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차 연애
똥차연애라는 말이 있다. 나쁜 남자들을 똥차라고 부른다. 로맨틱하고 스위트하고 훌륭한 훈남인 줄 알았는데, 구린냄새 풀풀 나며 똥차처럼 지저분한 남자들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똥차는 어디에 나타나는가? 똥이 있는 곳에 나타난다. 과거 남자친구들이 똥차들이었다면 내가 똥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심플하다. 똥차는 똥이 있는 곳에 등장하지 꽃밭이나 공원에 등장하지 않는다. 똥이 가득 차 있는 정화조가 있는 장소라면 어김없이 똥차가 등장한다.
똥은 배출하는 거다. 남자는 똥과 함께 무엇을 배출하는가? 정액을 배출한다. 똥차 같은 남자들이 연인에게 똥을 쏟아내진 않았겠지만 정액을 쏟았을 경우는 다분히 많다. 무슨 말이냐면 상대를 성적욕구의 도구로 본다는 말이다. 남자가 결혼도 안 했는데 성관계를 요구한다면, 즉 정액을 배출하길 원한다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이 남자가 똥차일 수 있다고.
남자는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과 결혼 전에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 아느냐고? 자기 딸이 결혼 전에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허락할 아버지가 있을까? 아빠만큼 딸을 사랑하는 존재는 없다. 이렇듯 남자는 상대가 정말 소중하다면 성관계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하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여자를 지켜주고 보호하고 원하는 것을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한다. 참된 사랑과 남자다움은 그렇게 나타난다.
남자가 성관계를 요구하는데 순순히 응하거나 즐기면서 자기 주위에는 똥차들이 많다고 불평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다. 똥차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 그 여자는 아마도 매력적이고 섹시한 여성일 가능성이 크다. 정액을 배출하기 위해 상대를 찾는 똥차들은 성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대방을 찾기 때문이다. 자신의 패션이나 메이크업 콘셉트가 섹시라면 스스로 똥차들을 불러드리고 있다는 사실정도는 인지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내 행동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성숙한 사람이다. 성적 매력이 있는지는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꽃이 피면 꽃에 벌과 나비가 꼬이듯 꽃은 다 안다. 똥차가 많다면 성적 매력을 숨길 줄 아는 것도 지혜라고 생각한다. 숨겨둔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멋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땅바닥에 뿌리가 박혀 하루종일 도도하고 고고하게 서있어야 하는 외로운 꽃에게 나비와 벌이 날아주는 걸 마다할 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끊임없이 날아드는 똥파리들을 막기 위해서는 바리케이드가 필요하다. 고귀한 미술작품일수록 관람객의 접근을 막기 위한 복잡한 차단막이 필요한 것처럼. 차단장치 없이 똥파리들 때문에 꽃잎에 똥이 묻었다고 성낸 들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연애는 결혼이 아니다. 연애에서 가능한 영역이 있고 결혼에서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성관계는 연애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결혼을 할 만한 상대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테스트가 될 수 있다. 사랑이라는 핑계로 관계를 요구 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결혼 전 남녀의 사랑은 성관계를 함으로써 증명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음으로써 증명된다.
성관계를 통해 상대를 좋아하는 건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마치 고양이가 쥐를 좋아하는 것처럼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자들도 똥차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여자들도 성적인 욕구를 배출하기 위해 상대를 찾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똥차끼리 만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심각한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 똥차끼리 충돌하면 똥과 함께 폭발하게 된다.
근사한 옷차림, 탄탄한 몸매, 사회적 매너, 아름다운 메이크업, 훈련된 페르소나로 포장된 똥, 마치 비단으로 싼 똥을 상상해 보자. 부드럽고 화려한 비단에 덥혀 만져지는 말랑말랑한 촉감과 따뜻함으로 품에 안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금세 똥물이 새어 나오고 썩은 구린내로 구역질이 나온다. 상대가 비단으로 싼 보물 같은 사람인지, 비단으로 싼 똥 같은 사람인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예전여자친구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둘만의 원칙들을 세웠었다. 밀폐된 공간에 둘만이 있지 않기가 가장 중요한 원칙 중에 하나였다. 둘만 있는 폐쇄된 공간에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거나 우린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자 입에 머리를 들이밀고 괜찮다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이렇듯 성적인 영역에 취약한 우리들은 순결하고 순수한 만남을 갖기 위해 애쓰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무엇을 위해서? 똥차를 만나지 않기 위해서!
최근 데이트 폭력을 넘어 데이트 살해, 스토킹 살해가 발생하여 사회를 충격에 빠트리고 있다. 과거에 어떤 실험을 했다. 먼저 실험에 참가한 모든 남자들에게 송곳으로 여성사진을 찍어서 훼손해 보라고 했다. 처음에는 모든 남자들이 그 행동을 비인격적인 행동으로 여겨 거절했다고 한다. 그 후 남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음란물을 보여주고 다른 그룹은 그렇지 않았다. 두 그룹에게 다시 여성의 사진을 보여주고 송곳으로 찌르라는 동일한 지시를 했다. 음란물을 보지 않은 남자들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거절했다. 반면 음란물을 보여준 집단의 남성들은 처음과 달리 송곳으로 사진 속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찔렀다고 한다. 실험 결과는 음란과 폭력의 상관성을 나타낸다. 최근 붉어지는 데이트폭력의 심각성이 무분별한 성적인 개방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성에 대한 바른 가치관과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똥차 연애는 멋대로 똥을 싸는 것처럼 정액을 싸려는 남자와 여자의 재앙적 만남이다. 똥차 같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면 이 사람이 똥처럼 성적욕구를 자신에게 싸려는 사람인지 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도 똥으로 가득 찬 정화조가 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을 만나서도 안되고 되어서도 안된다.
똥과 반대로 꽃은 얼마나 향기롭고 아름다운가? 그리고 얼마나 상대를 위하는 로맨틱한 사랑의 세레나데인가? 우리 모두 똥으로 가득 찬 똥차가 되지 말고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 찬 꽃차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