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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리우스 Dec 20. 2023

고구마

전직공무원 크리에이터 스몰토크 19

고구마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고구마 중에서 구운 호박고구마의 달콤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밤 고구마는 퍽퍽해서 싫지만 꿀단지에 몸을 한 번 담갔다 나온 것처럼 촉촉하고 달달한 호박고구마는 언제 먹어도 좋다. 


고구마로 만든 맛탕도 좋아하는데 엄마는 맛탕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 우리 집에서 맛탕을 먹어보지 못했다. 뷔페에 가면 고구마를 으깨서 만든 고구마 샐러드를 꼭 먹는다. 그러고 보니 요즘 대유행을 타고 있는 탕후루가 과일에 꿀을 입힌 거니까 맛탕이 탕후루의 원조격인 거 같다. 


고구마를 구워 먹는데 최근에 생고구마를 먹은 적이 있었다.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1cm 정도 두께로 자른 고구마 조각들이 조그마한 그릇에 담겨있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2시간 뒤에 한입 깨물었는데 맛이 예술이었다. 밀도 있고 단단한 생고구마를 깨물어서 씹으니 떫은맛과 함께 달짝지근하고 고소한 맛이 은은하게 밀려왔다. 겉은 수분이 증발하여 말랐지만 속은 여전히 고구마즙을 듬뿍 머금고 있었다. 군고구마만을 고집했는데 생고구마가 그렇게 맛있는지 왜 몰랐을까?


춘천에서 대학을 다녔던 나는 강원도 토박이 친구들이 많았다. 언젠가 친한 후배 여자애한테 장난 삼아 물어봤다.


"너 감자 좋아하지?"

"네, 오빠, 저 감자 좋아해요. 찐 감자, 구운 감자, 삶은 감자, 감자튀김, 감자는 다 좋아해요!"

"역시, 푸하하하하"


순박한 강원도 사람들은 감자를 좋아한다고 약 올리는지도 모르고 감자예찬론자가 되어 좋아하는 감자요리들을 줄줄이 말했던 후배였다. 그때 강원도 사람들은 고구마도 좋아하는지 물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아마도 좋아할 것이다. 왠지 그럴 것 같다. 춘천 얘기를 잠깐 하면 춘천은 뭐니 뭐니 해도 닭갈비가 유명한데 닭갈비에도 꼭 고구마가 들어간다. 닭갈비는 고기가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기가 어렵다. 그때 고구마가 익었으면 닭갈비도 익었다는 신호로 생각하고 먹어도 된다. 매콤 달콤한 닭갈비 소스에 버무려진 고구마도 역시 맛있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길을 가다가 버스정류장 옆에서 군고구마 파는 남자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가 내 방에 있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나는 군고구마 파는 놈과 맞짱을 뜨러 간다며 뛰쳐나갔고 친구들도 깜짝 놀라 나를 따라 달렸다. 나는 곧장 군고구마 장수에게 달려갔다. 달려가서 군고구마 장수를  가까이서 보니 30대 정도 돼 보이는 덩치가 있는 순박한 아저씨였다. 우선 싸움을 할 만한 분위기도 전-혀 아니었다. 아저씨는 갑자기 자기에게 달려온 나를 보자 놀란 눈빛이었다. 나도 당황하여 생각나는 말을 내뱉었다.


"군고구마 500원어치만 주세요."

"500원어치요? 에이, 군고구마 500원어치 못 팔지요."


아저씨는 황당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며 500원어치는 안 판다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인사를 하고 왔다. 친구들도 어이가 없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갔다. 참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철도 없고 생각도 없던 시절 같다. 


 


감자와 고구마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고구마를 고를 것이다. 좋아하는 건 매일 먹고 싶어 하는 INFP 성격 탓에 2년 가까이 하루에 고구마를 2-4개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감자가 먹고 싶어졌다. 감자에 꿀을 묻혀 먹으면 곧바로 달콤한 감자, 스위트 포테이토 고구마로 둔갑하는데, 감자는 주로 쪄서 먹기 때문에 만들어먹기가 불편해서인지 잘 안 먹게 된다. 고구마는 깨끗이 씻어서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맞춰서 구우면 그만이니까 신경 쓸 일이 적다.  


고구마와 짝꿍은 누가 뭐래도 동치미라고 한다. 고구마를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발효되어 배에 가스가 찰 수 있는데, 동치미 무 속의 디아스타제가 소화를 도와준다고 한다. 나는 차갑고 신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동치미를 좋아하지 않는다. 


뜨겁고 달달한 고구마와 차갑고 시원한 동치미가 소화의 균형을 맞춰준다고 하니 역시 뭐든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건 좋지 않은 것 같다. 극우, 극좌, 편식, 편견, 편두통처럼 말이다. 편식하지 않고 균형 있는 식사가 균형 있는 생각, 감정, 관계, 생활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먹는 태도는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아주 닮아있다.  


고구마는 일본에서 왔다고 한다. 영조 때 일본 통신사로 갔던 조엄이 고구마를 보고 구황식량으로 만들 생각으로 대마도에서 가져와서 우리나라 전역에 확산되었다고 한다.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한적 도 있나 보다. 


오늘도 고구마를 먹었다. 절묘하게 구워진 고구마 표면은 찐덕찐덕한 고구마 꿀이 소나무 진액처럼 바삭한 표면 밖으로 흘러나왔다. 껍질은 마르고 얇지만 불에 가까웠던 불룩한 부분들은 까맣게 탔다. 탄 부분을 더 세심하게 살살 걷어내면 똥 잘 만한 고구마가 껍질 깐 바나나 흉내를 내며 손안에 잡혀 있다. 단단했던 고구마는 바나나보다 더 부드럽게 변해서 한 입 베어 물면 애플로고처럼 배어문 자리가 텅 비어있다. 그만큼 볼록해진 입안에서 폭죽처럼 침샘이 터지고 엔돌핀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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