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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4.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프롤로그 1

 버스가 정해진 코스를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을까요? 과속방지턱 같은 건 뒷좌석에 탄 승객들이 디스코팡팡을 하든 말든 무시해 버리면 됩니다. 마음대로 가위질을 하는 엿장수처럼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있든 말든 무시하고 지나가버릴 수도 있습니다. 쌩하고 지나가는 버스를 어이없게 쳐다보며 허탈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90%, 쌍욕을 하는 사람이 9.9%, 천만명에 한 명 정도 피도 눈물도 없는 테러리스트라면 택시를 타고서라도 버스를 쫓아가서 버스기사와 결투를 버릴 수도 있겠네요.


 어느 날 버스를 타고 집에 가고 있었습니다. 버스기사가 급똥인지 급줌인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버스를 세웠습니다.  불시착한 우주선처럼 생뚱맞은 차도에 버스를 세우고는 미안, 안도, 흥분이 섞인 목소리로 말합니다. 


 "잠시만요."


 버스와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비밀 아지트로 돌진한 버스기사는 몇 분 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환한 표정으로 다시 등장합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환희, 희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쓴 것 같은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죄송합니다. 하하하."


그리곤 멋지게 기어를 변속하고 가속페달을 밟아 운행을 재개합니다. 신기하게도 저는 그런 기사님을 여러 번 봤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특별한 사건들을 빼면 버스 정차벨에 새빨간 불이 들어왔다면 버스는 반드시! 꼭! 정류장에 정차를 해야 합니다. 버스기사가 정차벨을 무시했다가는 승객들로부터 고성과 쌍욕을 배 터지게 듣고 멱살을 잡힐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심지어 폭행과 생명의 위협을 하는 무자비한 승객이 타고 있다면 마음을 더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버스기사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운전하는 버스기사 같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회전목마에 탄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버스에 불청객이 탔습니다. 그 특이한 승객은 버스정류장이 아닌 곳에도 버스벨을 누르고 버스를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사정을 이해해서 몇 번 세워줬는데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아는 후안무치처럼 점점 뻔뻔해지고 난폭해졌습니다. 그 승객은 이제 허구한 날 아무 데서나 버스벨을 눌러대며 버스를 세우라고 고함을 치고 버스기사를 협박했습니다.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며 목숨을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1994년도에 개봉한 영화 스피드에 나온 버스는 속도가 시속 50km 이하로 줄어들면 터지는 폭탄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테러리스트의 협박에 속도를 줄일 수도 멈출 수도 없었던 주인공처럼 버스기사는 그 승객이 명령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돼버렸습니다. 


 버스기사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버스를 애용했던 승객들도 모두 내려버렸습니다. 버스운행이 엉망이 되자 절대 타면 안 되는 버스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이젠 어느 누구도 그 버스를 타지 않습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연료가 바닥나고 있는 버스에는 버스기사와 그 승객 단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포악한 승객의 성은 강이요. 이름은 박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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