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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Sep 27. 2022

모순의 대물림을 끊자 - 밝은밤

독서 후 기록

오랜만에 학교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렸다. 조금씩 읽어야지 했는데 결국 퇴근길 버스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다. 청승맞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가의 말까지 다 읽었다.


내 안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엄마와 나 사이에는 좁혀지지 않는 거리가 존재하고 나는 할머니를 미워한다. 그 거리와 미움들이 종종 참을 수 없는 결핍의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얼마 전 할머니는 이유도 없이 쓰러졌고 중환자실에 오래 계셨다. 엄마는 "너네 할머니가 이제 정말 가려나보다" 라고 했다. 너네 할머니, 엄마는 꼭 그렇게 불렀다. 나랑 동생은 우리 할머니라는 말을 평생 하지 않고 살았다. 그게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해야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가네, 진짜 오래도 사셨다"라고 말하며 헛웃음 소리를 냈다. 엄마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그래도 너네 할머니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엄마의 이 지독한 모순이 너무 어려웠다. 죽을만큼 밉고 어떻게서든 이겨야 한다던 복수의 대상에게 이따금씩 정겨운 이름을 붙이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내 손에 칼을 쥐어주고 죽으라던 사람을 엄마는 용서하라고, 네 아빠도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아빠를 말로 찢어 죽이고 뜯어 죽이는 엄마와 아빠가 가여워 이혼을 미루며 그 이유를 자식에게 갖다 붙이는 엄마에게서 자랐다.


자연스레 내 안에도 모순이 자랐다. 엄마가 끔찍하게 미우면서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죄책감에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 엄마의 인생을 망친게 나인 것 같았다. 찬란하게 반짝이던 엄마의 젊음을 갉아 먹고 태어난 존재, 같이 태어난 동생이 탯줄을 목에 감아 얼마 못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기어코 살아난 기적이자 끈질긴 생명줄, 그게 나였고 나의 모순은 스스로에게도 이어졌다.


-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엄마도 외할머니도 친할머니도 이모도 고모도 사촌언니도 동생도 남보다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이 책의 인물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래도 곁에 가족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댈 수 있는 단 하나의 존재라도 있다는 것이 서러울만큼 부러웠다.


너네 엄마

너네 아빠

너네 할머니

그들이 그은 선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고립된 상태로 10대가 지나갔다.

나는 우리라고 부를 사람이 없었고 누가 좋다가도 싫고 밉다가도 사랑하고 받고 싶었다. 무한하고도 편안한 애정이 고팠다.

지금도 고프고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겠지. 어쩔 수 없다는 걸 안다. 산다는 게 원래 다 뭐가 부족하고 아쉽고 서러운 것 아니던가 ㅎ


-


원가족에서 채우지 못한 애정의 결핍을 무기로 쓰고 싶진 않다.

온전히 사랑하고 받고 싶다.

동생에게 썼던 편지의 한 구절처럼 그가 내게 선물해 준 이 날들을 마냥 끔찍하게 지옥처럼 느끼며 살다 가고 싶진 않다. 언젠가 만난다면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마냥 포기한 채 살지는 않았어. 최선을 다했어. 살아서 참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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