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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22.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1

학교폭력전성시대 생존스토리 1


번개보다 빠른 녀석의 주먹!



야간 자율학습시간이었다. 평소 나름대로 편하게 얘기하고 지냈던 튼튼하고 단단하게 생긴 놈이 있었다. 녀석은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닌 놈이었다. 막 친하지는 않지만 몇 번 같은 반을 했던 녀석이었다. 이름은 용범! 용과 호랑이라니! Drangon & Tiger! 용호상박처럼 용과 호랑이는 하늘과 땅의 제왕들이 아니던가? 옛날 이름스타일이지만 이름부터 포스가 있는 녀석이었다. 이름값을 한다고 녀석은 중학교 때까지는 꽤 싸움을 잘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뭔가가 부족했는지 일진무리에 들지 못했던 녀석은 변방으로 점점 밀려났다. 내 기억에 자기 꼬봉같은 녀석이 일진무리에 들면서 그 놈과 맞짱을 뜨다 결과가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지는 해가 되버린 녀석은 평범한 무리의 학생사이에서나 힘자랑을 하던 퇴역한 군인 같은 놈이었다. 


반면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쭈욱- 개그맨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1990년대 봉숭아 학당에서 맹구가 자기 일기를 친구들에게 읽어준 걸 따라 하면서 조회시간, 수업시간, 쉬는 시간에 태우의 일기!라고 큰 소리로 읽어주면서 반아이들을 웃겼던 애였다. 원래 그런 애들이 리더십도 있어서 응원단장도 하고 그러는데 나는 확-이끄는 스타일은 못됐고 걍 재밌고 우끼는 스타일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패션에 눈을 떠서 옷 입는 거에 관심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개그욕심은 항상 있었다. 


그날도 용범이와 교실 앞에서 별별 장난을 가볍게 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개그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게 문제가 되었다. 내가 녀석에게 어떤 농담을 하자마자 순간적으로! 내 고개가 퍽! 돌아가고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뭐지?'


 그렇다! 녀석이 내 장난을 듣자마자! 곧바로 주먹으로 내 아구창을 날린 것이다! 빠르다! 주먹이 빨라서 놀란게 아니라 내가 한 기분 나쁜 말에 대해 곧바로 주먹으로 대응하는 녀석의 반응속도가 너무 빨라서 놀랐다! 기분 나쁘다고 로케트같은 주먹을 사람 얼굴에 갈기는 초스피드 반응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기분이 나쁜 순간! 곧바로 주먹으로 상대 아구창을 날리는 녀석에게 나란 존재는 뭐였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놈의 심리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추론해 본다. 



내 생각에 녀석에게 나는 무생물이나 곤충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놈에게 나란 존재는 동물은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다. 우리와 가까운 동물인 강아지, 고양이, 앵무새 같은 동물에게 그럴 수 없지 않겠는가? 화가 나자 마자 강아지를 두들겨 패는 건 사이코패스나 하는 일 아닌가? 그렇다고 놈이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이코패스가 아닌데 인간을 두들겨 패는 놈들은 도대체 뭔가? 분노조절장애자인가?



여기서 잠깐! 우린 분노조절장애자와 강약약강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강자건 약자건 어느 누구에게나 화를 내는 사람은 분노조절장애자다. 대통령이건 갓난 아기건, 할아버지건 이효리건 간에 아무에게나 버럭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확실히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에 장애가 있는 분노조절장애자이다. 

반면 사람 봐가면서 그러니까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약자에게만 무자비하게 화를 내는 사람은 분노조절장애자가 아니라 강약약강인 것이다. 놈은 분노조절장애자도 아니다. 화난다고 담임선생님 죽빵을 날리거나 일진 아구창을 갈기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녀석은 하이퍼- 강약약강!


그렇다면 녀석은 하이퍼- 강약약강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하이퍼- 과도한 강약약강인 녀석에게 나는 곤충이나 무생물이었다. 왜냐하면 곤충은 인정사정없이 죽일 수가 있다. 모기를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화가 났을 때 길거리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찰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열받았을 때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순간적으로 집어던진 기억들이 있지 않은가?


내가 장난을 치자마자! 진짜로 그 순간! 곧바로! 내 아구창을 날리는 건 나를 모기나 볼펜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멋대로 해도 자기에게 전혀-피해가 없어서 함부로 해도 되는 상대라고 여겼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놈보다 키가 작고 힘이 약해서다. 신기하게도 인간의 세계는 동물의 세계와는 확연하게 다른데도 유난히 우리나라 중학교, 고등학교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동물의 세계다. 약육강식의 세계, 힘이 약하면 밟히고 처맞고 뺏기고 얻어터지는 정글 같은 세계다. 


나는 놈에게 몇 대를 더 얻어맞았다. 우리 가까이 있던 다른 친구들이 놈을 말리면서 폭행사건은 종결되었다. 나는 분했다. 녀석과 맞짱을 뜨고 싶었다. 자리로 돌아가서 온 힘을 다해 신발끈을 단단히 묶었다. 나는 분노에 찬 눈빛으로 신발끈을 조여 매며 녀석을 노려봤다. 



나는 키가 크진 않지만 싸움을 그렇게 못하는 애는 아니었다.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하- 국민학교 때 학교 10짱 안에 들던 애와 맞짱을 떴던 숨겨진 싸움 고수였다. 여기서 10 짱은 싸움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는 놈들이다. 정확히 4짱인 놈과 대등한 싸움을 했던 게 나였다. 하- 얘기를 하면서도 너무 부끄럽다. 잠깐 그때 얘기를 하자면 4짱인 그놈은 성격이 포악하기로 유명한 놈이었다. 생긴 것도 북파공작원처럼 특수훈련을 받은 간첩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아니 어떻게 초딩이 북파공작원처럼 생겼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진짜! 당시 녀석은 우리에게 그만큼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무시무시한 놈과 맞짱을 뜰 수 있었을까? 하하하- 나도 꽤 싸움을 했기 때문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든다. 놈과 학원 엘리베이터에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빠르게 몸을 숙이면서 녀석에게 파고들어 왼손으로 녀석의 멱살을 잡아 놈의 머리를 높이 추켜올렸다. 깜짝 놀라 무방비가 된 녀석의 낭심을 향해 곧바로 무차별 주먹 폭격을 연속해서 날렸다. 전교 4짱 정도 되는 놈이 나에게 주먹질, 발길질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예상대로 학원 원장님이 뛰어나와 말리면서 싸움을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었다. 만약 어른들이 없는 공터나 운동장에서 싸워 장기전으로 갔다면 분명 나의 패배였을 것이다. 나는 좁은 공간의 무형지물을 잘 활용했다. 녀석을 엘리베이터 쪽으로 밀어 넣어서 언제 엘리베이터문이 열릴지 모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고 학원 입구에서 싸움으로서 내가 불리한 상황에 쳐해도 곧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을 선택한 것이다. 무엇보다 단기전을 선택한 건 나의 탁월한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북파공작원과 장기전을 한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얘기가 너무 옆으로 셌다. 나도 싸움본능이 어느 정도 탑재된 놈이라서 용범이에게 두들겨 맞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칼을 갈며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생각해 보면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녀석이 공부를 할 때 의자나 책상으로 녀석을 찍어버렸어야 했다. 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우르르르 시끌벅적 학생들이 교실을 나갔다. 나는 복수의 칼날을 숨긴 닌자처럼 어둠 속에서 녀석의 뒤를 쫓았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여고, 상고, 남고, 외고 심지어 중학교까지 붙어있는 거대한 학교그룹이었다. 야자가 끝나자 2002년 월드컵 때처럼 학교 근처 도로는 학생들로 넘쳐났다.      
 

학생들의 물결 사이에서도 나는 용범이를 놓치지 않고 노려보며 쫓아갔다. 그때 짱돌 같은 돌멩이나 강목, 쇠파이프 같은 걸 하나 들고 녀석을 쫓아갔어야 했다. 나는 인파를 헤치면 녀석을 계속 쫓았다. 


그러나 잠시. 나는 멈췄다. 그리고 발길을 돌렸다. 


솔직히 녀석과 싸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녀석은 세고 나는 약하니까. 내가 장난쳐서 녀석이 날 무차별 폭행했지만. 하-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고 꺼져버린 연탄재처럼 녀석에 대한 분노도 사그라졌다. 그때는 그런 걸 그냥 받아들여야 했던 시절이었다. 약하니까 얻어터지는 세상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잊히겠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20년이 넘게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고 평생 생생할 것 같다.





나도 여러 번 얻어터졌지만 뉴스나 방송에서 나오는 심각한 학폭을 경험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학폭 인턴십 정도의 간접 경험밖에 안 해 본 나도 그때의 수치심과 상처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는데 학폭피해자분들이 평생 동안 겪을 고통과 수치심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간다. 최근에 정부에서 학폭가해자에 대한 대학 입시 전형에서 불이익을 받도록 하는 정책과 법률을 만들며 학폭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참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학폭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또한 과거의 학폭피해로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아픈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절대로! 학폭 피해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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