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전성시대 : 내가 전설의 유도왕이라고?
우리 학교는 체육고는 아니지만 유도특성화고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유도부가 있었다. 교장선생님도 아시안게임 유도 은메달리스트 체육교사 출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체육시간에 유도를 필수로 배워야 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3년 동안 유도 1단을 따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학교였다. 남녀 공학인 데다가 체육이나 무술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을 텐데 무조건 유도 1단을 따야 한다는 학교 규정에 신입생 학부모들이 매년 들고일어났다.
"영계 교장은 물러가라! 고3 체육수업이 웬 말이냐!"
요즘 같은 시대에 국영수 하기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학부모들이 항의를 했지만 정규 수업과정에 들어가는 체육시간의 수업내용은 교장의 권한과 재량이었다. 무엇보다 체육인 출신 교장의 고집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동안 체육시간은 철저하게 보장되었다. 절대로 다른 과목으로 대체될 수 없었다. 심지어 선배들은 수능 시험 전날에도 체육수업을 했다고 한다. 교복 맞출 때 아예 유도복을 패키지로 함께 팔았다. 포장 비닐도 뜯지 않은 유도복이 장롱에 처박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도수업이 있는 체육시간이었다.
원래 유도를 할 때 실내화를 신으면 안 되지만 우리 학교는 유도 전용 실내화를 신었다. 이유는 몇 명 학생들이 유도를 하다가 발가락이 다치거나 부러진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깜빡하고 실내화를 챙기지 못해 맨발로 가니 체육선생님께 한소리를 듣긴 했지만 다행히 잘 넘어갔다. 체육관 한쪽에서는 영웅이와 유도부가 훈련을 하고 있었고 반대쪽에서는 우리 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체육시간이 오전에 있을 때는 웅이에게 유도를 배웠다. 유도 국가대표 가문의 유도 천재답게 체육선생님보다 유도를 잘했다. 대부분의 동작의 시범을 웅이가 보여줬다. 최도철은 그런 웅이가 못마땅했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날도 최도철은 나를 연습인형 삼아 갖고 놀았다. 업어치기, 되치기, 조르기 등등 여러 기술을 맘껏 사용했다. 최근에 힘과 권력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인 놈이었지만 중학교짱은 짱이었다. 격투기 본능이 탑재된 종자인지 실력이 날마다 늘었다. 놈의 지푸라기 인형이 되어 맘껏 집어던져지다 보니 나만의 낙법 기술이 생길 정도였다.
놈은 맘먹고 나를 업어 치려고 내 깃을 움켜쥐었다. 몸을 숙이며 회전력을 이용해 힘껏 나를 업어 들어 올리려는 순간 맨발의 나는 놈에게 들리지 않으려고 발바닥으로 매트를 있는 힘껏 붙잡았다. 나도 놈도 온 힘을 다했다. 그 순간 놈이 잡아당긴 유도복 웃통만 내 몸에서 슉! 빠져나가며 벗겨졌다. 그 바람에 놈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앞으로 고꾸라져 굴렀다. 나는 땅바닥에 단단하게 심어 놓은 나무 마냥 매트 위에 굳건하게 붙어있었다. 내가 매트에 접착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력한 압축기로 매트를 압박하는 느낌이 들었다. 발가락에 힘을 뺐다.
'펑!'
축구공 터지는 소리가 나며 퓌식 타이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마치 뻥튀기 장수의 뻥이요 소리 같았다. 고속도로에 새겨진 급브레이크 자국처럼 체육관 메트에는 내 발모양 자국이 검고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누릿한 탄 내가 났다. 언뜻 발냄새 같지만 분명 바닥 매트 고무가 탄 냄새였다.
놈은 매트에 얼굴이 처박혀 뒹굴며 괴로워했다. 입술 위로 뜨거운 액체가 느껴졌다. 코에 손을 데어 보니 손가락에 새빨간 피가 흠뻑 묻어 나왔다. 피비린내가 콧속을 가득 채웠다. 코피를 쏟은 것이다. 주루룩 흐르는 코피 때문에 놈의 새하얀 유도복에 빨간 빗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불구덩이에서 폭발한 부탄가스 같은 놈은 분노의 눈길로 나를 쏘아보며 성난 황소처럼 달려왔다. 나는 이제 죽었다는 생각으로 두 눈을 질끈 감고 바닥에 엎드렸다.
"안돼!"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영웅이가 와 준 것이다. 영웅이가 나타나자 놈은 겁도 없이 영웅이에게 비키라고 했다. 두 콧구멍에 코피가 줄줄 흐르면서 놈이 말했다.
"비켜....! 이 고양이 새끼! 오늘 내가 죽여버릴 거야"
영웅이가 안 돼라는 표시로 팔을 엑스자로 표시하며 막았다. 놈이 웅이 팔을 탁 치려고 하는 순간 웅이는 또 예전처럼 순식간에 눈이 돌아가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라 놈의 팔에 올라탄 체로 십자꺾기를 했다. 놈은 곧바로 바닥에 쓰러져 비명소리를 지르며 텝을 쳐댔다.
"으악! 으악! 살려줘!!!!"
하지만 영웅이는 자기를 가격하면 눈이 돌아가는 애였다. 여럿이 웅이를 막으려고 달려들었지만 막무가내였다. 최도철은 비명을 지르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놈은 나에게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니가 야옹이라고 해봐! 으아아아아악!"
하지만 나는 하기 싫었다. 놈의 팔이 부러지는 꼴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웅이가 놈의 팔을 부러뜨리면 웅이도 징계를 받을 수 있으니 살며시 다가가 속삭였다.
'야옹~'
곧바로 바나나 우유처럼 순하고 부드러운 웅이로 돌아왔다. 놈은 팔이 부러진 것 같다며 울면서 매트 위를 데굴데굴 굴렀다. 놈의 코피는 행위예술을 하는 작가들의 작품처럼 체육관 메트를 휘갈기고 있었다. 체육선생님이 나타나서는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제가 십자꺾기를 가르쳐줬는데예. 이 놈이 꾀병이 심하당께요. 하하하”
웅이가 공손한 자세로 담임선생님께 말했다.
“웅아! 일반 학생들은 조심히 가르쳐줘야지…!"
애들을 시켜 최도철을 양호실로 보내주라고 했다. 최도철은 몇 명 애들의 부축을 받으며 울면서 양호실로 갔다.
'샘통이다!'
"고마워! 웅아!"
그런데 웅이가 내 발자국 표시가 남아있는 매트 쪽으로 나를 데려갔다. 약간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나에게 말했다. 이제 제법 서울 말투를 하는 웅이였다.
“이거.... 이 발자국.... 어떻게 한 거야??
“뭐?”
“그놈이 업어 치기 할 때 어떻게 꼿꼿하게 서 있었어??”
“아! 내가 발바닥에 힘을 꽉 주니까 되던데??”
“정말?? 한번 다시 해봐!”
내가 발바닥을 있는 힘껏 힘을 주니 순간적으로 바닥과 압축되었다. 그 상태에서 웅이가 나를 몇 번 흔들었다. 몸은 흔들리지만 다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웅이가 더 세게 나를 뒤로 밀었다. 나는 넘어질 것처럼 몸이 뒤로 갔다가 용수철처럼 앞으로 올라왔다. 나도 신기했다. 발이 매트에 완전히 압착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유리에 붙여 놓은 뽁뽁이 인형의 뽁뽁이처럼, 화장실 변기를 뚫는 뚫어뻥처럼 내 발의 압착력은 엄청났다. 한마디로 거대한 문어발의 빨판같이 압착력이 강력했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해 보니 나는 수영장, 목욕탕 같은 데서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었다. 웅이가 내 몸을 잡고 힘껏 들어 올렸다. 바닥매트가 인절미처럼 쭈욱 따라왔다. 내가 힘을 주고 있자 매트는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발에 힘을 풀자 나는 웅이에게 번쩍 들렸다. 웅이가 그런 나의 발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신기한 듯 관찰했다. 나는 발바닥이 간지러워 쓰러져서 그만하라고 키득거렸다. 웅이가 진지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웅아! 너 유도왕이 될 수 있겠어…”
“유도왕? 그게 무슨 소리야….”
그때 체육선생님의 호루라기가 불었다.
“자 모여!!!”
“웅아! 선생님 부른다. 내일 보자! 훈련 잘하고!”
웅이는 나를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손으로 인사를 했다. 교실로 돌아오니 최도철은 아직 양호실에서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놈이 없으니 교실은 평화로웠다. 괴롭히는 놈이 없으니 정말 천국 같았다. 평화로운 기분에 잠이 솔솔 왔다. 곧바로 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종소리에 잠이 깨보니 종례종소리가 울리고 애들이 책가방을 싸면서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으로 집에 가다니 꿈만 같았다. 집에 가는 길에 떡볶이를 사 갖고 가서 동생이랑 먹어야지 생각했다. 나는 매일 집에 가는 길에 놈의 떡볶이 값을 선결제해야 했다. 놈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면 먼저 떡볶이집에 튀어 가서 결재해 놓고 가라. 내가 가서 먹을 테니까. 알았냐? 야옹이 새끼야?”
매일 그놈을 위해 5천 원 선결재를 했다. 엄마에게 혼나면서 까지.
“너는 무슨 남자애가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니?”
웃으면서 엄마는 일주일치 떡볶이 값을 줬다. 내가 한 번도 안 먹어본 떡볶이…. 오늘 처음 먹어보는 학교 앞 떡볶이였다.
'엄마 미안해…. 엄마, 아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번돈으로 내가 맨날 이렇게 살았어…. 미안해….'
떡볶이를 챙겨서 받는데 손이 떨렸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놈과 마주칠까 봐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가서 동생과 함께 매콤한 떡볶이를 맛있게 먹었다. 그날따라 더 매워서 그런지 콧물을 훌쩍 데며 동생이랑 컴퓨터로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다.
"카톡!"
9시쯤 됐는데 갑자기 카톡 소리가 울렸다. 설마 하는 두려운 생각이 엄습하여 먹은 떡볶이가 얹힌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내려봤다. 다행히 카톡메시지 발신자는 웅이였다.
“웅아! 집에 갔지? 난 이제 훈련 끝났어!”
“응! 웅아! 늦게 끝났네.”
“혹시 지금 시간 돼? 같이 떡볶이 먹을래?” 웅이가 웬 일로 놀자고 했다.
“나 오늘 떡볶이 먹었는데?”
“그래? ㅋㅋㅋ 그래도 한번 더 먹을 수 있잖아! 내가 살게 학교 앞으로 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알겠어…15분 정도 걸려!”
내 평생에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맛있는 떡볶이를 동생과도 먹고 친구랑도 먹는 날이 있다니 문워크를 하듯이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