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준에 안 맞으면 뒤진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오류 mistake of Procrustes bed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나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주 강한 거인 강도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었는데 나그네를 붙잡아 철 침대에 눕혀 놓고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긴 만큼 다리를 잘라내고 짧으면 침대 길이만큼 다리를 늘려 죽였다고 합니다. 여기에 비밀이 하나 숨어 있는데 침대에는 길이를 조절하는 장치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침대 길이와 맞지 못하게 해서 모두 죽였다는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오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도 정해진 규정, 규칙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해야만 한다는 유연하지 못한 경직되고 고정된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와 '무엇을 해서는 안 된다.'로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려 하며 그에 대한 기대와 기준이 충족되지 못하면 절대적 오류라고 판단합니다. 원인과 결과의 여러 측면을 보지 못하고 단순히 규정과 규칙의 준수여부에 따라 좌절감, 원망, 분노를 느낍니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인간의 존엄성인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등한 관계의 다른 인간에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물론 사회에는 사회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안전한 울타리 역할을 하는 법이 존재합니다. 그 법 조차도 준수 여부에 대한 개인의 최종 선택을 강제할 수 없습니다. 울타리를 만들 수는 있지만 울타리에 고압 전기선을 설치해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상대를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것은 소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인다는 교각살우와 같습니다.
선한 의도라도 선택의 자유를 훼손시켜 가며 타인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은 상대를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만의 기준이 있다면 자신에게만 적용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는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이 다름을 인정한다면 자기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 없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자기의 기준만 옳다고 여길 때 생기는 두 번째 문제점은 타인을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제단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 자녀를 학대하거나 아내를 의심하고 부하직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오류를 갖고 있는 사람은 왜 타인에게까지 자기의 기준을 강요하는 걸까요? 원인을 어렸을 적 가정환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만약 독재자 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생각과 뜻이 절대적인 법입니다. 핑계를 댈 수 도 없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점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하면 해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딸이 중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우는데 엄마는 담배 피우는 여자를 혐오합니다. 그때부터 지긋지긋한 싸움은 평행선을 달리며 계속됩니다. 혼나고 맞고 싸우고 거짓말하고 추궁하며 끊임없는 마찰로 관계의 상처는 아물 날이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와 '내 딸은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라는 상호공존할 수 없는 욕구가 계속해서 부딪히는 것입니다.
특히 부모 자식 간에 이런 평행선을 달리는 문제들이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부모와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문제해결방법을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독불장군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부모 밑에서 자녀 또한 문제를 독불장군처럼 풀어야 한다고 보고 배우며 체득합니다.
내 자식은 내 기준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왜곡된 소유의식과 사랑이라는 이름의 타협 없는 강요를 고스란히 복사하고 붙여 넣기 해서 절대적이고 타협 없는 반항으로 대응합니다.
그러한 성장배경을 갖고 사회에 나가게 되면 본격적으로 문제가 시작됩니다. 대화와 타협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주장만을 내세워서 조직에서 끊임없는 마찰과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직장이 마음에 안 들면 그만둬 버립니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싸웁니다. 독불장군 같은 부모님과 똑 닮은 독불장군 자식이 됩니다.
사랑은 서로의 발목에 족쇄가 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날개가 되어 주는 관계가 참된 사랑이 아닐까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사랑이야기를 하냐고요. 프로크루스테스도 참된 사랑을 경험하고 배웠다면 그런 공포스러운 강도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화, 이해, 양보, 타협, 인정, 양보, 존중처럼 싸우지 않고도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독불장군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기준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어린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와 싸우는 어른은 없습니다. 먼저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인정해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풍성하고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면 됩니다.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의 오류는 잘못된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을 판결하는 위험하고 어리석은 심판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존재이며 선택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자기가 져야 하는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책임질 수도 없고 심판할 권리도 없는 동등한 인간이 타인을 자기의 기준으로 강요하고 제단 하려는 생각은 명백한 인지적 오류입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프로크루스테스처럼 대하는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학대하고 처벌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받지 못해서입니다. 한 번도 현재 자신의 모습으로 충분하다고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너는 2%가 부족하다. 얌전히 좀 있어라. 기가 살면 기를 죽이고 기가 죽으면 기가 죽었다고 뭐라고 하는 환경에서 신나서 뛸 수 도 없고 지쳐서 쉴 수 돈 없는 무기력하지만 잉여에너지로 과잉행동을 비정상적으로 하는 아이러니한 상태가 됩니다.
늘 뭔가를 해서 발전을 하던가 뭔가를 하지 않아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만 언제나 제 자리입니다. 침대 길이를 조절하는 프로크루스테스처럼 자신의 기준은 감정상태에 따라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지금 있는 그대로 모습 그대로 존재자체로 존귀하고 소중하고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배우고 믿어야 합니다. 그게 자존감입니다. 그렇게 될 때 자기 스스로에게 무시무시한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