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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6.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3

업무 첫날 바로 응급실행!  낫으로 무릎을 찍어버리다!

업무 첫날 바로 응급실행!

낫으로 무릎을 찍어버리다!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을 하고 드디어 첫 작업을 나갔다. 내가 하는 일은 불법광고물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수많은 종이 광고물부터 사거리나 유동인구가 많은 거리 높이 걸려있는 현수막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광고물은 날이 크고 두꺼운 커터칼로 빠르게 제거해야 했다.

 뭐 이딴 걸 공무원이 하나 싶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처음으로 전봇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전단지들을 커터 칼과 손을 이용해서 제거했다. 선배가 시범을 보이며 선배를 따라 해 봤는데 잘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창피하다. 공무원이 돼서 전봇대 전단지를 뜯는 일을 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난 청소를 하기 위해 공무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선배들은 아주 빠르게 커터 칼질을 하며 전단지를 뜯어냈는데 나는 일을 천천히 여유 있게 하는 스타일이라서 일이 맞지가 않았다. 특히 나는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칼 같은 도구를 빠르게 다루 지를 못한다. 그런데 선배들은 무슨 시합이라도 하는 듯이 칼로 전봇대를 박박 긁으면서 광고물들을 제거했다. 

 제일 힘든 일은 현수막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한 팀이 되는데 한 명은 낚싯대처럼 길이가 늘어나는 장대 끝에 낫모양의 작은 칼날을 용접한 장비를 들고 한 명은 서포트를 해준다.


 현수막 양쪽 끝에는 기다란 각목이 세로로 껴있고 양쪽 각목의 위아래에 구멍이 뚫려 밧줄이 묶여있다. 그 밧줄을 이용해 신호등이나 전봇대에 팽팽하게 잡아당겨 매단다. 


 장대낫을 들고 있는 사람이 오른쪽 강목 윗부분의 밧줄을 자른다. 그럼 팽팽했던 현수막이 휘청하면서 한쪽이 털썩 내려앉는다. 그때 밑의 밧줄도 바로 잘라버리면 큰일 난다. 현수막 천이 5m인데 끝에 매달려있는 강목이 바람을 타고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현수막에 매달린 크고 단단한 강목에 작업자나 시민, 차량이 맞아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나도 같이 일하던 운전직 공무원이 조심성이 없어서 몇 번 다쳤다. 그 운전직 직원은 기분이 안 좋으면 날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위험천만한 일을 혼자 했다. 기다란 낫을 들고 저 높이 걸려있는 현수막을 혼자 제거하면서 시민들을 안 다치게 했다는 게 신기하고 다시 한번 하나님께 감사하다. 


 그때 서포트 직원이 먼저 잘린 밧줄을 잡아당겨서 텐션을 유지시켜준다. 그러면 밑의 밧줄을 잘라도 현수막이 날아가지 않는다. 그럼 현수막 한쪽이 처리되었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간다. 역시 사람들을 조심하며 위아래 밧줄을 자르고 현수막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이제 두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길 다란 현수막 양쪽을 잡고 이불 개듯이 접은 후 돌돌 말아서 공용차량 트럭에 던져놓는다. 마지막으로 처리 후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함께 일하는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현수막이 설치된 곳은 대부분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한 대로변이거나 횡단보도가 있는 건널목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다. 아주 위험한 작업이지만 장갑 외에는 어떠한 보호장비도 없이 일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런 일을 왜 공무원이 직접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환경미화원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일을 하려고 공무원이 되지는 않았다. 높은 곳에 안전하게 올라가서 작업할 수 있는 차량이 있거나 함께 움직이는 팀원의 숫자를 늘리거나 해야 할 텐데 우격다짐으로 일을 했다.


 또 많이 거는 광고물이 있었는데 커다란 방패처럼 생긴 현수막으로 족자현수막이라고 불렀다. 전봇대 높이 방패연처럼 걸어놓는 방식이었다. 둘째 날 동네 전봇대에 붙어 있는 불법광고 전단지들을 떼어내고 민원접수가 된 족자 현수막을 제거하러 갔다. 


 족자 현수막은 기본 현수막처럼 양쪽에 매달려있지 않아서 혼자 처리할 수 있었다. 그때는 운전직 직원, 나, 다른 시설관리 여직원 3명이 함께 있었다. 혼자 해보라는 말에 차에서 내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트럭 짐칸에 있는 기다란 낫을 꺼냈다. 



천천히 족자 현수막이 걸려있는 전봇대로 다가갔다. 작업 순서를 생각했다. 맨 위 걸어놓은 줄을 먼저 자른 후 밑부분을 고정해 놓은 줄을 자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낫을 맨 위에 있는 끈에 걸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낫을 당겼다.


툭 소리와 함께 간단하게 성공!



윗쪽 끈이 끊어지자 현수막이 뒤집혔다. 이제 밑부분에 묶여있는 끈들을 끊으면 된다. 


역시 처음 사용해 보는 장대 낫질은 잘되지 않았다. 밑을 묶었던 끈이 제대로 안 잘린 체 전봇대 밑으로 줄들이 늘어지며 주르륵 떨어졌다. 족자 현수막은 묶여있는 채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잘 안되니까 괜히 창피하고 땀이 나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 제대로 한 번에 멋지게 잘라내겠다고 다짐하고 낫을 밧줄에 걸었다.


 여기서 잠깐! 무릎 아래로 내려온 줄들을 커터 칼로 자르거나 낫으로 조심스럽게 잘라야 했다. 하지만 초보인 나는 힘 조절이 안되고 각도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절대로 낫을 자신의 몸 방향으로 잡아당기면 안 된다는 가장 중요한 안전 수칙도 배우지 않았다. 현수막 밧줄이 얼마나 강한지. 낫은 또 얼마나 날카로운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냥 몇 번 시범 보여주고 혼자 해봐였던 것이다. 



 바닥에 떨어져 엉키고 늘어져있는 여러 개의 현수막 줄에 낫을 걸고 있는 힘껏 빠르게 잡아당겼다. 낫이 나를 향하도록 말이다. 


 낫은 날카롭게 줄을 자르고 나의 무릎을 향해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무릎 정강이 부분에 무언가에 찍힌 것 같은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난생처음 겪는 낫으로 무릎을 찍는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차에서 나를 보고 있을 선배들을 생각하니 아픈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상처를 볼 겨를 도 없었고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타박상정도라고 생각했다. 잘린 현수막을 트럭에 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트럭 앞자리에 탔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구청으로 복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몇 분 뒤 다리를 내려다봤는데 정강이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피가 많이 나고 있었다. 청바지가 피로 젖었다. 나는 운전직 지원에게 말했다. 


  "저 병원을 가야 할 것 같은데요."

  "병원? 왜??" 


 나는 피가 흐르는 정강이를 보여주었다. 운전직 직원은 깜짝 놀랐다.


  "야 왜 이래!?"

  "아까 낫으로 정강이를 찍혀서요."

  "아이! 조심했어야지! 빨리 말해야지." 


 나는 피가 나는 다리를 보고 솔직히 기분이 좋았다. 이 일을 안 할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정말 이 일 안 할 것 같네요." 


 나는 입방정을 떨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차에 있던 직원들은  '너만 못 빠져나가지! 꿈 깨!'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빨리 병원 가자!" 


 운전직이 고려대 병원 응급실로 차를 돌렸다. 고려대 병원은 명문대 병원이지만 인지도 낮은 게 이해가 잘 됐었는데 그날 가보니 왠지 알 것 같았다. 응급실에 의사, 간호사들이 모두 대학생같이 어려 보였다. 전문적인 의료진들이라고 보이지가 않았다. 바지를 벗으려고 하는데 젊은 간호사들 네다섯 명이 구경을 했다. 내가 바지 벗는 것을 머뭇거리자 간호사들은 뒤로 도망쳤다. 내 생각에 간호학과 실습생이었던 것 같다. 한 2-3센티 낫에 찍혔는데 생각보다 피가 많이 나고 금방 부어올랐다. 


의사는 신속하게 상처를 바늘로 꿰매었다. 역시 전문의는 아닌 것 같았다. 아팠다. 

 운전직 직원은 옆에서 상처를 꿰매는 것을 지켜봤다. 구경하는 것 같아서 운전직 직원이 지켜보고 있는 게 짜증 났다. 그래도 병원까지 데려다줬으니 짜증은 낼 수 없었다. 다 꿰매고 반창고와 붕대를 감고 응급실을 나왔다. 응급실 밖에는 팀장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팀원이 다치니까 와준 것이다. 착착하고 답답한 마음이 얼굴에서 느껴졌다. 사고뭉치 직원을 받아서 정초부터 고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팀장은 운전직 직원과 몇 마디 나누고 구청으로 갔다. 뭐 별거 아니라는 그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내 상태를 왜 자기가 말해!'


 내가 다쳤다는 핑계로 다른 부서에 못 가게 하려고 물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튼 짜증이 났다. 바지가 피로 흥건히 젖어 입을 수 없어서 운전직 직원에게 병원 매점이나 편의점 같은 곳에 바지를 하나 사다 달라고 했다. 그 직원은 고맙게도 바지를 사다 줬다. 그리고 걸어서 병원을 나가는데 다리가 아팠다. 그 직원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리가 아파서 조금 부축을 해달라고 했다. 내가 별로 안 아프고 많이 안 다친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짜증이 났지만 병원에 함께 있어준 게 고마워서 그러려니 했다. 진짜 일하기가 싫었다.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사무실로 복귀했다. 상식적으로 응급실에 갔다가 온 직원이 있으면 팀장이 조퇴를 하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 말도 없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도대체 운전직 직원이 뭐라고 했길래 별일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지 화가 났다. 


 참다가 열불이 나서 팀장에게 말했다. 조퇴하겠습니다. 팀장은 탐탁지 않게 여기며 그러라고 했다. 그리고 조퇴 결재를 올리고 절뚝거리면서 사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결재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출장 중이었고 이중으로 조퇴를 한 것이다. 새끼 서무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또 그걸 바로잡는데 애를 썼던 모양이다. 참으로 여러 가지 하는 직원이 아닐 수 없었다. 


 구청 출근 셋째 날 또 버라이어티 한 일을 해내고 만 것이다. 하- 집에 가서 방에 누우니 일할 맛이 안 났다. 평소에도 공무원이 하기 싫었는데 구청생활이 계속 꼬이니까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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