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리우스 Mar 09. 2024

노숙자 선생님들

금요예배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노숙자 같은 분이 캐리어를 끌고 쇼핑백들을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노숙자 선생님이 안쓰러워 보였다. 나는 집에 가면 따뜻한데, 엄동설한에 이분은 어디서 몸을 녹일까? 이 추운 밤 어디에서 잠을 잘까? 우리 동네는 주택가라서 노숙자분들이 별로 없는데 말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에 있는 초코바를 줄려고 하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갑을 열었더니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10장이 있었다. 천 원짜리 5장을 꺼내서 줄려다가 요즘 물가를 생각했다.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도 오천 원 이상이다. 만 원 한 장을 꺼내서 아저씨를 따라갔다. 누군가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몇 번 뒤를 돌아본 아저씨에게 말했다.


"저기요. 집이 있으세요?"

"네, 있을 곳 있어요."

"아. 집이 있으세요?"

"아니요. 없어요."

"이렇게 추운데 어떻게 해요?"
"어디든 가서 알아봐야죠."

"돈 좀 드릴까요?"

"괜찮아요."
"저녁이라도 드세요."


만원을 내밀었더니 고맙다며 받았다.


"만원밖에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따뜻한 데서 편하게 쉬시면 좋겠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럼 갈게요."


우리 교회가 바로 옆이라서 교회 소개도 하고 주일날 점심을 준다고 했다. 아저씨를 위해 기도해 준다고 하니 고개도 숙이고 함께 기도도 했다.


"하나님 아버지, 선생님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아저씨는 다시 캐리어를 끌고 어린이대공원 쪽으로 갔다. 지하철은 그나마 따뜻할 텐데,

집으로 오는데 너무 추워서 이마와 귀가 아팠다. 어쩌다 노숙자가 되었을까? 집도 없고 캐리어에 짐을 한 보따리 들고 다니는 노숙자분들이 지난겨울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구보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노숙자 분들이 아닐까?




대학교 4학년 겨울방학 취업을 앞두고 영국과 프랑스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가기 전에 외국에서 멋 지게 입을 옷을 사러 코엑스에 갔었는데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분이 있었다. 그분과 잠시 대화를 하다가 돈을 빌려 달라길래 함께 ATM에 가서 10만 원을 빌려줬다. 그리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코엑스에서 만나서 받기로 했는데, 귀국날 너무 피곤해서 코엑스를 가지 못했다. 다음날인가 그 주에 갔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는데 결국 그분을 못 만나고 돈도 못 받았다. 그때 걸인에게 10만 원을 빌려줄 수 있었던 건 성경말씀이 생각나서였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누가복음 6:38


그리고 그 주에 어떤 회사에서 면접비로 10만 원이나 받은 터였다. 그때 걸인이 그날 나를 하루종일 기다렸을 수도 있다. 벌써 15년이 넘게 지난 일인데, 그분은 뭘 하고 있을까?



 


성북구청에 다닐 때 성북천 자전거 도로로 출퇴근을 했었다. 성북천에 노숙자 한분이 있었는데 그분은 짐도 없고 혈혈단신이었다. 가까이 가면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아찔할 정도였다. 나는 몇 번 빵, 우유 같은 걸 챙겨서 드렸다. 아침에 출근하는 길에 벤치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갑에서 몇천 원을 꺼내 아저씨 품에 놓고 왔다. 그 아저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말을 걸면 내 눈도 못 마주치고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아저씨였다.


서울에는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장소들이 있다. 지하에 거대하게 빗물을 받아놓는 빗물저장소라던가, 성북천이 시작하는 동굴 같은 곳, 분수시설의 내부, 지하철 철로 내부, 지하철 밑에 엄청나게 많은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어마어마한 지하수들이 서울지하에 있다.
 

한성대입구역 성북천이 시작되는 지점은 동굴처럼 되어있다. 성북동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복개천을 따라와서 시작되고 청계천의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서 성북천을 흐르게 하는데, 동굴 같은 그 장소가 그렇게 무섭다. 어두컴컴한 터널 같은 곳에서 폭포 같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데, 납량특집이 따로 없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노숙자가 있었다.


그 지하폭포수 동굴에서 말이다. 그분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낮에는 다른 곳에 다니시는지 일과 중에 여러 번 갔을 때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거기에는 매트리스가 있었고 캐리어들이 있었다. 폭포 옆에서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장마철에는 얼마나 습하고 물소리가 시끄러울까. 그래도 그분은 거기가 집이었고 안식처였다. 언젠가 그분의 짐들을 모조리 구청에서 철거했다고 들었다. 그분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




대학시절 을지로입구 노숙자 분들에게 빵 나눔 봉사활동을 한 적 있다. 늦은 밤에 을지로 입구역에 가면 노숙자 분들이 백여 명 계셨다. 각자 자리를 잡고 잠을 잔다. 네모난 박스를 이글루처럼 잠을 잔다. 어떤 분은 여자 노숙자와 함께 잠을 잔다. 무슨 사연으로 거리에 나왔는지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플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노숙자 분들을 보면 도시락을 사주거나 지갑에 있는 얼마를 줄 뿐이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바라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더 나누어주고 노숙자분들이 자립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두운 곳에 있는 모두에게 빛나는 빛이 비추이길 기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백화점상품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