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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16.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4

국회의원의 불법현수막 & 현수막 007작전!

국회의원의 불법현수막

현수막 007작전!


 현수막 중에 제거하기 어려운 현수막이 정치인들의 현수막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나 정당에서 불법 현수막을 미친 듯이 건다. 불법현수막을 걸지 말라고 광고물에 관한 법률을 만든 장본인들이 가장 앞장서서 법을 어기며 불법 현수막을 무지막지하게 거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러면 담당 공무원으로서 참으로 갈등이 생긴다. 저걸 떼야 하나? 말아야 하나? 법으로는 삼권분립 국가라고 하지만 행정부의 기관장들은 정당 소속이다. 쉽게 말해서 구청 공무원들은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몸종이나 다름 없다. 그들이 시키면 해야 한다. 


 내가 일했던 관내에는 정의의 사도가 있었다. 그분은 국회의원들이 현수막 거는 꼴을 못 보는 시민이었다. 동네를 다니며 정치인들의 불법 현수막을 계속 신고했다. 신고가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처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현수막을 제거하러 간다. 마음 한편으로는 신고해 준 시민이 고마웠다. 공무원이 제거하기 까다로운 정치인 현수막을 신고해 줬으니 그 핑계로 없애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통쾌한 마음으로 정치인 현수막을 끊어서 짐칸에 던져놓는다.


 제거한 국회의원 현수막을 트럭에 싣고 구청으로 복귀하면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연락이 온다. 현수막을 도로 달라는 것이다. 비서실에서 과장에게 전화를 하고 과장은 팀장에게 말하고 팀장은 담당 공무원인 나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한다. 진짜 짜증 나고 화가 났다.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돌려준 현수막을 다시 걸면 그것을 본 시민이 또 신고를 하고 우리는 다시 떼고 또 돌려주고 쇼를 했다.


 재밌는 것은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정확히 숫자를 센다. 10개 걸어서 10개 신고를 받아 10개를 제거하면 10개를 정확히 잘 보관했다가 다시 돌려줘야 했다. 몇 개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없어진 현수막의 행방을 찾아야 했다. 뭐 이런 멍멍이 같은 경우가 다 있나 싶다. 자치구 공무원들은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의 몸종이나 다를 바 없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아직도 죄책감이 남아있고 시민들에게 죄송한 것은 국회의원 불법 현수막을 120 다산 콜센터로 신고한 시민들에게 현수막을 제거했다고 거짓으로 결과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현수막을 제거하고 다시 현수막을 전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참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열받은 나는 그냥 모조리 떼어버리려고 했다. 팀장에게 다 떼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팀장에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운전직에게 전화가 왔고 복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나의 쿠데타는 시작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현수막 하나도 제거하지 못하고 말이다.  

 어느 날은 너무 짜증이 나서 나 혼자 국회의원 사무실에 갔다. 의원 보좌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 마침 구의원 의장이 있었다. 젠장. 바로 과장에게 전화해서 억압적인 말투로 봐달라는 거다. 이런 미친! 구의원들은 국회의원들의 부하나 마찬가지다. 자기네들이 만든 법을 자기네들이 힘을 합쳐 제일 어긴다. 그런데 어떻게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독한 국회의원, 구의원이 있으면 더 지독한 시민이 있는 법,  끊임없이 정치인 현수막을 물고 늘어지던 정의의 사도와 국회의원 사이에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다.


 용기를 내서 정의의 사도에게 사적으로 연락을 했다. 자세하게는 아니지만 상황을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이해하는 눈치였지만 결국에는 그는 나를 감사원 신고를 했다. 왜 현수막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냐는 것이다. 국회의원들과 한통속이 돼서 거짓으로 처리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셨다. 그래서 나는 난생처음 감사원이란 곳에서 감사를 받았다. 국회의원이 건 불법 현수막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내가 말이다. 그런데 그 감사원 감사도 엉터리로 진행되었다.


 우선 감사원 감사실에 사실을 말하기 전에 구청 감사과에서 먼저 상황을 파악한다. 나는 국회의원이 현수막을 걸고 제거되면 비서실에 연락해서 다시 돌려달라고 했고 과장이 돌려주라고 해서 돌려줬다고  어이없는 상황을 사실대로 말했다. 구청 감사과에서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면서 허위로 보고를 했다. 나는 점점 더 괴로워졌다. 그래도 전화위복 다행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은 것이 잘된 일이 되었다. 감사원 감사를 통해 더 이상 허위로 업무를 처리할 수 없었다. 현수막을 제거한 후 돌려줄 수 없게 됐으며 원칙대로 처리해야 한다는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토요일에도 근무 스케줄이 있었다. 4시간인가 주말 근무를 올리고 초과근무 수당을 받는 업무였다. 하지만 어떤 직원은 새벽에 동네 한 바퀴 돌고 전단지를 제거하고 사진을 찍어서 보고를 올렸다. 다른 직원들은 1~2시간 하고 복귀했다. 나는 원칙주의자이기 때문에 4시간을 혼자 돌아다녔다. 괴로웠다. 너무 괴로웠다. 내가 4시간을 채우기 위해 혼자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팀원들은 나를 배려해서 토요근무에 빼줬다. 내 모습이 짠했던 모양이다. 나를 이해줘서 많이 고마웠다.


그래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토요일에 출근을 했다. 그런데 선배가 나에게 미친 새끼 아니냐고 지랄을 했다. 왜 나왔냐는 거다. 그걸 보고 관찰하는 운전직이 묘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선배는 후에 또 나에게 욕을 했고 나는 폭발을 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생각이 짧았다. 그냥 감사과에 신고하면 다른 부서로 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팀장도 이상하다. 나와 운전직이 그렇게 사이가 안 좋은데도 몇 달 동안 그냥 방치했다.  곪을 데로 곪아진 나와 운전직은 하루 종일 같이 다니면서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직원만 나쁘고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별나고 힘든 스타일이라서 같이 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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