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내 이름은 야옹이 1화

학폭 전성시대 : 그 놈

by 태리우스

내 이름은 양웅이다. 성은 양, 이름은 웅, 모두들 나를 야옹이라고 놀렸다. 싸움 잘하는 애들부터 지질한 애들까지 나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였다. 나를 악랄하고 잔인하게 괴롭히던 놈이 있었다. 그 악연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놈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반찬을 빼앗아 먹고 양념이 뭍은 손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을 제발 그놈이 알기를 바랐다. 아! 나는 고양이니까 밥 먹을 때는 고양이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맞겠다. 맨 손가락으로 도시락을 갈취해 처먹은 뒤에 내 새하얀 교복 와이셔츠에 손가락을 비벼 닦았다. 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만 숙일뿐. 화장실로 달려가 와이셔츠에 물과 비누를 묻혀 비볐지만 김치 국물 같은 것은 깨끗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가면 엄마의 잔소리를 매번 들어야 했다. 밥 좀 얌전하게 먹으라고.


그놈이 기분 나쁜 날은 도시락을 먹고 있는 나에게 소리쳤다.

"고양이 새끼가 어디 인간처럼 처먹으려고 그래? 미친 고양이 아냐?"


내 도시락을 교실 바닥에 내팽개쳤다. 고개를 떨군 나의 시선에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그놈의 주먹이 보였다. 굵고 투박하고 거대한 그놈 주먹과 어린아이처럼 조그마하고 빈약한 나의 손을 보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졌다. 무력감과 두려움이 나를 쪼그라들게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바닥으로 내려가 양반다리를 하고 도시락을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놈은 나의 머리를 다시 세게 후려치며 경고했다.


"고양이 새끼가 사람처럼 양반다리를 하네? 제대로 안 하냐? 이 고양이 새끼야!"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고개를 들어 그놈을 쳐다봤다. 놈은 지렁이보다 못한 존재로 여기는 경멸의 눈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지만 그러지도 못하니 지렁이보다 못한 게 맞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도대체 뭘 잘 못했길래 나에게 이러는 걸까. 약하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을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건가? 그놈은 인간이 아니던가? 아니면 내가 인간이 아닌 건가? 아니면 둘 다 인간이 아닌 건가.


나는 무릎을 꿇고 고양이처럼 도시락을 먹었다. 웅성웅성 낄낄거리는 비웃음소리가 고막을 지나 무수한 유리조각이 되어 날카롭게 박혔다. 수치심, 억울함, 두려움, 무력감으로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나는 어떤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비참하고 비굴했다. 그렇게 중학시절을 보냈다. 지렁이보다 못한 고양이로.


그놈은 나를 2종류의 고양이로 번갈아가며 대했다. 기분 좋은 때는 애완묘, 짜증 날 때는 스트레스 해소용 길양이로. '야옹아' 부르면 페르시안 암컷 고양이처럼 빠르면서도 우아하게 다가가 '야옹~야옹~'하면 몸을 비벼야 했다. 비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안 하면 맞으니까.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고등학교에서는 그놈을 만나지 않기를. 제발. 하지만 내가 멍청했다.


우리 동네 중학생 90퍼센트는 중학교 바로 옆에 붙어있는 같은 이름의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았다.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집도 가까운 놈과 같은 고등학교에 갈 확률은 99퍼센트였다. 공부도 못했던 나는 뺑뺑이를 돌아 결국 그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간곡하게 같은 반 만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개학 첫날 식은땀을 흘리며 교실문을 열었다. 재빠르게 공간을 스캔했다. 그런데 교실 뒷자리에는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어떤 놈이 다리를 책상에 올린 채 휘파람을 불며 만화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새끼다.... 그 새끼다....! 안돼....!'


놈을 보자 다리 힘이 풀려 서있을 수가 없었다. 들고 있던 도시락가방을 힘 없이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교실문턱에서 쓰러진 나를 보고 여기저기 우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먹잇감의 움직임을 감지한 맹수의 눈동자는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마지 자석처럼 놈의 눈과 마주쳤다. 놈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밝게 웃으며를 외쳤다.


“야옹아!"


나는 반사적으로 뮤지컬 캣츠의 배우들처럼 요염한 고양이 포즈를 취했다. 나의 순종적인 행동을 보자 놈의 입꼬리가 사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야옹아! 일로와! 쭈쭈쭈"


교실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모두 나와 놈을 쳐다봤다. 처음 보는 같은 반 아이들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창피하고 비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페르시안 암컷 고양이가 되어 살며시 사뿐사뿐 걸어 얌전하게 '야옹'소리를 내면서 놈에게 갔다. 점점 고양이 연기가 무르익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이러다 정말 뮤지컬 캣츠의 주연배우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상황판단이 된 같은 반 아이들의 키득키득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눈을 마주치진 않았지만 화살촉에 독을 묻힌 화살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안도의 평온함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자기들을 대신해 누군가 희생양이 된 것에 대한 안도감이었다. 앞자리에 포진해 있는 약한 초식동물처럼 생존을 걱정했던 비실비실한 녀석들의 깊은 안도의 심호흡 소리가 들렸다. 중학교 때 봤던 애들도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그 애들이 짝꿍에게 뭐라 뭐라 속삭이더니 걔들도 나를 보고 희죽거리며 비웃었다. 제물이 되어준 나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나를 조롱하다니 배은망덕한 놈들이 따로 없다.


나는 개학 첫날부터 진정으로 완벽한 찐따가 돼버렸다. 멍청하게 장밋빛 고교시절을 꿈꿨던 나의 어리석은 꿈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 놈의 야옹이로 1년을 더 보내야 한다니 제발 이게 꿈이길 바랐지만 악몽 같은 현실이었다. 놈에게 야옹 짓을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그놈 패거리들이 나를 갖고 놀았다. 가볍게 뺨을 때리거나 엉덩이를 걷어차이거나 바지가 벗긴 체 팬티만 입고 고양이 흉내를 내야 했다. 하지만 놈이 나를 때리는 것처럼 때리지는 못했다. 놈은 정말로 고양이 주인 행세를 했다.


놈에게 가고 있는데 누군가 내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놈이 내 앞에 있는데 나를 때렸다. 주인이 앞에 있는데 말이다. 나는 요상한 용기가 생겨 앙칼지게 돌아봤다. 처음 보는 놈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놈이 욕을 지껄였다.


“이 새끼가 어디서 꼴아 봐? 병신새끼야! 죽고 싶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잡고 내 얼굴에 주먹을 갈겼다. 갑작스러운 주먹질에 얼굴을 움켜 쥐고 몸을 웅크린 나를 놈은 축구공 마냥 힘껏 걷어찼다. 주먹과 발차기가 빨라 보지도 못했다. 욕하는 건 들었는데 갑자기 내 목이 휙 돌아갔고 얼굴이 욱신거렸다. 그리고 한번 더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퍽 소리와 함께 배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호흡이 힘들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결국 교실 바닥에 쓰러져서 생선 가시를 삼킨 고양이처럼 컥컥거렸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쓰러진 나를 발로 밟으려고 하는 순간 뒷자리에서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그만~우리 야옹이한테 너무 그러지 마. 야옹이 아파?”


나는 고개를 돌려 주인을 간절히 바라봤다. 놈은 인자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야옹아? 괜찮아? 대답을 해야지.”


나는 '야옹'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놈에게 보여줘야 하는 미소와 고통이 섞인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때린 놈이 걸걸한 목젖을 흔들며 씩씩 거렸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나를 야리잖아?! 뒈지려고!”


분을 못 참고 교실을 두리번거리며 쌍욕을 퍼부었다. 나를 때린 놈은 내 주인의 시시껄렁한 모임의 멤버였다. 분명 내가 시범케이스가 된 것이었다. 반아이들에게 싸움을 잘하고 성격이 더러우니 알아서들 기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하기 위해 내가 희생양이 된 것이다. 아니 희생고양이지.


“우리 야옹이 자리로 가야지~? 어서!"


두껍고 거대한 팔을 치켜올려 나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놈이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놈은 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더니 나를 앞자리로 가라고 손짓했다.

“야옹~ 콜록~ 야옹~ 콜록"


나는 기침 소리를 내며 맨 앞자리로 가 앉았다. 놈이 부를 때와 마찬가지로 자리로 갈 때도 고양이처럼 다녀야 했다. 나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언제나 맨 앞자리였다. 자리로 돌아가보니 내 옆에는 어떤 애가 자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