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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5.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

구청으로 인사이동   in to the chaos

구청으로 인사이동 into the chaos




주민센터에서 3년을 보내고 구청으로 발령을 받았다. 건설관리과 광고물 팀이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 12월 31일 날 업무포털에 전보 결과가 떴고 인사차 구청으로 갔다. 예전에 한번 갔었던 건설관리과였다. 사무실로 들어가 과장과 주무팀장을 만났다. 간단하게 작성된 인적 사항을 본 과장은 의미 없는 광고전단지를 보듯이 잠시 훑어본 후 손가락으로 서류를 주무팀장 쪽으로 밀면서 말했다. 


 "알아서 하세요."


 과장은 별말 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과에 새로운 직원이 왔는데 자기와 별 상관이 없는 듯한 태도였다. 돌이켜보면 별로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사람마다 자기 스타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잘못 본 걸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내가 갈 자리는 나와 친한 사이의 직원이 근무하던 자리는 아니었다. 그 직원은 나와 비슷한 시기에 공무원이 된 같은 직렬의 시설관리직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마당발 같은 인물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원래 전보 대상자 명단에도 없던 직원이었는데 갑자기 최종 명단에 떴고 바로 그 자리로 내가 가게 되었다. 시설관리직은 자리가 별로 없어서 어느 정도 갈 곳을 예상했었는데 전혀 뜻밖이었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겠지만 나는 기분이 나빴다. 그 직원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해서 내가 받고 있는 특별수당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며칠 뒤 재무과에서 연락이 왔다. 급여에 문제가 있어서 받았던 월급의 일부를 뱉어내게 되었다. 정확히 그 직원이 나에게 물어본 수당에 대한 얘기였다. 어차피 잘못받았던 월급이었으니까 하루라도 빨리 반납하는 게 틀린 일은 아니지만 그 직원이 재무과에다 나를 언급한 거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  


어디 가나 있는 그런 스타일이니까 그려려니 했다. 약삭빠르고 머리를 굴려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그런 직원 같았다. 이것도 나의 오해일 수 있고 그 직원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니까. 다만 그 직원은 자신과 관련된 직원들의 상황에 레이다를 세우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 직원이 내가 전보 대상자 명단에 뜬 것을 보고 이리저리 계산을 해서 자신이 원하는 부서로 이동한다는 시나리오에 내가 이용됐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전화가 왔다. 그 직원이었다. 나는 왜 미리 말을 안 했냐고 신경질을 냈다. 옮긴다면 같은 시설관리직끼리 얘기라도 했으면 마음에 준비라도 하지 않았겠느냐고 화를 냈다. 자기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말을 안 했다는데, 얼마나 계산을 하고 머리를 굴려 자기에게 유리하게 처신했을지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나는 승진을 굉장히 빨리했다. 4년 6개월 만에 7급을 달았으니 엄청난 스피드였다. 그런데 그 직원은 승진이 나보다 한 박자씩 늦었다. 그 직원은 내가 인사이동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해서 희망부서를 어디에 썼느냐? 캐묻고 나에게 특별한 일이 있으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평소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인데 다른 직원들 정보를 모두 알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같아서 대부분 답장도 하지 않았다. 그 직원이 8급으로 승진했을 때 카카오톡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로 보내줬는데 후회된다.


 그 직원도 내가 자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사이가 멀어졌다. 그 직원은 다른 시설관리 직원들과는 대부분 잘 지냈다. 자기와 친하지도 않은 내가 계속 승진을 빨리하니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났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뭐 이것도 내 생각이니까. 난 다른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 쓰고 감시하는 인간이 싫다. 뭘 그렇게 다른 직원들 사정까지 알고 싶어서 어디로 갈 거냐? 어떻게 할 거냐? 계속 물어보는지. 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꽁꽁 숨겨놓고 말 안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꼬치꼬치 캐묻는 그를 상대하기 싫어서 그가 보낸 카톡을 보지도 않고 지운 적도 몇 번 있다. 직장 생활은 연기라고 싫어도 좋은 척, 좋으면 더 좋은척해야 하는데 나는 직장 생활연기를 잘 못했다. 대학시절 친한 후배가 나는 사람을 심하게 가린다고 팩트 폭행을 한 게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약방에 감초처럼 두루두루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많이 가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사람을 가리니 다른 사람이 나를 가릴까 봐 걱정을 많이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 직원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 아주 편한 자리라는 말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일과 중 대부분을 운전직 직원과 1톤 공용 트럭을 타고 다니며 관내에 불법 설치된 현수막, 간판, 전봇대 전단지 같은 광고물을 단속하는 업무였다. 진짜 대충 하라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리일 수 있었다. 아침에 나가서 어디서 놀다가 점심 먹으러 다시 구청에 복귀하고 쉬었다가 다시 나가서 놀다 와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는 자리였다. 어디 바닷가에 갔다 와도 사고만 안 나면 아무도 모를 업무였다.  


 이처럼 공무원 일이 편하게 하려면 한없이 편하게 할 수 있고 제대로 하려면 원형탈모까지 날만큼 이중적인 일이다. 하지만 나는 요령을 피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것이니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무조건 열심히 하려고 했다.  



 아무튼 과장의 말을 들은 주무팀장은 나를 광고물팀으로 보냈다. 광고물팀에 가니 나이 지긋한 선배가 2명, 팀장님은 무난해 보였고, 그냥 공무원 같은 선배 한 명, 동네 아줌마 같은 여자 주임님, 그리고 나에게 인사도 안 한 어떤 직원이 있었는데 운전직 직원이었다. 훗날 나와 앙숙이 되었던 직원이다. 돌아가면서 인사를 했는데 내가 온 것을 신경도 안 쓰고 앉아서 모니터를 보고 있는 그 운전직 직원에게는 인사를 안 했다. 아마도 간을 본 것 같다. 내가 자기에게 인사를 하나 안 하나. 그 운전직 직원과 같이 일했던 직원 그러니까 내가 별로 안 좋아했던 직원과 내 얘기를 어느 정도하고 내 정보를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둘은 말이 많았으니까. 뭐 아닐 수도 있고.


 그 직원은 피해의식이 심했는데 승진을 너무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승진을 못하는 것에 대해 항상 화가 나있고 매사에 불만이 많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4-5년이 지나도록 9급을 못 벗어나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하지만 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직원은 약자를 함부로 대했다. 마음에 안 드는 여직원에게 욕을 하고,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화를 내며 욕을 했다. 운전직으로 무시당하는 스트레스를 약자들에게 풀었던 것 같다. 


 그 직원이 욕을 하고 화냈던 상대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임기제 직원, 정치력이 약했던 직원, 시설관리직 같은 소외직렬, 공격적이지 않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약한 사람들이었다. 훗날 나에게도 아주 치욕적인 욕을 했다. 

발령 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사람한테 인사를 했어야 하나 후회가 됐다. 그런데 자기 팀에 새로 온 사람이고 자기와 같이 일할 사람인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 생각에는 이미 나를 약자라고 판단한 것 같다. 만약 팀장이나 6~7급이 와도 그러겠는가? 100% 그러지 못한다. 공무원 조직은 좁다. 안 좋은 소문이 한 번이라도 나면 끝장이다. 그 직원 보기에 나는 별 볼 일 없는 약자였던 것이다. 그 직원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나도 평범한 공무원이 아니니까 나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서로 안맞는 사람이었던 것 뿐이다. 분명 나도 그 사람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그때는 뭐 그러려니 하고 구청을 나와 주민센터에 복귀하고 퇴근을 했다. 나는 3년 동안 있었던 주민센터를 떠날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주민센터에서는 20여 명이 같이 일을 하는 동네 작은 회사 같은 분위기다. 8급 정도 되면 주민센터 돌아가는 건 웬만큼 알게 되고 뭐 긴장할 것도 없고 쉬엄쉬엄, 슬슬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스트레스도 없어서 구청도 그러려니 하고 만만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구청은 나에게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주민센터 다른 팀에 예쁜 계장님이 구청 가서 적응 잘하라는 걱정 섞인 격려의 말을 해줬다. 뭐 그딴 걱정을 하나 싶었다. 적응? 어려울 게 있나?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고 직원들과 작별을 했다. 나에게 다가오는 폭풍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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