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삐에로나 광대처럼 장난치고 떠들고 재밌게 지내고 싶은데 사람들 앞에서 나는 얌전하고 말이 없고 평범하게 지낸다. 왜 그럴까? 오늘 하루도 너무나도 고단한다.
상담을 받으면 상담사님은 어떤 일을
겪으면서 느꼈던 마음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얘기해보라고 하신다.
그러면 켜켜이 쌓여있던 감정의 묵은 때가 벗겨지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하셨다.
오늘 하루도 무거운 짐을 몸에 메고 달리기를 한 것처럼 지친다. 본래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가면을 쓰고 하루 종일 사람들을 대하고 강박증으로 사소한 일에 대해 예민하게 걱정하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아 배도 고프니 고단할 법도 하다.
인생 선배들의 삶의 무게들을 생각해보니 그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버티는 삶. 삶은 꼭 버텨야 하는 것인가? 삶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인가?
아담의 원죄로부터 우린 이마에 땀을 흘려야만 먹을 것을 먹을 수 있는 노동의 의무를 갖게 되었다지만 스티브 잡스, 정주영을 비롯한 자기일에 대해 소풍 전날 밤처럼 설레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신기하고 부럽다.
나도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전문회사를 다닐 때 그랬다. 친구들이 회사 투정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출퇴근, 직장생활이 힘들다고 했지만 나는 전혀 힘들지 않고 즐거워서 이해를 못했지만.
오랜 시간이 흘른 후에야 그들의 고단함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몸으로 느끼지 못하면 공감하기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박하사탕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기찻길에서 “나 돌아갈래!”라고 외쳤던 설경구의 외침이 내 안에서 메아리친다.
“나 돌아가고 싶어!” 열정 넘치던 때로,
친구들과 재밌게 떠들고 장난쳤던 때로,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멋 부리고, 더 열심히 살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시간은 돌이키거나 줄이고 늘일 수 없는 차원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더 무기력 해질 거고 더 무거워질 거고 더 지칠 텐데 말이다.
그래도 삶의 작은 행복들을 찾아본다. 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행운의 네 잎 클로버보다 더 많아 소중함을 모르는 행복의 세 잎 클로버를 찾는 것처럼.
브런치를 통해 글로 소통하는 기쁨,
퇴근길에 떠올리는 맛있는 치킨,
사고 싶은 것들, 등등 소확행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소소하고 행복을 찾는 것은 퍽퍽한 건빵 안에 들어있는 별사탕처럼
우리 삶을 달콤하게 해주는 보물 같다.
위대하게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게 위대하다는 말로 스스로를 쓰담 쓰담해줘야겠다.
성경에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