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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Jun 21. 2023

신난다! 현수막 자르는 공무원! 10

엉덩이에 매단 시한폭탄!

엉덩에 매단 시한폭탄



그날은 출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자마자 신호가 강하게 왔다.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45분 정도 가야 하는데 출발 5분부터 너무 급했다. 그래도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신호는 더욱 거세졌다. 한 정거장도 못 참을 만큼 급했다. 긴급한 모스부호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엉덩이는 위급한 상황이라고 아우성을 쳤다. 사람들로 가득 찬 8시 지하철! 지하철 문 앞에 서서 간절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지만 신호는 더욱 세고 메몰차게 나를 압박하고 위협했다.


나는 늘 빠듯하고 촉박하게 출근을 했기 때문에 화장실을 들를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나는 강박증과 결벽증 때문에 Big shot을 할 때면 시간이 너무 걸렸다. 기본적으로 30분 정도 걸렸으니 화장실을 간다는 건 출근포기를 의미했다.


PLAN A. 나는 우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유튜브 개그 채널을 틀었다.

하하하. 어색하게 웃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당장이라도 바지에 활화산이 터질 것처럼 급했다. 나는 빈 공간에서 다리를 스크류바처럼 강하게 꼬고 엉덩이를 꽉 조였다. 효과가 조금 있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눈썹 or 아이라인을 그리거나 드물지만 책을 읽거나 지하철 노선도를 외운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여자가 다리를 꼬고 불안해하는 어쩔 줄 몰라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강력한 잠금장치 효과도 잠시뿐!


PLAN B. 나는 환경을 바꾸면 어떨까 싶어서 지하철 다른 칸으로 가기로 했다.

별로 남아있지도 않은 에너지를 끌어올려 지하철 도어가 열리자마자 다른 칸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여전히 신호는 거세게 몰아쳤다. 나는 너무 힘들었다. 무언가를 움켜쥐며 견뎌야 했다. 그래서 바지 주머니에 있는 체크카드를 주먹으로 꽉 쥐고 있는 힘껏 구겨버리면서 끝까지 버티고 투쟁할 각오를 했다. 하지만 나의 각오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낼 수는 없는 법.  


PLAN C. RUN! RUN! RUN!

3번째 정거장에서 지하철 문이 열렸다. 지하철 문이 닫히는 5초 정도 시간 동안 깊은 고뇌에 빠졌다. 내릴까? 말까? 내리면 지각! 안 내리면 대참사! 고민하던 사이 본능적으로 닫히는 지하철 문 사이를 펄쩍 뛰어서 지하철에서 내렸다. 지각이고 뭐고 나는 우선 화장실을 향해 달려갔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하필이면 답십리역! 승차장과 화장실 거리가 먼 역이었다. 여기는 지하 3층, 화장실은 지하 1층이었다.


도저히 지하 1층까지 논스톱으로 못 올라가겠어서 우선 엘리베이터가 있는 구석지고 외진 곳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그 공간에서 나는 빨래를 쥐어짜듯 강하게 다리를 꼬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조이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몸을 비틀었다. 너무 힘들어 주먹으로 벽을 세게 쳤다.  울그락 불그락 내 표정은 괴로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지금 계단을 뛰어올라 화장실을 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잘못 근육이 풀리기라도 한다면 계단이 엉망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기로 플랜을 바꿨다. 그런데!  


아뿔싸!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을 가지 않았다. 지상 1층을 가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고 힘들었다. 잠시 멈춰서 심호흡을 하고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전열을 갖췄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나는 엉덩이에 시한폭탄을 매달고 뛰는 장애물 달리기를 하는 운동선수의 심정으로 뛰었다. 계단을 뛰어올라가서 겨우 화장실에 다다랐다. 미션을 클리어한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 자리가 있겠구나!'


허걱!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화장실 칸은 은행 금고처럼 견고하게 잠겨있었다. 심지어 대기 인원도 한 명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계단을 뛰어온 나는 헉! 헉! 거리며 대기자에게 말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급해서요.!”

그분은 나를 보고 내가 지금 얼마나 위급하고 급박한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에게 순서를 양보했다. 너무-너무- 고마웠다. 그분은 나를 보고 살짝 웃는 눈치였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가 대기 1번이란 사실이 마냥 좋았다.


대기 1번도 엄청난 것이지만 대학에 들어가야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대변기칸에 들어가야 목적을 달성 할 수 있었다. 너무 급박한 상황이라 나는 대변기칸에 들어있는 선생님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선생님들! 죄송한데 제가 너무 급해서요!”


물론 대답은 없었다. 나 같으면 "나가요! 나가요! 잠시만요!"라고 말하면서 안심시켜 줬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이 뭐가 필요한가 빨리 나오는 게 장땡인 상황이었다. 잠시 후 중간 칸에 있는 분이 달칵! 자물쇠 미는 소리와 함께 나왔다. 나는 나에게 순서를 양보한 선생님께 먼저 예의 있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서둘러 달려갔다. 가방과 패딩을 벗고 나는 착륙했다. 그리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급박했는지 볼 일을 보는 동안 육상 선수처럼 헉! 헉! 거렸다!



환희! 나는 환희를 맛보았다! 진짜 행복했다! 온몸에 에너지가 넘쳤다! 활화산처럼 힘이 넘쳤다!



Big shot을 끝냈다! 남은 출근시간이 촉박하기에 오랫동안 환희에 젖어있을 수는 없었다. 서둘러 마무리를 하고 화장실을 나와 다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다. 바로 오는 지하철을 탔고 스마트폰에서 네이버 지도를 열고 빠른 환승 구간을 찾았다. 다음역에 도착하고 빠른 환승 구간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에서내려서 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몇 초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지하철 도어가 순식간에 닫혀버렸다.지하철 문이 닫히고 나도 그 자리에 멈춰버렸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욕심이 너무 컸나? 나는 허탈함, 허무함, 걱정, 안타까움에 닫힌 문 앞에 서있었고 지하철 안에서 나를 지켜보던 아주머니도 약간의 슬픔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표정을 나에게

보여줬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지각이다. 다음 지하철이 왔고 난 탔다. 이제는 약간의 포기상태.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프로 칼출근러의 근성 아니던가? 나는 프로 칼출근러다! 8시 50분 59초까지 출근시간을 정확하고 빠듯하고 촉박하게 지키는 나 같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나는 5호선을 타고 있었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내려 4호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환승역에서 내려 미꾸라지처럼 사람들 사이를 슉! 슉! 지나가 달리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평소 운동부족으로 달리기가 많이 힘들었다.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4호선 동대문운동장역 승차장 도착! 시계를 보니 8시 40분! 10분 남았다! 그런데 지하철로 가야 할 시간도 10분이었다.


지각 확정!


스스로 원칙주의자인 것을 다짐하고 떠들고 다녔던 나는 지각을 하게 된 것이다. 창피한 마음이 밀려왔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4호선을 타고 길음역에서 내려 뛰었다. 지각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미친 듯이 뛰지는 않았다. 3분 지각을 했다. 나는 자리에 짐을 놓고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기도했다. 사람들 기억 속에 내가 지각한 것을 지워주시길 기도했다. 화장실을 나오자 커피를 사들고 온 직원들 틈에 껴서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출근 시간 1시간 동안 얼마나 초! 초! 집중을 했는지 신기하게도 내 몸에 에너지가 넘쳤다! 집중하는 것이 삶에 에너지를 넘치게 하는 비밀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울대학교 황농문 교수님이 주장하는 뇌는 몰입을 좋아하는 말을 사실이었다. 전날 기운이 너무 없어서 에너지가 넘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전에 힘이 펄펄 넘쳤다. 몰입의 힘인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이 고요하고 오직 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이 나를 새롭게 하는 것 같다. 다만 불쌍한 내 체크카드는 구겨진 체 버려졌다.




지각은 했지만 바지에 실례를 안 하게 되고 몰입의 기적을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하루였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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