서 말했습니다.
"제 느낌에 저 변태 새끼가 나를 보면서 음란한 생각을 하고 성추행하려고 했어요. 제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저를 추행했을 거예요. 제 느낌이 맞다니까요! 제 느낌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아가씨는 성적 불쾌감을 느꼈다며 막무가내로 무거운 처벌을 요구하고 A 씨의 어떤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A 씨는 아가씨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느낌을 근거 삼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자신의 모습이 두 눈 똑똑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설명을 해도 듣지 않고 자신의 느낌만을 믿으며 끝까지 아내를 물고 늘어지는 A 씨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잘못을 짓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했던 대로 똑같이 당해보고서야 말이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어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사 과정 중 여자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는 것이 밝혀져 무혐의로 경찰서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A 씨는 경찰서를 나와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그동안 겪어왔을 아내의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자신이 그동안 어떤 잘못을 했는지 구역질이 났습니다. 골목으로 뛰어들어가 한참을 구역질을 했습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머리털을 쥐어 잡고 가슴을 쳤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 저녁이 되었습니다.
골목을 나와 길을 걷다 꽃집과 빵집이 보였습니다. 케이크와 꽃다발을 샀습니다. 집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문 앞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에 몰래 귀를 대고 아내가 누구와 통화하고 있는지 감시했었습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집안에는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아내는 A 씨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경직되게 행동했습니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옷을 단정히 입고 있어야 했습니다. 의심을 받으니까요. A 씨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당신을 얼마나 괴롭혔는지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행동에 놀란 아내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남편의 진심 어린 마음이 느껴지자 그녀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흐느끼는 남편에게 다가가 자신도 몸을 숙여 남편의 어깨를 감싸주었습니다. A 씨를 앉아주는 아내의 품은 부드럽고 따뜻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사랑하는 남편으로 다시 돌아왔네."
아내의 울먹이는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A 씨는 아내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고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A 씨의 든든함 품 안에 안긴 아내의 두려움과 아픔은 봄비를 맞은 겨울눈처럼 녹아졌습니다. A 씨는 두 번 다시 자신의 느낌을 근거로 아내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감시하고 통제할 힘으로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남자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감정적 심판자 오류를 갖고 있는 의처증 남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감정적 심판자는 충분한 근거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느낌과 감정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려 버립니다.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까 사실임에 틀림없다.'라고 생각하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강한 느낌에 지배받기 때문에 반대되는 증거들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무시합니다.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적인 사실보다 훨씬 더 과신하고 맹신합니다. 생각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평가해서 특정 생각에 사로 잡혀 강박행동을 하는 강박증 환자처럼 감정과 느낌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평가하고 강박적으로 맹신합니다. 자기에게 느껴지는 특정 느낌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이 느낌이 느껴지는 이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집니다.
느낌과 감정은 몸의 감각과 마음이 외부의 자극에 대해 인식하는 반응입니다. 외부의 자극을 환경이라고 한다면 환경이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할 수 있을 까요? 환경은 언제나 변하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의 기준도 환경에 따라 변하는 느낌과 감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감정적 심판자는 자기의 느낌과 감정이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오류를 범합니다. 판단의 기준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정당해야 합니다. 빈약한 정보와 부정적인 감정을 근거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관적이고 막연한 느낌과 감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할 거야!, 나는 그 일을 절대 못할 거야!, 나를 보는 눈빛에서 비웃음이 느껴졌어!, 그런 말을 하다니 나를 우습게 보는 거야!,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거 같아!, 사람들은 내 외모를 보고 무시하고 있을 거야!, 싸구려 옷을 입고 경차를 타면 나를 가난뱅이로 볼 거야!, 내 느낌에 나는 천벌을 받을 거 같아!, 내 느낌에 그 여자는 정말 좋은 여자일 거야!, 내 느낌에 그 사람은 믿을 만해!, 내 느낌에 그 녀석은 사기꾼이야!, 내 느낌에 이건 아니야! 등 자기의 느낌을 근거로 사소한 판단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정까지 오류 투성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삶을 돌아보면 후회로 가득 찬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가난한 흑인들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판단 대상은 가까운 사람,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를 판단하니다. 부정적 경험과 부정확하고 왜곡된 정보, 개인적인 감정을 근거로 정당하지 않은 판단을 받는 당사자는 얼마나 억울하고 괴로울까요? 본인이 그런 판단을 받는다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린 누군가를 정확하게 판단할 만큼 지혜로운 존재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느낌과 감정의 불꽃 앞에서 자기의 판단이 최고라며 춤출 수 있겠지만 커지는 불꽃이 나와 타인을 덮쳐서 결국에는 꺼져버린 느낌과 감정에 재만 남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감정적 추론은 객관적이고 정확한 근거 없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주관적 감정과 느낌을 근거로 결과를 단정 짓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니까 반드시 확실한 사실이야!'라고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믿음입니다.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절대 네 느낌이 사실이 아니란다. 이 또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