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솔 Jun 18. 2017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도록

♪AGER - 안녕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어.

여자 친구의 어깨에 살포시 얹어진 남자 친구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해.

오늘은 문득 남자 친구를 향해 예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자를 보며 부럽다고 생각했어.

나는 네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지어본 게 언제였을까?

편하지는 않지만 네게 보여주고 싶은 예쁜 원피스를 입고

키가 큰 너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려고 (사실 다리가 예뻐 보였으면 싶어서) 굽이 있는 신을 신고

좋아하는 살구색 블러셔를 칠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너를 만나러 가던 길을 떠올려 봤어.

마주 앉은 네 앞에서 가장 편안하게 짓던 표정들과 이따금 수줍게 입꼬리를 올리던 나의 귀여운 노력들을 말이야.



요즘 우린, 시간을 맞추기가 여간 쉽지 않아서

나는 아주 아주 아주 자연스러운 민낯으로 네 전화를 받는 일이 많아졌고

외출하지 않는 날이면 머리를 감지 않는 습관 탓에 조금 창피한 상태로 네 앞에 앉는 날이 많아졌지.

너는 그런 나를 여전히 예쁘다고 하지만 -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다고 하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더 예뻤으면 좋겠어.

새로 산 옷을, 너와의 데이트를 상상하며 기쁘게 고른 옷들을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

나는 블러셔를 좋아하잖아.

기분따라, 날씨따라, 옷차림에 따라 달라지는 나의 귀여운 볼을 네가 봐주었으면 싶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갑자기 외로워져.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고, 눈 앞에 연인들이 너무나 부럽고, 멀리 떠난 네가 조금 미워지기도 해.

나는 너의 인생에서 1순위가 되기를 바라진 않아.

우리는 각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서로의 생활에 충실하는 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가까웠으면 좋겠어.

손 닿는 거리에 네가 있었으면 좋겠어.

차가운 컴퓨터 화면이나 휴대폰 화면을 만지는 게 아니라

진짜 네 살결이 내 살에 닿았으면 좋겠어.


내가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뭔지 알아?

아무리 육체적으로 가까워도 정신적으로 가까운 게 더 중요하다는 거야.

그런데 정신적으로 가까우려면 육체적으로 가까운 것도 필요하더라?

사무치게 외로운 밤,

창문을 열면 바람은 또 왜 그렇게 차갑던지

서늘한 바람은 마음을 더 휑하게 하고

익숙하던 옆 자리도 더 공허하더라.


그래서 헤어지고 싶은 거냐고?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뜻이냐고?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 참을 수 없이 외로운 날이면 너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너를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서 더 슬퍼.

그러고 싶은 게 아닌데 말이야.

나는 그냥 내가 이런 날도 있다고, 그래도 이 하루가 지나면 내일은 또 너를 생각하며 웃고

다시 만날 우리를 생각하며 설레여 한다고 말하고 싶었어.

물론 이런 말들이 언젠간 너를 견딜 수 없게 만들지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이 연애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러니까 미안하다는 말 말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런 생각을 한 지 꽤나 긴 시간이 흘렀는데

드디어 어제 네게서 그 말을 들었어.

아, 우리 연결되어 있나 봐.

이어져 있나 봐.

보이지 않는 실이 영영 보이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말 한마디로, 마음이 담긴 한마디면 충분해










작가의 이전글 뒷모습이라도 보고싶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