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내 이름은 야옹이 5화

학폭전성시대 : 전설의 문어발

by 태리우스

학교 앞에 도착해서 교문 쪽을 바라보니 웅이가 땀을 흘리면서 내려오고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웅이가 학기 초 보다 키도 커진 것 같았다. 팔을 흔들어 인사를 했다. 늦은 시간까지 얼마나 운동을 했으면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땀에 찌든 웅이에게서는 신김치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신기하게 가로등에 아래에서 웅이 얼굴과 팔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웅아! 너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진짜? 오! 기분 좋아"


웅이가 얼굴을 비비니까 번쩍번쩍 빛나는 미세한 유리조각 가루들이 떨어졌다.


"엥? 진짜 얼굴에 뭘 발랐던 거야?"

"하하하! 아니! 이거 땀이야!"

"땀???!!"

"땀을 흘리고 마르고 또 땀을 흘리고 마르기를 반복하면 땀 속에 있던 염분이 소금결정 가루가 돼서 피부표면에 남아있게돼. 바로 내가 진짜 미친 듯이 훈련을 했다는 징표란 말이다! 하하하!"

"우와....."


나는 한 번도 저렇게 땀을 흘려본 적이 없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면서 친구가 멋져 보였다. 우린 함께 떡볶이 집에 들어갔는데 웅이가 떡볶이를 1인분만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떡볶이 안 먹어. 닭가슴살 먹어야 돼! 너 떡볶이 좋아한다고 했잖아. 너 먹으라고.”


예전에 서로 좋아하는 음식 얘기를 했었는데, 나는 떡볶이, 웅이는 치킨을 이야기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매콤한 떡볶이를 먹는데 웅이는 무슨 심각한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웅아, 너 무슨 고민 있어?"

“아.... 웅아, 잠깐 시간 되면 우리 집에 들렀다 갈래?”

“지금 몇 시지? 10시가 다 돼 가는데?”

“잠깐이면 돼!”

“그래? 그런데 이 밤에 왜?”

“아니 잠깐 궁금한 게 있어서! 이 근처야”


웅이 집은 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웅이와 웅이 아버지, 웅이 아버지의 아버지인 교장선생님이 함께 살고 있었다. 집은 저택같이 컸다. 운동선수 집안도 재력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은은한 광택이 나는 아이보리색의 대리석 바닥이 천장의 샹들리에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드라마에서 나온 부잣집 같은 거대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너네 집 진짜 진짜 좋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희미한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퍽! 퍽!'


내가 잘 아는 소리다. 이 소리는 누군가를 두들겨 팰 때 나는 소리다. 내 몸이 기억하는 소리.


"웅아.... 이게 무슨 소리야...."


나에게 언제나 상냥하고 밝은 웅이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한여름밤 서리가 내린 것처럼 싸늘한 기운이 집안에 내려앉았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상상하는 두려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웅아. 따라와."


웅이가 보여 줄 게 있다면서 지하실로 나를 따라오라고 했다.


'지금 따라가면 끝장이다. 난 죽을 수도 있어. 지금 일진들이 지하실에 있고 찐따들을 모아서 집단폭행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해!'


내가 자리에 서서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는데 앞장서던 웅이가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왜 안 따라와? 거기 있으면 진짜 죽어. 내 옆에 있어야 살 수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웅아..... 넌 좋은 애잖아...."


"아무 말하지 말고 따라와....."


무표정한 얼굴로 웅이가 뚜벅뚜벅 지하실로 내려갔다. 갑자기 현관 쪽에서 덜컥하는 소리가 들려 기겁을 하고 웅이를 따라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은 어둡고 좁고 깊었다. 내려갈수록. 폭행의 소리는 거세게 들렸다.


'퍽, 퍽!'


이따금 성인 남자의 비명 소리와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으악! 악! 억!'


나는 두려움에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온몸의 세포는 나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었다. 지하실로 내려갈 수 도 없고 도망쳐서 현관으로 나갈 수 도 없는 상황이 사냥꾼의 그물에 걸린 먹잇감이 된 것 같았다. 지하실 끝으로 가니 검은 철재 문이 보였다. 저 문이 저승으로 가는 문이구나. 나는 이제 죽었다.


'으악! 살려주세요! 억! 퍽! 퍽!'


검은 문 뒤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와 두들겨 맞는 소리 때문에 결국 나는 의식을 잃을 것 만 같았다. 웅이가 검은 문을 열자 환한 빛이 레이저 광선처럼 쏟아져 나왔다. 눈이 부셔 곧바로 보지 못했다. 서서히 눈을 떠보니 눈앞에는 거대한 체육관이 있었다. 그곳에서 낯익은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낯익은 저 얼굴....? 교장 선생님???"


교장선생님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어떤 남자와 유도를 하고 있었다. 웅이 아버지 같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웅이가 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두 사람이 우리 쪽을 쳐다보며 밝게 웃었다. 교장선생님이 나를 보자 저절로 몸을 숙여져 인사를 했다. 새파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린 내 모습을 보고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내 친구 웅이야!"


새파랗게 질린 채 식은땀을 흘린 내 모습을 보고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웅이군. 무슨 일 있어? 얼굴이 말이 아니네."

"내가 지하실 내려오는데 장난 좀 쳤지. 하하하"


웅이가 개구쟁이처럼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지하실은 지하체육관이었다. 전체 100평 정도 됐는데, 중앙에 파란색 매트 구역이 있고 주위로 붉은 갈색의 트랙이 둘러싸고 있었다. 좌우에는 여러 종류의 트레이닝 기구들이 있었다. 헬스장보다 훨씬 비싸 보이는 기구들이 가득했다. 심플하고 밝은 조명이 체육관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일본 검인지 한국 검인지 여러 자루의 검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는 야생동물의 으르렁대는 대형사진들이 많이 붙어있었다. 사자가 주둥이를 벌리며 죽일 듯 노려보는 사진, 투견 같은 개가 침을 흘리며 짖는 사진, 호랑이가 사냥감을 뜯어먹는 사진, 동물의 왕국에서 잔인한 장면만 모아놓아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살인 병기를 훈련시키는 비밀 부대 같았다. 침을 꿀꺽 삼키는데 웅이 아버지가 나를 보며 말했다.


“네가 우리 웅이랑 이름이 똑같은 웅이구나! 웅이랑 같은 반 짝꿍! 얘기 많이 들었다.!”

“웅이가 너 때문에 학교생활이 재밌다고 여러 번 얘기했단다.!”


교장선생님은 나를 아시는 듯 웃으면서 바라보고 계셨다.

웅이가 약간 흥분되는 말투로 말했다.


“아빠, 웅이가 그런데 말이야.... 웅이가 정말....”


웅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웅이 아버지는 궁금한 듯 웅이를 재촉했다.


“아빠, 웅이가 그 전설의 문어발 같아!!”


문어발이란 말에 웅이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뭐....? 문어발"

“정말이냐…..” 교장선생님이 말했다.

“정말이야. 내가 봤어. 확인도 했고?!”


문어발?? 뭔 소리야 싶었다. 코미디도 아니고.


“무슨 소리야 웅아…. 문어발이라니? 장난치지 마 “


웅이도 나를 약 올리는 것 같아서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나는 실망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찐따 중의 찐따다. 찐따 오브 찐따. 킹찐따. 친구라고 생각한 웅이에게도 자신은 찐따라는 생각에 슬펐다. 나는 왜 찐따일까. 교장선생님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내 발을 잡고 오른쪽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발바닥을 손으로 문지르면서 내 발을 마구잡이로 만져 댔다. 나는 발바닥이 너무 간지러워서 뒤로 발라당 넘어져 깔깔 거리며 계속해서 소리쳤다.


"제발! 그만하세요!"


교장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오른쪽 발을 세차게 문지르고 비볐다. 나는 간지러움에 배가 아파 눈물이 났다. 웅이 아버지도 내 왼쪽 발의 양말을 벗기더니 동일한 행동을 했다. 나는 양쪽 발바닥을 간지럽힘 당하는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나는 자지러졌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괴롭힘을 많이 당해도 누군가 내 발바닥을 손가락을 긁고 문지르며 간지럽힌 적은 없었다. 그러기를 몇 분 뒤에 두 사람은 멈췄다. 멈춘 후 서로를 바라보더니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발바닥의 간지러움이 계속 느껴지는 것 같아 눈물을 흘리며 헉헉 댔다. 예전에 발바닥에 모기가 물려서 난감한 적이 있었다. 아까는 발바닥에 모기를 오백 번 정도 물린 것 같은 가려움이었다.


“자네, 한번 똑바로 서보게.”


진지하게 말하는 교장선생님 앞에 나는 긴장이 돼서 진지하게 매트 위에 섰다.


“그리고 발에 온 힘을 줘보게”


나는 내 발을 오므려 문어발의 빨판처럼 확실하게 압착했다.


“정확하게 압착했나?”

“네….”


교장선생님과 웅이아버지는 나를 이리저리 밀어보았다. 약하게 밀었다가 세게 밀어보았다. 나는 학교에서처럼 오뚝이가 되어 발이 고정된 상태에서 전후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세 사람은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마치 서커스 단원이 된 것 같았다.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내가 특이란 기술이 생긴 것 같아 좋았다. 나중에 취직 못하면 서커스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웅이 아버지가 갑자기 내 팔을 잡고 업어치기 자세로 들어왔다. 나는 눈을 꽉 감으며 발에 있는 힘껏 힘을 줬다.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바닥에 정확히 부착된 발바닥으로 인해 팔이 주욱 당겨지면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최도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가공한 힘이 느껴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한 찰나!


'펑!!!!!!'


대포소리가 체육관에 가득 울렸다. 압착되었던 발바닥과 매트사이의 고압이 터지면서 내가 로켓처럼 날아가는 것을 웅이아버지가 내 몸통을 붙잡고 멈추었지만 워낙 강력한 압력으로 튀어올라 나와 웅이아버지는 팽이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으아악!"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몇 바퀴를 구르고 퍽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히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발발바닥이 너무 뜨거웠다. 화학 시간에 배웠다. 압력과 온도는 비례한다는 보일 샤를 법칙이 떠올랐다. 바닥에 쓰러져있는데 웅이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이 몸을 떨며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웅이는 옆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왜……그러세요..?”


웅이 아버지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감동의 눈빛이었다. 웅이가 천천히 말을 했다.


“웅아! 옛날 일본에 전설의 유도왕이 살았었는데, 그 사람만이 유도 10단의 명예를 갖고 있었어."


교장선생님이 웅이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일본에서 유도유학을 했을 때였어. 그분은 내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었다. 에도시대에 살았던 전설의 유도왕 다케시마 슈스케. 일명 문어발 유도왕. 그의 발은 문어발의 빨판처럼 강력한 압착력이 있었지. 어느 누구도 그를 넘어뜨리거나 업어 칠 수 없었어. 절대로! 유도는 상대의 힘을 상대적으로 이용해 균형을 무너뜨려 승리하는 무술이다. 균형이 완벽한 상대에게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다. 업어치기를 하는 순간 상대가 넘어가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한 순간이 돼. 가볍게 위에서 누르거나 조르기를 해도 바로 한판승이지. 유도의 모든 기술이 안 통한다는 말이야. 마치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를 계속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과 같아. 결국에는 상대가 지쳐서 쓰러지지. 다만. 한 가지 취약점은 태클에 취약하다는 점이 있지만 그것도 문어발인간에게는 약간의 훈련만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어. 한마디로 문어발 유도선수는 무적이라는 뜻이다. “


교장선생님은 계속 말을 이었다.


“다케시마 슈스케 10단은 생애동안 공식 시합에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런데 지금 자네는 그 전설의 유도왕과 같은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거야. 웅이군 다케시마 슈스케 이후로 500년 만에 처음일세. 문어발 인간!”


웅이는 혼란스러웠다. 전설의 유도왕, 다케시마 슈스케…. 문어발 인간…. 그러고 보니 자신의 발바닥힘이 조금 특이했던 것 같다. 거실을 걸어 다닐 때는 뽁~ 뽁~하는 찰진 소리가 났다. 바닥을 압착하는 기분이 좋았다. 욕실을 가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미끄럽지 않았다. 솔직히 자기 발바닥을 손바닥처럼 오므릴 수 있어서 스스로를 귀엽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전설의 유도왕 운운하는 얘기를 들으니 도무지 실감이 안 났다.


“아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500년 만에 다시 나타난 전설의 문어발 인간이라는 말이야! 하하하!"


교장선생님이 큰소리로 웃었다.


"유도로 전 세계를 무릎 꿇게 해야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도 따고! 하하하”


웅이 아버지, 교장 선생님, 웅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전 세계를 무릎 꿇게 한다…? 전설의 유도왕? 올림픽? 금메달? 내 삶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와 문장들이었다. 순간 가슴에 뜨거운 불꽃같은데 튀겼다. 나는 찐따였다. 나는 애완묘였다. 나는 찌질이의 대명사였다. 나는 비웃음거리였다. 그런 내가 전 세계를 제패하는 유도왕이 될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한 번도 이런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놀림받고 무시받고 수없이 맞았다.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평범한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워했다. 하루라도 그렇게 평범하게 살 수 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애들은 그놈과 놈의 패거리에게 나를 먹잇감으로 던져 놓고는 자신들의 안락을 지켰다. 나는 동물원의 야수들에게 던져진 닭고기처럼 갈기갈기 찢기고 무기력하게 밟히는 존재였다. 나는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은 채 흐느껴 울었다. 수년동안 받아왔던 멸시와 무시,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며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병신처럼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니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못나서 그런 거라고. 벅차게 뜨거워지는 가슴과 눈물로 몸을 숙인 채 그렇게 한참을 꺼억 꺼억 소리를 내며 울었다. 웅이가 내 어깨를 감싸 앉아주었다. 그렇게 웅이 품에서 오랫동안 울었다.


나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일어서서 울먹이며 다시 물었다.


"제가 유도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다고요? 정말이요?"

"지금 우리가 장난한 거 같나? 자네는 500년 만에 태어난 전설의 문어발 인간이야. 유도왕이 될 운명으로 태어난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나이란 말이네!"


교장 선생님이 진지한 얼굴로 진심을 담아 거침없이 말했다. 나는 교장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가슴에 튀긴 불씨로 전 세계를 태워보기로 했다.


"저. 유도를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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