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피부

진채양난 레터 1호

by 진솔

※ 섭식장애 당사자로서 활동하고 있는 채영과 진솔이 2주마다 '엄마의 몸'에 대해서 글을 씁니다.

※ 매우 개인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생각이니 '그렇구나-'하는 마음으로 편하게 읽어주세요.





채영

엄마의 살을 만져야 잠에 들었다.

말캉하고 찬기 도는 팔뚝. 딴딴한 등판.

작은 나의 다리와 몸뚱아리를 휘감은 엄마의 다리 무게와 허벅지 피부를 느껴야 안심이 되고 잠이 왔다.

목덜미에 코를 박는 것도 좋아했다.

있는 힘껏 숨을 들이켜 체취를 삼켰다.

로션도 바르지 않는 엄마의 목덜미에선 엄마의 고유한 냄새가 물씬 났다.

오랜 시간이 응축된 듯한 엄마의 살냄새는 나의 안정제였다.


엄마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피부는 왜인지 내게 시각이 아닌 촉각과 후각으로만 기억된다.

엄마 피부에 새겨진 노화나 감정을 제대로 바라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내 손끝과 코 점막으로만 엄마를 느껴 왔다.

피부만큼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담은 신체 부위가 있을까.

굳은살, 주릅, 흉터 등의 방식으로 경험은 피부에 자신을 남긴다.


엄마의 피부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다는 건.

어쩌면 내가 아직도 엄마의 삶을 제대로 볼 자신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엄마의 고통을, 슬픔을, 고단함을 직면할 용기를 갖지 못했다는 게 아닐까.


요즘, 기력이 떨어진 엄마의 얼굴에서 자주 미세한 흔들림을 본다.

눈가의 피부가. 이마의 주름살이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그러면 난 눈길을 돌리고 마음을 굳게 여민다.

한떄 흐드러지게 피었던 엄마의 삶이 조금씩 지고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져가는 데에 내가 일조했음을. 아직도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엄마의 손을 마지막으로 만진 게 언젠지 모르겠다.

탄력과 지방이 빠진 엄마의 팔을 언제 느껴봤던가.

내 품에 들어올 만큼 작아진 엄마의 몸을 안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본 적이 있었던가.

엄마의 시간과, 슬픔과 고통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여다 보았던가.

엄마 얼굴에 새겨진 주름도 하나 제대로 직면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워지는 저녁이다.



진솔

언제부터 인가, 엄마의 피부는 가렵지 않은 날이 없다.

손, 손목 그리고 팔목까지 발진도 물집도 아닌 것들이 생겼고

그것들은 이마와 목을 넘어 등까지 퍼졌다.

가려움이 심해서 쉽게 잠들지도 못했다.

한의원부터 유명한 피부과까지 가보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어디서도 뚜렷한 이유나 치료 방법을 알 수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복용하는 스테로이드 약 때문에 엄마의 몸과 얼굴은 퉁퉁 부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변했다.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젊고 빤딱빤딱 광이 나는 피부를 갖고 있었고

얼굴도 목도 팔도 다리도 다 가늘어서 40대에도 볼레로나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녀도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그런 엄마가 버거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자신을 가꾸고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는

나와 달리 화려한 옷을 좋아했고 화장도 엄청 진했다.

사람들은 그런 엄마를 멋쟁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화장기 없이 말끔한 엄마의 맨 얼굴을 더 좋아했다.

엄마의 피부는 부드러웠고 여드름과 같은 트러블 하나 없이 깨끗했다.

평생 그럴 줄 알았다.


“스트레스 때문이래”
어느 병원에 가도 엄마의 피부 발진이나 가려움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스트레스의 원인을 없애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약을 먹고 바르고 가려움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다.

남편과 각 방을 쓰고 골칫덩어리였던 딸과 아들이 제 갈 길을 찾아 떠나도

엄마의 피부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신 여기저기 흉이 가득해

그렇게 좋아하던 대중 목욕탕도 반소매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여 포기한지 오래다.

엄마의 화장대 위에는 화장품 보다 피부 연고가 훨씬 더 많다.

엄마 말처럼 좋았던 시절, 반짝반짝 청춘은 다 지나간 걸까?


사실 알고 있다. 엄마의 피부는 곧 엄마 삶이 새겨진 증표 같은 것이다.

온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처럼 하루도 편할 날 없었던 시집살이나 결혼 생활을

끝까지 견디고 또 견디기만 했던 엄마 자신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론 안 그래도 힘든데 왜 또 자신을 아프게 하나 싶지만,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긁고 긁어 피가 나고 딱지 위에 딱지가 생기고 또 그 위에 새로운 딱지가 생기는 동안,

그동안만이라도 뭐 같은 현실을 잊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니면 여기에 더는 있으면 안 된다고, 있고 싶지 않다는 몸의 신호였을 수도 있고.

한 가지 놀라운 건 그렇게 피부 발진이 심한데도 상처가 없는 곳은 여전히 부드럽다.

그게 진짜일 텐데, 엄마는 피부부터 시작해 너무 많은 것들을 잃었다.

(피부가 시작인지 끝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무리 스스로 우리 곁에 있기를 택했다고 한들, 엄마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겠지.

엄마 말처럼 가장 반짝이는 시절은 이미 다 지나갔을 지 몰라도

남은 인생은 엄마의 진짜만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흉이 가득해도 여전히 부드러운 피부처럼 엄마의 진짜는 어디 가지 않고 엄마에게 남아 있을 테니.

여차하면 우리를 떠나도 좋고.






진채양난 유튜브 영상 '당신 엄마 맞아? 1편'

https://youtu.be/S9ccr305pfo?si=bofjMteuzqiNg6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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