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Nov 02. 2023

잃어버린 헬멧을 찾다!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0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헬멧을 찾은 것이다. 오늘 3시 30분 정도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광나루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을버스 카드단말기에 태그를 하고 지갑을 가방에 넣은 후 고개를 들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내 앞에 거대한 황금색 털뭉치 같은 생명체가 걸어가고 있는데 머리통에 검은색 헬멧을 쓰고 있는 것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계생명체 같은 생물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헬멧에 낯익은 물체가 붙어있었다.


‘설마?’


나는 걸음을 빨리해서 황금색 털뭉치로 접근했다. 가까이 갈수록 헬멧이 정확히 보일 수록 가슴이 뛰었다.


‘내 헬멧이 맞다!’


더 다가가자 털뭉치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커다란 꼬리를 싸래 빗자루처럼 좌우로 흔들고 엘라스틴 샴푸를 한 것처럼 찰랑찰랑 거리는 황금색 털을 자랑하는 골든레트리버로 보였다.


‘아니? 왜??? 이 놈이 내 헬멧을 쓰고 있는 걸까?’


저절로 레트리버의 목줄을 잡고 옆에 걸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옮겨졌다.

20대인지 30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날씬한 여자였다. 오늘 날씨가 11월이 무색하게도  더웠고 햇빛이 강렬해서인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고 인디고 블루색 스키진을 입고 허리라인 맨살이 7cm 정도 보이는 검은색 배꼽티를 입고 있었다. 귀에는 핑크색 이어폰을 꽂고 미소를 머금은 채 앞을 보고 걸어가고 있었다. 신발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검정색 나이키 에어맥스 97을 신고 있었던 것 같다.


예뻤다. 내 헬멧 도둑을 발견했는데 기분이 좋은 게 이상하지만 예쁜 사람을 보니 마음이 온유해졌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검정색 디스플레이에 희미하게 비치는 얼굴을 보고 헤어스타일을 가다듬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 날씬한 여자 옆으로 조용히 다가가 어렸을 적 불주사를 맞았을 법한 위치에 노크를 했다.


여자는 깜짝 놀라 멈춰 서서 내 쪽을 돌아봤다. 그러자 내 헬멧을 쓰고 있던 골든 레트리버도 멈춰 서서

내쪽으로 거대한 대갈통을 회전시켰다. 예쁜 여자가 날 보자 나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내가 그녀를 보고 아무 말도 없이 보고만 있자 이어폰을 빼고 나에게 말했다.


”무슨…. 일 이세요? “


나는 이 때다 싶어 그 여자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잡았다! 이 요망한 도둑년! 감히 내 헬멧을 훔쳐가!”


내가 멱살을 잡자 여자는 깜짝 놀랐고 들고 있던 연핑크색 블루투스 이어폰이 바닥에 떨어지며 톡소리가 났다. 그리고 놓지 말아야 할 물건도 놓고 만 것이다. 그것은 골든레트리버의 목줄이었다. 겨울철 목에 둘른 목도리가 바닥에 떨어진 것처럼 툭하고 떨어진 목줄을 보자마자 골든레트리버가 0.5초 만에 우렁차게 짖었다.


“멍!”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순간 멱살을 잡고 있던 나와 멱살을 잡힌 여자가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그 자리에 멈춰 선 체 고개와 시선만 달려가는 녀석의 꽁무니를 따라갔다.


“안돼!!!!”


여자가 소리치며 내 팔을 뿌리쳤다. 멱살을 잡으며 새끼손가락이 여자의 쇄골에 닿았는 데 얼마나 부드럽던지 눈이 감기고 잠이 들지경이었지만 어금니를 깨물고 버티고 있었었다.


여자는 쏜살처럼 레트리버를 쫓았고 레트리버는 멀리서 고개를 한 번 돌려서 여자가 쫓아오는 걸 보더니 더욱 속도를 냈다. 그러다 쾅!


좌회전을 하는 요구르트 아줌마의 최신식 전동 이동장치 좌측을 강하게 들이받았다.


“깨갱~깨갱~”


개들의 특유에 아픔의 짖음이 거리에 울렸다. 얼마나 세게 부딪혔는지 요구르트 아줌마 카트가 사고 난 자동차 범퍼처럼 푹 들어갔다. 다행히 헬멧을 쓰고 손잡이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아줌마는 안전했다.


레트리버도 내 헬멧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바닥에 쓰러져있지만 크게 다치진 않은 것 같았다.

여자가 레트리버에게 달려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레트리버를 움켜 안았다.


”괜찮아? 라이언? “


나도 곧바로 사고 현장에 도착하자 둘은 파병 갔다가 돌아온 연인을 만난 것처럼 길바닥에 누워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짜증이 밀려왔다.


“내 헬멧 왜 훔쳐갔어요?”


그제야 여자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체 나를 올려다보고 말했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떼며 말을 했다.


“죄송해요….. 우리 라이언이….. 어쩔 수 없이….. 죄송합니다…..”


사건은 이랬다. 토요일 저녁 여자가 라이언과 산책을 했는데 광나루역을 지나가던 라이언이 내 자전거 앞에 멈춰 선 것이다. 여자가 무슨 일인가 싶어 라이언에 말했다.


“라이언? 왜?? 무슨 일이야? “


라이언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내 자전거 앞에 있는 헬멧을 쪽으로 가까이 갔더란다. 그리고는 커다란 몸뚱이를 세워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놓은 내 헬멧을 물어서 꺼내 땅바닥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라이언은 떨어진 헬멧에 머리를 비비며 낑낑거렸다고 한다.


”저 혹시 무슨 샴푸 쓰세요? “


여자가 나에게 물었다.


”저요?? 저 샴푸 안 쓰는데요. 오이비누 쓰는데요? “


”아….! 그래서 …. 그랬구나…. “


여자의 눈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사건의 발단은 라이언은 여자의 남자친구가 키웠던 강아지로 남자친구가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바람에 둘은 헤어지게 되었고 이별선물로 라이언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친구라는 작자가 샴푸를 안 쓰고 오이비누로 머리를 감았다고 한다.


나도 오이비누로 머리를 감으니 내 머리향이 자전거 헬멧에 베었던 거고 라이언이 내 헬멧에서 전 주인의 향기를 맡아서 그랬던 것이었다. 참으로 요상한 일이지만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랬군요. 하….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요…. “


”죄송합니다….. 제가 배상하겠습니다. 원래 돈을 드리고 샀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지금이라도 헬멧비용은 지불해드리고 싶습니다….. “


”헬멧 비용은 됐고요. 음…. 남자친구 있으세요? “


“네….?”


“나중에 차 한잔 마셔요. 헬멧 뒤에 붙어있는 러버덕 그립톡 뒤쪽에 제 핸드폰 번호 적혀있거든요. 그쪽으로 전화 주세요. 저는 바빠서 이만!”


나는 쿨하게 말하고 지하철로 슝하고 달려 들어갔다.


‘예스!!!!!!’


나는 예쁜 여자와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슈퍼데이트권이 생긴 것에 대해 쾌재를 외쳤다. 차가운 샤인머스켓 3알을 깨물어 먹은 것처럼 새콤 달콤 상콤 계단을 퐁당 퐁당 뛰어 내려갔다.



헬멧 컴백 1부 끝.


잘 읽으셨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오늘 잃어버렸던 헬멧을 찾은 건 사실이지만 이 글을 상상 속의 이야기입니다. 재밌게 읽으셨는지 모르겠네요. 내일은 헬멧을 어떻게 찾았는지 픽션이 아닌 팩트로 알려드리겠습니다. Good 밤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헬멧 도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